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즈 루어만 감독. 위대한 게츠비
매너가 자연스럽게 몸에 밴 자들은
자신에게 그러하듯
타인에게도 매너를 강요하지 않는다.
매너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무시하면 그만이다.
굳이 자신과 같은 매너를 갖춰달라고
요구에 힘을 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후천적으로 매너의 중요성을 알고
매너를 나누는 이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지닌 이들이
자신을 매너로 길들이고
타인에게 매너를 요구한다.
원래 알고 있던 것과
나중에 알게 된 것의 차이.
개츠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데이지(캐리 멀리건)를 다시 만났을 적에 놓친 부분이었다.
매너가 없는 남자로 보여서 자신을 버릴까 봐
매너가 없는 남자로 보이면 자신들과 다른 사람처럼 여길까 봐
매너가 있는 남자로 보여야 자신들과 같은 사람처럼 인정할까 봐
개츠비는 스스로에게 매너를 주입하고
타인이 들으라는 식으로 매너를 재차 강조한다.
시작점의 차이.
그 간극.
속일 수 있지만
같을 수 없는
그 서글픈 격.
게츠비는 되돌리려 했다.
데이지와 자신 사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마치 서로를 채우지 않았던 감정을 부정하고
지금부터라도 새롭게 채워 넣으면
자신들의 사랑을 다시 완벽하게 다시 세팅할 수 있을 거라 상상했다.
가난한 남자 대 부자 여자의 사랑이 아니라.
매너 있고 돈 많은 남자 대 매너 있고 돈 많은 예쁜 여자의 러브스토리로
자신들의 인생을 재설계하고 싶어 했다.
시간이 그렇게 해서 되돌려진다면
그렇게 해서 인생의 결핍이 채워질 수 있다면
인간은 지금처럼 계급으로 나뉘지 않았겠지.
계급.
개츠비는 계급을 재정립하고 싶었다.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지게 만들었던 과거를 지우고
다시 완전한 사랑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공백을 메우기 위한 5년의 공백
애초 허구로 채워진 인생에서 데이지를 만난 이후
개츠비는 자신의 인생시계를 완전히 되돌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에게 사랑한 적 없었다고 말해."
개츠비는 자신이 거짓말을 일삼아 왔듯
데이지에게도 측정할 수 없는 심정을 진실처럼 이야기하라고 부추긴다.
이미 결혼한
과거 가난한 개츠비를 두고
부자 남자의 목걸이를 선택한 부자 여자 데이지에게
이 개츠비와 애초 계급이 달랐던 여자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은 자신의 시간을 속이는 것이자
자신의 몸에 익숙한 매너가 아니었다.
한때 진심으로 사랑을 나눴던 남자,
개츠비가 원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녀는 늘 자연스러운 욕망만을 좇아온 여자인데.
흔들리는 데이지,
말해도 진심이 아니고
말해도 사실이 아니었다.
5년의 결혼 기간은 데이지와 데이지 남편을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해주고 있었다.
배반할지언정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는.
이곳에서 개츠비의 계획은 균열을 일으킨다.
개츠비는 계급이 쌓아놓은 두터운 매너의 벽을 넘지 못한다.
데이지의 남편 또한 개츠비의 계획이 허물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열정과 로맨스라는 허울을 뒤덮고 있더라도
모두가 부정한 남자들, 부정한 여자들.
하지만 모두가 부정의 공모 자였을지언정,
희생자는 계급으로 나뉜다.
애초 가난했던 이들은
차에 치어 죽고
총에 맞아 죽고
총으로 자살하지만
애초 부자였던 이들은
진실을 외면한 채
전화를 받지 않은 채
품위를 유지한 채, 살아남는다.
개츠비의 세계는 붕괴되고
데이지의 세계는 여전히 돌아간다.
파티가 끝나면 술병을 치우는 하인들.
그 사람들 속에서 개츠비가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계급을 뛰어넘었다는 희열감?
사랑을 쟁취하겠다는 열망?
불법이라도 어때, 모두가 불법인 걸! 같은 자기 합리화?
원작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영화 안에서
피를 흘리는 자들은 모두
애초 없는 자들이었다.
처음부터 없는 자들은 끝까지 없었고
처음부터 있는 자들은 끝까지 있더라.
그래서
위대한 개츠비라는 제목은 완전한 반어법.
운명의 굴레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한
세상에서 가장 가엾은 개츠비라고 불려야 마땅하다.
위대한 개츠비?
아니
불쌍한 개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