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테러 라이브, 죽음의 시청률

김병우 감독. 더 테러 라이브

by 백승권



잘 나가던 뉴스 앵커 윤영화(하정우)에게 테러는 기회였다. 추락한 신분상승의 기회. 야망 넘치는 차대은(이경영) 국장 역시 테러는 기회였다. 승진+국회 진입의 기회. 대테러 팀장 박정민(전혜진) 역시 테러는 기회였다. 잘리지 않을, 자리보전의 기회. 셋 중 누구에게도 다수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테러를 막으려 들지 않았다. 다리가 빠개지든, 사람이 죽든, 차가 떨어지든, 자기 살기 바빴다. 위기일수록 자신의 목숨을 지키려는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지만, 무슨 하루 먹고 하루 사는 생계의 위협을 느끼는 지위도 아니고 위치가 위치라면 한 명 정도는 좀 정의로운 모습으로 다른 악인들을 부각하여줘도 되지 않았을까 싶지만, 김병우 감독에게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성경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처럼, 아마 저 셋 중 단 한 명의 의인만 있었어도 자신의 개인적 욕망을 잠시 내려놓고 전체의 안위를 생각했어도 최소한 건물은 폭파하며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청와대를 덮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비효과. 다리가 터지고, 건물이 폭파해서 대도시 서울을 일순간 공포로 몰아넣은 테러의 시작점은, 어느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뉴스에 나올 때마다 이젠 잘 쳐다보지도 않고 혀만 몇 번 차다가 잊힐 그런 사고의 피해자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가장이었고 아비였으며 생명이었고 인생이었다. 한 가족의 세계가 죽었고 아무도 손을 쓰지 않았다. 사과는 배려가 아니라 의무였다. 누군가는 남은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적어도 너희가 지금까지 납부한 세금으로 나라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위로와 책임자 처벌뿐이다. 정도는 말을 해줬어야 했다. 어쩔 수 없었겠지. 인간의 이기는 늘 그렇게 포장되다가 거대한 재앙을 부른다. 911을 연상시키는 규모의 테러가 가위 바위 보에 져서 일어날 일은 아니니까. 생각할 시간은 평생이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아비를 잃은 소년은 자신이 저지를 일의 대가가 무엇인지 알았을 것이다.


분노는 분노로

슬픔은 슬픔으로

죽음은 죽음으로


가장 소중한 존재를 잃었을 때 인간은 애석하게도 타인의 가장 소중한 존재를 빼앗고 싶은 것이었는지. 스위치는 망설임 없이 눌러진다. 화염은 치솟고 콘크리트는 부서지며 마치 도미노처럼 피해는 점점 커져만 간다. 물론, 좌천된 앵커가 신분상승의 기회를 2순위로 미뤄놓았다면, 시청률에 미친 국장의 생각이 좀 더 다수를 위했었다면, 대테러 팀장이 수습을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추가 피해는 최소한으로 막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자신의 최대 욕망에 베팅했다. 목숨을 지키려 했고, 금배지를 달려고 했고, 지위를 보전하려 했다. 그래서 죽는다. 다리 위에, 빌딩 안에, 청와대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경영이 연기한 국장만큼 스스로의 욕망에 순수하다고 여겨질 만큼 치밀하게 몰두하는 악인을 국내 영화에 본 적 있나 싶다. 시청률 70%를 찍으면 승진이 보장되어 있다는 약속을 비밀리에 받아두고 그의 계산기는 미친 듯이 돌아간다. 그는 그때부터 진짜 테러범이 된다. 대통령이 사과를 하지 않을 것도, 대테러 팀장이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움직일 거라는 것도, 한 번 배신한 앵커를 다시 배신하는 것도 그는 모두 자신의 공식 안에 집어넣는다. 철저히 희생시킨다. 폭파한 다리 위의 인질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들이 살아나더라도 자신의 승진과 아무 관련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이 죽어야 자신의 승진이 더 보장될 거란 계산에 폭탄 스위치를 누르기 직전의 테러범을 압박한다. 어서 누르라고 강요한다. 메시지를 만든다. 심리를 조여든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모두의 죽음을 사주하고 피 묻은 트로피를 자신이 거머쥐려 한다. 그는 탐욕스러움과 영리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고 목적을 달성하는 순간, 가벼운 발걸음으로 홀연히 떠난다. 그리고 얼마 후 그가 다다르려 했던 푸른 지붕의 세계는 그의 욕망에서 시작된 도미노에 의해 완전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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