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 있는 그대들에게
세상이 고요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늘 소리의 선들이 대기를 가르고 있었고, 소리의 크고 작은 덩어리들이 부유하고 있었다. 때로는 모든 존재가 움직임을 멈추고 숨을 참고 있다고 여겼을 적에도 먼지가 퍼지는 소리에 화들짝 깨어 오르는 생명체들의 잔상이 들려오곤 했었다. 소리는 늘 어딘가에 있었다. 보이지 않고 보지 않으려 했을 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듯해도 소리는 늘 존재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에게 주어진 존재의 당위를 입증하려는 것처럼.
소리를 통해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과정은 늘 번거로웠다. 스스로를 예민하다고 느끼게끔 만들었다. 나는 소리를 오래도록 견디지 못하는 사람일 거라고, 여기게 했다. 큰 소리이든 많은 소리이든, 언제부턴가 정해진 임계점을 지나 존중받고 싶은 최소한의 영역으로 침범할 때, 소리는 적으로 간주되었다. 파괴자로 낙인찍혔고, 거부 대상이 적힌 리스트의 가장 상위에 올랐다. 견딜 수 없었다. 통제되지 않아도 좋으니 다만 사라져 주길 바랐다.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귀를 틀어막았다. 제발 다 꺼져버리라고 소리쳤다. 경계했고 찌푸렸으며 수용의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배가 가라앉은 지금처럼.
지금 쓰는 이 글이 생명을 소홀히 하는 태도에서 비롯되지 않았음을 설명하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싶지 않다. 모든 소리를 소음으로 다루려는 것도 아니다. 나름의 타당과 나름의 합리, 나름의 근거와 나름의 분노, 나름의 사정들이 모두에게 있다. 모두에게 권리와 또는 의무도, 그것이 업의 일부일지라도 상관없다. 이해한다. 이해하지만, 견딜 수 없다. 알고 있지만 그것을 포용할 수 없음을 밝힌다. 소리 낼 권리를 주장한다면, 그 소리에 대한 거부의사를 밝힐 수 있는 권리도 있음을 마주쳐 주장하겠다. 뚜렷한 목적을 방해하는 모든 소리가 징그럽다. 명징한 해결을 더디게 하는 모든 소음들을 거둬 가두고 싶다. 필요하다고 여기겠지만 소용없는 시도들, 지금은 당신들의 분노와 불만을 퍼뜨릴 때가 아니다. 지금은 당신의 목청을 가다듬을 때가 아니다. 지금은 당신의 주머니를 채울 때가 아니다. 지금은 당신의 권리를 드높일 때가 아니다. 지금은, 제발, 지금은.
피아를 구분하지 말아달라, 피아는 이미 구분되어 있다. 비난을 앞세우지 말아달라, 그 일은 당신의 몫이 아니다. 표현에 대한 의무감을 포기해달라, 지금 당신과 당신들의 목소리는 동시에 울려 퍼져 아무 곳에도 닿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듣고 싶다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만의 어둠 속에서 말해달라, 스스로에게 가장 큰 목소리로 들릴 만큼 외쳐도 된다. 하지만 지금 여기 이곳에서는 아니다. 지금은 거둘 때다.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할 때다. 비루한 개인의 바람, 누추한 권유, 설득력 없는 제안이자 또 하나의 소리, 소음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청한다. 잠시의 고요를, 고요를 원한다. 견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고요를 바란다. 그럴 수 있는 그대들에게 호소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