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객관화

by Glenn

계속 말을 걸었고

듣고 있다고 믿었지만

대답하지 않아서 내가

대신 대답하기로 하며

글을 쓰기로 했어요


방금 적은 다섯 줄은

모두 과장이 없지만

두 번째 줄 듣고 있다는 믿음과

세 번째 줄 대답하지 않았다는 단정은

연결되지 않아요


가시적인 대답을 원했는데

그렇게 돌아오지 않아서 대신

가시적인 텍스트로 표현하기로

했다고 적긴 했는데


애초 대답의 전제와 정의가

확실하지 않았어요


우린 여기에 합의를 했었어요

종이에 수기로 남기지 않았고

두장의 종이를 나란히 붙여

한 개의 도장을 찍지는 않았지만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1:1의

정확한 비율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그걸 알면서도 기다리지만

우린 늘 상황이라는 게 있고

모든 상황이 말이 되는 것도 아니며

이해의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라서

그리고 심지어 1:1이 완전한 균형도 아니어서

글자 수를 셀 것도 아니고


보이지 않는 관계를 계량화할 수 있나

그게 가능하다고 하여 뭐가 달라지나

보이는 관계로 달라진다고 계량화가 되나

계량화가 되면 나아지나

대화와 메시지가 숫자와 수치가 되면

근사한 결과보고서가 도출되나요


이 글의 첫 줄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대답을 기대한 게

어리석음으로 엮은 심지였죠

삽날도 들어가지 않는 언 땅을

기어이 두드려서 파내어

발목, 무릎, 허리, 목의 깊이로

점점 들어가고 있어요

해변이었다면 물이 채워졌을 텐데

위치를 제대로 잡았다면 잠겼을 것입니다


나와의 대화에 실패하면서

너와의 대화를 기대하는

패착의 리플레이는 지겨워요

순간의 느낌을 채우려고


시간이 연기로 변한 후 덮칠

매캐한 공허를 떠올려 봐

기대하고 기다린 게 얼마나

가녀리고 이기적인 스탬프였는지


그걸 모아서 일정한 개수를 채우면

스스로에게 뭘 주려고 했을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길거리 전도하는 무명의 노래가

고막을 두드리며 고갤 끄덕이고 싶었나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지금을 어떻게 기억할까라고 쓰는

지금을 어떻게 기억할까

가질 수 없는 시간을 염원했었어요

유치하고 초라한 게 뭔지 알고 있고

후회하지 않은 걸 후회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는 척하며 지내고

원본의 기록은 늘 해석이 다를 텐데


안구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아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고 있고

모든 감각이 잠든 시간에도

혼자 뜬 채 연옥을 바라보는


언젠가부터 그렇게

빤히 쳐다본 것들을 여기 적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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