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감각의 단계

by 백승권

아주 가끔은 끝을 생각해도 괜찮아져요


한 사람의 목소리가 완전히 들리지

않을 만큼 멀어질 수 있을까요 그땐

한 사람의 목소리가 사라진 걸까요

그 사람이 사라진 건가요

한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제 상상력이 완전히 말라버린 건가요


혼자 남았다는 자각이 너무 힘들 때면

모든 것이 혼자만의 환상이었다는

합리화를 시도하면 조금 편해요

바로 더 힘들어지긴 하지만

체온과 촉감이 얼마나 선명하게 남아있든

모두 상상의 영역이었다고 치부하면

스스로가 대단하게 여겨지면서

한 사람의 이미지와 두 사람의 그림자를

조금 지울 수 있겠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해요

실제로 빠진 게 아니라서 질퍽거리지도 않아요


무감각의 단계에 들어선 건가요

고통과 슬픔의 길이와 방어벽의 높이가 같아져서

나란히 기대어 넘어오지 못하는 상황인가요

그래서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휘날리지도 않는 건가요

아직 눈을 질끈 감은 것도 아닌데

귀를 틀어막은 것도 아닌데


어설프죠 연기도 못하고

거짓말 괜찮을 리 없는데

어떻게 끝이 괜찮겠어요

지금도 사는 게 사는 게 아닌데


끝을 늘 떠올리고

그때마다 괜찮은 적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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