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풍랑을 겪고 있는 줄 알았지
왜 파도는 내게만 덮치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같은 불길에 휩싸여 있는 줄 알았지
왜 화상은 내게만 덮치는 것처럼
들리지 않고
내게 뇌와 입이 있다는 오만
네게 지적할 수 있다는 편견
한때는 심장을 잘라 주려고 했어
없으면 훔쳐서라도 주고 싶었고
돈을 원하면 돈을 주고
빵을 원하면 빵을 주고
시간을 원하면 다 주고 싶었어
이 정도 하면 뭔가 알아서 될 거라고
이 정도 하면 뭔가 알아서 될 거라고
이 정도 하면 뭔가 알아서 될 거라고
이 정도 하면 뭔가 알아서 될 거라고
같은 자세로 자꾸 넘어지고 있다는 것은
약점을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거나
미심쩍은 면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는 것
한번 정지하면 영영 나아가지 못할 것 같고
계속 나아가다 한번 멈추면 바로 죽을 것 같아
의외의 반응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것은
무의식 중에 예상과 대비를 했다는 건데
혼자 싸우고 있고 아무도 이기지 않고
무대 조명과 마이크 전원은 모두 꺼지고
내가 여기에 왜 있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이제 뭘 해야 하는지
지금껏 뭘 하고 있었는지
프로포폴에 적셔진 동공이
이제 막 풀린 느낌이 들어
깨어나고 싶지 않지 무서우니까
일상이 선명해지는 순간 거울도 보일 테니까
그걸 깨 봤자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니고
대화가 없어도 우리가 없던 게 아니니까
오래전 시체가 되었다는 사실을
방금 깨닫게 된 것 같아
혼자 인간인척
꿈을 꾸려고 했다는 게
더럽고 불쾌해
뭔가가 될 거라고 기대했다는 사실이
그토록 치욕스러울 수 없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뭐라도 될 줄 알았고
아무리 다른 질문을 던져도
같은 답이 돌아오고
답은 내가 아니고
여긴 거기가 아니고
목숨이
흑연으로 그려졌다면
깨끗이 지우고 싶어
죽음은
복수가 아닐 텐데
잠시 숨고 싶어
창피함은 없고
혼자 울고 싶어
앞으로도 이런 끝이 계속 오겠지
어디로도 갈 곳 없는 개를 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