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과녁의 탄생. 의젓한 사람들

김지수 인터뷰집. 의젓한 사람들

by 백승권

객관적으로

개인적으로

특별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되는

이들에 대한

인터뷰를 좋아해요.


모든 인터뷰가 그렇지는 않아요.

대상이 어떤 누구냐에 따라

각각의 컬러가 담긴 답변이 나오고

누가 어떻게 묻느냐에 따라

다른 답변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동안 어떤 답변들은

그때의 나와 이후의 삶을 자주 뒤흔들었어요.

지금까지도


김지수 작가는 이 분야에서

동시대 비견되는 인물이 없습니다.

남다른 질문을 던지는 것은 고귀한 재능이고

그 재능은 고귀한 답으로 독자에게 돌아옵니다.


김지수 작가의 인터뷰집

의젓한 사람들을 단숨에 읽었어요.


깊이와 너비

씨줄과 날줄

감각과 차원이 다른 질문과 답변이

맑은 밤 별빛처럼 채워져 있었고.


내가 인공지능이라면 서둘러

습득하고 싶은 문장들의 향연,

문장들의 오페라, 문장들의 날벼락,

문장들의 대홍수...


대인기피증이 의심될 정도로

조그마한 네트워크를 지닌 내게

이런 인터뷰 모음은

실시간 릴레이 줌미팅에 참여한 듯한

소속감마저 들게 했어요.


어떤 일상을 보내야 저런 말들이

공기 중으로 나올 수 있는 걸까.

어떤 고뇌를 거쳐야 저런 글들이

지면으로 옮겨질 수 있을까.


현재의 내가 얼마나

위험한지 돌아보게 했습니다.


자만과 오만으로 점철된 가엾고 비루한 인간.

뉘우칠 줄 모르며 움직이는 곳마다

파열음을 일으키는 폭주와 분노의 개체.

자기 합리화를 넘어 자기기만에 이르는 오류투성이.


나는 너무 작아서

그들의 삶을 담기에 버거웠지만

이 작은 너비에 한 줌이라도 주워 담으려

정신없이 문장과 단어를 질문과 소회를

입에 넣어 삼켰어요. 볼이 터지도록.


매일 행복하면 그건 광기겠지요

-순례자 김기석


얼마나 살얼음판 같은 인생을 살았나 몰라요.

뭐 하나 삐끗했어도 부서져 버릴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성인이 된 어른들은

커서도 열등감에 시달려요.

제가 그 시절에서 얼마나 와 있을까…

- 작곡가 진은숙


오늘 지멘스상을 받아도

내일 또 머리를 움켜쥐고 책상 앞에 앉아요.

그 고된 일을 왜 하느냐고요? 그게 삶이니까.

- 작곡가 진은숙


평생이 인정 투쟁인 시간을 살면서도

부서지지 않고 팽창할 수 있다는 게 경이로웠다.

- 김지수


자기 언어, 자기 세계를 갖는다는 건 힘겨운 투쟁이에요. 그래서 젊은 시절, 내 또래 독일, 오스트리아 작곡가들이 잘나가는 모습을 볼 때도 나는 질투하지 않았어요. 그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안 나는 내 것을 할 수 있구나, 그런 시간을 가져서 다행이다, 그랬어요. 각자의 시간 속에서 힘겹게 자기 언어를 찾아가는 거죠. 작곡가는 글 쓰는 작가와도 달라요. 클래식 작곡가는 대중의 마음에 들기 위해 쓰지 않아요. 경험의 수치가 다 다른 대중을 맞추려는 노력은 쉽게 망하는 지름길이죠. 접근도를 높여주는 노력은 하지만, 결국 작곡가는 자기 이상향을 믿고 갈 수밖에 없어요.

- 작곡가 진은숙


예술가의 일은 자기 학대와 믿음 사이에 끝없는 균형 잡기예요.

- 작곡가 진은숙


인생 전체가 슬럼프였다고 보는 게 맞아요.

- 작곡가 진은숙


오케스트라 의뢰가 많아서 곡의 개수는 적어도 작업할 양은 정말 많아요. 곡 쓰는 일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정말 모르겠어요. 사랑한다는 말은 너무 나이브해서 가짜 같아요. 인스턴트 같잖아요. 사랑보다는 그냥 헌신의 마음이라고 해두죠.

- 작곡가 진은숙


기억이 없어도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감정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사랑과 기쁨을

이해하는 능력은 더 예민해집니다.

- 신경과학자 리사 제노바


자신이 치매에 걸린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치매 환자의 심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아들이라는 사람이 곁에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종일 내 집에 머물면서 내 통장을 살펴보고 내 음식을 먹는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사람을 수상쩍게 바라보는 마음이 이해가 가죠. 이 남자는 누구지? 내 통장을 갖고 뭘 하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 테니까요.

말했듯이 증상은 끝내 전두피질에서 편도체까지 영향을 미쳐요. 뇌가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감정을 더는 제어하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아기들의 감정이 얼마나 폭발적인지 생각해 보세요. 아기는 전두엽이 편도체를 제어할 만큼 아직 발달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요는 치매 환자들이 성격이 고약해지는 게 아니에요. 침식 당한 뇌가 감정 폭발과 제어를 감당하지 못할 뿐이죠.

- 신경과학자 리사 제노바



작곡가 진은숙의

거의 모든 답변에 매료되었어요.

우주 행성의 좌표와 여정을 설계하는 직위에 대해

무명의 행성 바닥에서 자갈로 글을 쓰는 자의 공감이

얼마나 가당키나 한가 싶지만 그는 내가 도달하려는

미지의 미래에 이미 도착해서 가장 드라마틱한

메시지를 보내는 이처럼 느껴졌어요.


앞서 살아봤지만 인생 별거 없더라 가 아닌

위대한 인생을 기어이 쟁취하고 여전히 갱신 중인

무한의 투지를 지닌 증인과도 같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존재로

남은 모두에게 생의 영감을 선사해요.

작곡가 진은숙의 언어들이 그러했습니다.

(케이트 블란쳇이 지휘자를 연기한

타르의 몇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죠)


다른 의젓한 사람들의 그을린 삶 역시

경이로움으로 자욱했어요.

도저히 리뷰로 옮겨지지 않는

지문과 발자국들이 페이지 구석구석

채워져 있었습니다.


발견이자 발굴


유려하고 사려 깊은 질문과

독보적이며 화려한 고해들이

긴밀하고 팽팽한 세계관을 형성하며

수면을 억제하며 시간을 삭제했어요.


이들은 너무 멀리 있고

나는 여전히 여기라서

어쩌면 평생 저기로 향해도

닿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좌절이 아니라 순응에 가깝죠.


하지만 방향이 보인다면

끝내 다다르지 않더라도

과정을 기꺼이 긍정할 수 있어요.

'매일 행복하면 그건 광기'겠죠.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아니에요

태생과 동선, 모든 것이 다르고

흉내보다는 내 그림을 남기고 싶으니.

결국 나다운 부고를 쓰고 싶은 열망.


현자가 묻고 최고들이 답한

김지수 인터뷰집 의젓한 사람들은 이렇게

새로운 과녁이 되었습니다.

작은 화살이 되어 빗나가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궤적을 그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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