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긋는다
타인과 이야기할 때,
나는 섬이 된다.
코 앞이지만
안개가 자욱한 듯 보이지 않는
저 먼 곳
닿으려고
말하려고
소리를 지르고
양팔을 흔들고
껑충껑충 뛰고
불을 피우고
깃발을 흔들지만
처음부터
난 이미 알고 있었다
결코 닿지 않으리라는 걸
그래서
시도에 익숙해진 후엔
과거를 흉내 낸다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
품위를 유지하고
선을 긋는다
이따금 너무도 답답해지면
다리를 세우려고도 한다
적극적으로
나무를 다듬고
망치질을 하고
못을 박고
거리를 가늠한다
드디어
다리를 완성하고
건너어 끝에 닿으려는 순간
망연자실한다
섬이 보이지 않는다
다리가 보이지 않는다
타인이 보이지 않는다
섬도 다리도 타인도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난
스스로 정한 경계 안에서
길을 잃었다
스스로 넘지 못한 한계 속에서
이유를 찾고 있다
스스로 만든 허상 앞에서
두려워하고 있다
눈이 멀고
마음이 멀고
그만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