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by 백승권

우리는 서로의 파도를 몰라요


우리의 내면에서 일렁이는 파도와

우리가 상상으로 짐작하는

서로의 내면은 늘 다를 거예요


하지만 더 많이 안다고 해서

더 많이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우리는 여전히

우리를 부르는

관계의 정의가 없고

과거의 정의에 의해

규정될 필요도 없죠


그저 서로의 행복과 기쁨을

한없이 바라는 관계라면

이것만큼 순수하고 깨끗한 사이가

어디 있을까 싶어요


어떤 개인적인 이익도 바라지 않고

타인의 무한한 안녕만 바라는 사이라니


친구가족사랑우정

단어는 아무 의미 없죠

감정의 부피를 재단하고

무형의 속박과 틀로 옥죌 뿐


우리의 현재 삶에 각자의 비중이 얼마나 될까요

머리카락 한올 정도 눈썹 한가닥 정도

가방의 무늬 하나 정도 립스틱 덮개 정도


우리에게 우리의 무게를 안겼나요

우리에게 우리의 촉감을 만졌나요

우리에게 우리의 소리를 들켰나요

우리에게 우리의 색깔을 묻혔나요


우리는 우리의 물리적인 공간에

늘 없었던 사람들이었고

앞으로도 남은 생의 많은 시간

곁에 있지 못할 거예요


우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실제 삶에 그리고 앞으로도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실제로도 매우 높습니다


우린 한 번의 생을 지나며

서로의 이름과 존재를 알았고

어떤 약속을 했든 어느 날 갑자기

한쪽이 완전히 지워질 수 있죠


우리는 결국 과거가 될 거예요

우리가 애쓰지 않더라도 어차피

느리게 문은 닫히고 있으니

우리 너무 조급해하지 말아요


시작이 그랬듯

끝 역시 희미할 것입니다


그때까지 많이 보고 싶을 거예요


우리는 조각났지만

우리가 붙일 수 없는

우리의 일부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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