글만 써가지고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말하고
불법의 시대에 합법을 말하고
불의의 시대에 정의를 말하고
단죄의 시대에 용서를 말하고
Yes의 시대에 No를 말하고
힘든 일이다
들판이 있던 곳이 바닷물에 잠기고
도로가 깔린 곳이 휘어지고 갈라지고
자동차가 다니던 곳에 부서진 배들이 떠밀려오고
물고기들이 서식하는 곳에 사람들의 시체가 떠오르고
전기를 만드는 곳에서 방사능이 누출되고
남편과 아비의 손을 잡고 있던 모녀의 육신이 떠내려가고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키던 여자도 물살에 떠내려가고
도시라 불리는 곳은 사지가 되어
예쁜 여자와 멋진 소년이 노닐던 곳은 묘지가 되어
대양 넘어 대륙에게까지 공포를 전해주고 있다.
뉴스로 비극을 관망하는 자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지만
고통의 현장을 보며 고통스러워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슬픈 사람들을 보며 슬픔에 빠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재앙과 재난을 겪는 모습을 보며 무서워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힘들겠다고, 어떡하면 좋겠냐고, 정말 안됐다고 떠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와 우리가 저렇게 되지 않아 다행이라는 자기 위안일 뿐이다
쉬운 일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려운 건, 반대다
안될 거 같은 걸 될 거라고 우기는 거다
상상도 안 되는 걸 할 수 있다고 우기는 거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거다
용기가 없어서, 능력이 없어서, 생각이 없어서,
마음속에서만 움츠리고
손발만 부들부들 떨고 있는 사람들보다
기가 막혀도 나설 수 있는 게 대단한 거다
대단한 사람이라서 대단해 보이는 게 아니라
대단한 행동을 하고 있으니까
지금 눈 앞에서 그들을 돕고 있는 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놀라워서 대단한 거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도울 수 있다는 게 대단한 거다
위로를 전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한 거다
용기를 전파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한 거다
나는 뭘 해야 하나
이런 상황에 글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난민들에게 밥을 지어줄 수 있을까?
부서진 콘크리트 잔해를 치워줄 수 있을까?
부상당한 이들을 치료해주고,
편안하고 따뜻한 쉴 곳을 마련해 줄 수 있을까?
울고 있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십시일반 돈과 정성을 모아 전달해 줄 수 있을까?
무력하다
내 글 몇 글자 따위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비행기를 타고 갈 수도 없고,
시를 써서 움푹 파인 마음에 생기를 줄 수도 없고
신문에 광고를 낼 수도 없고
감동적인 노래를 불러줄 수도 없다
무력해서 미안하다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대단한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만 전한다
미안한 마음만 전한다
P.S
울고 있는 일본을 위해 웃고 있는 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는 다케히코 이노우(@inouetake)에에게
한국인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존경과 경의를 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