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

루리 글 그림. 긴긴밤

by 백승권

희망은 유료

절망을 지불하면

살 수 있어요

신체 일부가 잘리고

친구들이 곁에서 죽고

가족을 모두 잃으면 됩니다


낮이 어디 있나요

슬픔과 고통의 긴긴밤이

끝나지 않아요


정체성의 혼돈과

막중한 책임감과

헌신적인 지인들이 엉켜

생존의 여정을 멈출 수 없고


날벼락같은 총알이

사랑하는 이들을 뚫고 지나가며

대지를 피로 적시고


우리를 우리라 부르며

걷고 걷고 걸으며

먼지와 별빛 가득 수다를 떨어도

누구도 제대로 살아남지 못해요


태어났기 때문에 죽게 되었고

죽을까 봐 사는 내내 공포에 떨고

복수심을 아무리 불태워도

끝내 아무도 해치지 못한 채

긴 피로 끝에 타살당하는 삶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갈 건지

내가 누군지

누가 적인지


중요한가요

어차피 도망만

다니다 끝날 텐데


짐승이든 인간이든

대부분의 삶은 이런 식입니다


누군가 우릴 위해 죽을 수 있고

우리는 그럴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