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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품위 존경 사랑 그리고 코난 오브라이언

넷플릭스 코난 오브라이언의 날: 마크 트웨인 유머상 수상 기념 스페셜

by 백승권

유머와 품위

존경과 사랑


자기 일을 오랫동안 사랑한 사람들에겐

특별함이 있다고 믿어요.

끝까지 타협하지 않은 순수함이 보일 때가 있어요.

그걸 알아주고 좋아해 주고 함께한 사람들까지

가까이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일까요.


3월 24일 코난 오브라이언은

26번째 마크 트웨인 유머상 수상자가 됩니다.

원래 예정자는 캐서린 오하라였고

수상을 거절해서 다시 코난 오브라이언이 선정되었죠.


미국 코미디 장르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이나
트럼프 정부 집권에 대한 반감이 매우 팽배한 분위기.

수상을 수락한 코난 오브라이언과 작가들은

이번 시상식에서 트럼프에 대한 거부감을

조롱과 유머를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30여 년 동안 함께 다양한 쇼를 준비한

다양한 분야의 동료들 역시 스탠드업 코미디 방식으로

트럼프 정권에 대한 우회적 비판과

축사를 함께 전해요. 케네디 센터라는

공간적 특성이 이런 분위기를 더욱 배가시킵니다.


*

존 F. 케네디는 미국인들이

여전히 사랑하는 대통령 중 한 명이고

이 공연예술센터의 이름은

케네디 암살 이후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


정치적 시대적 배경을 배제하기 어렵지만

이 글에서는 이번 시상식에서 감지된

코난 오브라이언의 일과 태도에 대해

좀 더 부각하려고 합니다.


코난 오브라이언은

심슨 시리즈 일부 에피소드를

집필한 작가였고 한때 실직자였으며

새로운 쇼를 제안받고

온갖 기행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며

초반엔 미지근한 평가를 받다가

지금은 오스카 시상식 진행까지 맡으며

자신만의 독보적인 캐릭터와 균형 감각으로

인기와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그의 오랜 커리어를

꾸준히 지켜본 것은 아니기에

전문적인 비평은 어렵지만

시상식만으로 보면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그의 삶은 유머와 품위, 존경과 사랑으로

가득해 보였어요.


미디어 거물을 향한 찬사로만 연출된

스탠드업 코미디 쇼로 보일 수 있겠지만

행여 그런 비중이 크다고 하더라도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일해온 동료들의 찬사가

다양한 표현으로 채워진 퍼포먼스를

지켜보는 일은 일단 너무 웃기고 내내 뭉클했어요.


이토록 수위의 경계가

느껴지지 않는 쇼를 내내 보자니

최근 본 국내의 영상 공연 분야 시상식이

반사적으로 떠오르기도 했어요.

전체적으로 다들 시간에 쫓겨

초조하고 다급했던.


화면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과정의 디테일이

얼마나 많았을지 헤아리기 힘들었어요.

작가들끼리 대본을 만드는 미팅룸 장면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저런 거였나 싶을 정도로

동경과 부러움의 시선으로 몰입하기도 했고.


자신의 일에 평생 헌신하며 사랑하고

오래 같이 지낸 사람들의 감사와 찬사에 뒤덮이고

시대 분위기를 겨냥한 사회적 메시지를 잃지 않고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왔고 나아갈 것이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즐거운 에너지를

가득 채우는 것.


자기 일을 사랑하는 자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공공의 보상과

검증된 성과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지금 내가 서 있는 발밑을 쳐다보게 만들었습니다.

진행 경로를 바꾸고 싶은 건지

다른 국경으로 넘어가고 싶은 건지

언제까지 어디서 일할 것인가 같은

가시적 조건보다는


그래서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원하는 방식으로 지금 하고 있지 않다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원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대안은 뭐가 있을지

멍하니 현재의 중력을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트로피는 필요 없어요.

평일 낮 내가 뭔가를 쓰며 느끼는 감정이

결국 전부일테니까.


4천 번이 넘는 쇼를 진행한

코난 오브라이언은

코미디를 약자와 부족한 자를 위한 것으로

규정했어요.


그의 코미디에 눈물 나게 웃었던 거 보면

약자와 부족한 자라는 타겟팅은 얼마나 적확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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