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환 감독.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
태초에 아버지가 있었다. 세상의 모든 아들들이 앞뒤 못 가리고 허우적거릴 때에도 그들의 뒤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아들의 원형이었고 아들의 시간의 기원이었으며 아들의 존재의 이유이기도 했다. 아들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인간의 자식들의 운명이란 다들 그러했다. 아들은 아버지를 벗어날 수 없었고 벗어나려는 환상을 그 누구도 현실로 가져오지 못했다. 아들은 아버지를 의지하다가 그 불변의 존재감에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고 그의 한계가 자신의 한계이고 그의 세계가 곧 자신의 세계라는 것을 자각하면서부터 그에 대한 살의를 품기 시작한다. 그를 죽여야 자신이 살 수 있다는 착각과 확신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사라진다 해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사라질 수는 없는 거라고, 아버지는 아들의 인생에 단순히 짙은 그림자로 드리우는 것이 아닌, 아들이 태어날 때부터 온 몸의 세포와 사고 곳곳에 새겨진, 영원히 떼어놓을 수 없는 화인 같은 운명공동체라는 것을.
화이의 이름부터 그러했다. 아비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나무에서 떼어와 붙여놓았다. 자신보다 큰 존재에 의해 주어진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화이의 몸은 아이에서 소년으로 부쩍 커졌다. 화이를 지켜보는 화이의 보호자들은 흐뭇했다. 과거, 화이를 죽이지 않았기에 자신들의 화이의 생명의 은인으로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화이가 자신들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부모라는 견장, 사회가 요구하는 생의 순서를 지구력 있게 따라온 이들에게 주어지는 영예가 자신들 같은 짐승의 무리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에 사뭇 감격했었는지도 모른다. 화이를 통해 자신들의 선을 보았고, 화이를 통해 자신들의 지위를 확인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화이를 통해 밝은 미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망의 희망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눈 깜짝 안 하고 희죽 거리며 경찰의 배때기를 쑤시는 그들에게 화이는 존재 자체로 면죄부였다.
문제는 화이의 이런 환경적 요인이 아닌 내면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아비의 거울을 옮겨다 놓은 듯한 화이의 내면. 아비가 죽였다고 여긴 괴물은 화이의 환상 안에서 부활해 그의 여린 영혼을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 화이는 기원을 알 길 없는 흉측한 괴물 앞에서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사지를 부들부들 떨어야 했고 이는 화이의 발육 속도와 상관없이 공간을 비명과 발악으로 울리도록 만들었다. 아비는 화이의 이러한 고통을 알면서도 더욱 그를 몰아넣었고 그가 자신과 닮은 내면을 가졌음에 일면의 동질감을 느끼며 만족했다. 괴물의 대상이 자신만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는 외로움을 지웠고, 화이가 자신의 괴물을 물려받았다는 점에서 유대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괴물을 죽이는 방법을 터득한 자신이 화이에게 뭔가를 가르쳐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아비 된 자의 뿌듯함마저 느꼈다. 괴물을 죽이는 방법이란 자신이 괴물이 되는 것 밖에 없다고 화이에게 말할 때, 그는 비로소 자신이 진정한 아버지가 된 듯한 희열에 젖었으리라. 하지만 아비는 간과한 게 있었다. 화이에게 가르쳐 준 게 지금까지 사람을 죽이는 법과 괴물을 죽이는 법 밖에 없었다는 것을. 화이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몰랐다. 마치 아버지가 화이의 시절을 지날 때 그걸 가르쳐 줘야 했던 아버지의 아버지가 없었던 것처럼. 화이도, 화이의 아비도 결국 아비의 부재를 겪어 아비에게 어떤 감정으로 대하고 어떤 태도를 갖춰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비는 화이를 알았지만 화이는 아비를 몰랐고, 그래서 화이는 아비를 믿지 않았지만 아비는 화이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화이가 무지의 공포를 살육으로 해결할 때, 아비는 끝까지 살아남아 화이의 성취들을 기특하게 여기며 목격하고 있었다. 화이가 품은 분노의 표적이 자신으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아비는 화이가 자신의 진정한 아들이 되어가는 모습에 감격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이 아들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총에 맞으면 살점이 찢겨 나가고 피를 흘리며 죽어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 괴물이었던 아비는 화이를 통해 잠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그 잠시 동안 화이는 괴물이 되어 아비의 몸통을 부순다. 괴물이 되어 괴물을 죽인다. 아비라는 괴물을 죽임으로 인해 자신이 진정한 괴물로 환골 한다. 생이 바뀌고 운명의 축이 옮겨진다. 화이는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괴물이 된다.
선택지가 없었다. 아비는 화이의 주변을 모조리 참살하고, 화이 역시 아비와 자신을 연결시켰던 모든 인간관계를 죽음으로 단절시킨다. 둘은 각각 서로의 과거와 현재를 지우면서 가까워졌고 가장 가까워졌을 때 서로의 생명에 총구를 들이댄다. 하지만 아들의 생명은 아비에게 시작되었고, 아비는 그래서 아들보다 더 보낸 세월만큼 아들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예감할 수 있었다. 아들의 무지마저 감내할 수 있었고 자신은 그것을 자신이 괴물이 아닌 인간으로서 베풀 수 있는 선의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리고 화이는 그 선의를 죄의 대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아비가 아들보다 먼저 죽어도 아비가 이미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 화이는 죽도록 싫지만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아비의 피를 그대로 이어받는다. 아비는 죽지만 화이를 통해 생을 이어가고 화이는 그렇게 아비의 생을 이어받아 아비가 가르쳐준 것들로 시간을 연명한다. 애초 화이의 것이 무엇이었나. 그런 게 있기라도 했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이름부터 살인 기술까지 모두 아비로부터 주어진 것들이었다.
아버지와 아들, 이 두 마리의 괴물을 여진구와 김윤석이 연기했다. 다른 짐승들 역시 조진웅, 장현성, 박해준, 김성균이 맡아 피 묻은 이빨을 드러냈다. 남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거치는 남자 어른들을 닮아가며 성장한다. 그들에 대한 감정이 무엇이든 그들이 떠나지 않는다면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학습이라고 본능 안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화이가 괴물을 죽이고 악의 정점을 처단한 뒤 눈부신 햇빛과 따뜻한 음악으로 장면을 칠해도 더 이상 화이에겐 어떤 경우의 수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가 그림을 잘 그리던 심성이 착하고 바르던 상관없다. 그는 첼로 케이스 안에 라이플을 넣어두고 다니며 앞으로도 자신의 아비가 지나왔던 길과 다르지 않은 길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화이는 영영 모를 것이다. 괴물은 진실을 거둔 채 화이 안으로 영영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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