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오래 출혈이 지속될지 몰랐다
비슷한 월요일이었다. 전날 스무 시간을 잤다 한들, 그 자체로 모든 업무와 더불어 피로도의 새로고침이었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근하고 점심엔 업무 관련된 안 좋은 뉴스를 들었다. 업의 결과야 과정에 들인 노력과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게 통념, 허나 받아들이는 근육은 여전히 훈련되지 않더라.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지나는 이들의 눈빛과 어깨 역시. 회의를 여러 개 했다. 모든 일들이 동시에 멈추진 않으니까. 10억을 횡령한 직원이 있어도 은행은 돌아가듯, 회사일은 해의 기울기와 호흡을 같이 했다. 눈을 뜨면 시작되었고 감으면 잠시 쉬었다. 보통의 시간에 퇴근했다.
집에 오는 길엔 팟캐스트를 들었다. 아이폰으로 영화도 봤다. 실제 있었던 아이리쉬 갱(마피아)의 이야기. 선박 용역일로 하루 먹고살던 대니 그린은 디트로이트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었을 듯한 사내였다. 잠시 삽을 놓는 틈에도 손에선 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수에게 존경과 신임을 얻는 그는 노동자 조합의 우두머리가 되고, 이탈리아 조직과 이권을 다투며 폭력의 제왕이 된다.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은 마틴 스콜세지의 ‘카지노’에서 처음 보았던 차량 폭파였다. 상대를 그렇게 없애고 대니 그린의 지인들도 그렇게 죽어간다. 죽음을 가리지 않더라. 영화 속 폭력의 희생자들은 대부분 화염 속에서 사라졌다. 성탄절엔 동네 주민들에게 선물도 나눠주던 대니 그린은 FBI첩자였고 그가 살해된 뒤, 디트로이트의 거의 모든 조직은 와해된다. 반영웅적 묘사랄까. 거칠고 건조한 폭력장면도 좋았지만 당시의 실제 영상이 삽입된 장면이 몰입도를 높였다. 영화가 끝날 무렵, 집에 다다랐다. 문을 열었다.
먼저 온 아내는 잠옷바람으로 뛰어왔다. 포옹. 젖은 앞머리. 방금 세수를 한 듯했다. 그녀는 귀를 보여줬다. 눈을 의심했다. 피가 흐르고 있었다. 굵은 줄기로. 스스로는 볼 수 없는 각도. 난 황급히 어깨를 죄던 재킷을 벗었다. 그녀를 침대 위에 앉혔다. 피의 출처를 다시 확인했다. 면봉을 가져왔다. 고막, 또는 육안이 닿지 않는 곳의 생채기는 아닐까 덜컥 겁부터 나긴 했다. 피를 닦았다. 면봉을 버렸다. 다시 피를 닦았다. 면봉을 버렸다. 다시 피를 닦았다. 상처는 다행히 귓바퀴의 바깥쪽이었다. 피가 멈추지 않아 면봉을 계속 갈며 피를 닦았다. 조그맣게 부어올라 있었다. 아내는 뭔가 박힌 느낌이라고 말했다. 흠칫, 빛에 반사된 상처가 유리조각 같았다. 핀셋으로 상처를 집었다. 잡히는 건 없었다. 면봉 두 개로 다시 상처를 죄었다. 피가 계속 나왔다. 유리는 아닌 것 같았다. 부은 곳이 터지며 피가 조금 더 나왔다. 아마 손톱 등으로 난 상처가 붓기를 키운 것 같았다. 피를 계속 닦았다. 면봉이 쌓여갔다. 그녀를 안심시키며 피를 계속 닦았다. 작고 연한 피부에서 이렇게 오래 출혈이 지속될지 몰랐다. 상처 주변을 닦고 면봉에 후시딘을 묻혀 문질렀다. 붓기는 가라앉았고 피는 거의 멈추었다. 놀란 건 나였다.
만류했지만 아내는 저녁을 준비했고, 난 멍하니 앉았다. 복기했다. 귀에서 흐른 피를 본 건 영화 올드보이 이후로 처음 같았다. 침착하게 대처한다고 했지만, 아주 만약에 고막이라도 다친 거였다면 어째야 했을까 막막했다. 가정에서 처치가 가능한 작은 상처가 아니었다면 119를 불렀을까? 택시를 잡았을까? 우린 아직 차도 없는데. 병원은 가깝지만 이 시간엔 대부분 닫았을 텐데. 현찰 다발이 있다 한들 그걸로 상처를 봉합할 순 없었다. 만약에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생긴다면? 아이가 다쳤다면? 한 명의 핏줄기에도 이렇게 겁나는데, 24시간 보호가 필요한 자기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아이에게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상황이야 닥치면 대응한다지만 그런 준비되지 않은 무능력이 겁났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는 벌써부터 책임의 서열을 다투는 존재가 되었다. 아내는 나였으니까. 그녀의 상처는 어떤 연유로든 나의 부주의였다. 아마 어제저녁 한 번이라도 그녀의 귀를 살폈다면 오늘 같은 일은 막았을 수도 있었을 테니. 그럴 순 없었을 거라고 여기면 편하지만 그랬다면 그녀는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됐고 난 놀라지 않아도 되었을 테다. 나의 부주의였다. 앞으로도 짊어져야 할.
피 묻은 면봉과 휴지를 버렸다. 식사를 마치고 같은 방에 앉았다. 아내는 휴대폰을 만지고 나는 PC를 켠 채, 잡지를 넘겼다. 월요일의 피곤에 겨운 아내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잠에 들었다. 내 머리는 조금 더 깨어있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심장박동의 긴장이 조금 남아있었다. 자리에 누워 뒤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