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노 다케시라는 건달이 고아를 만났을 때

기타노 다케시 감독. 기쿠지로의 여름

by 백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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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찾으러 그 먼 길을 떠난 아이가

자신이 모르는 남자 어른과

자신이 모르는 아이들과 함께

자신이 본 적 없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여자 어른을 보았을 때


그녀가 자신의 친엄마일 거라는 직감이 들 때,

표정엔 먹구름이 드리운다.

자신의 빈자리가 그녀에겐 없다.

자신이 없어도 그녀는 웃고 있다.

자신이 없어도 사랑할 사람들이 그녀에게 있다.

나는 그녀에게 필요 없다.

그녀는 내가 필요 없다.

나는 그녀와 만날 필요 없다.

필요 없다.


아이는 평생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거절을 받았던

그 여름날 어느 집 앞의 풍경을.


기타노 다케시 감독은

아이를 위로하는 장치로

방황하는 어른들을 모아놓고

긴 쇼를 보여준다.


모두가 예상대로 사는 것은 아니고

모두가 '훌륭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며

모두가 그럴 필요도 없고

지금은 그냥 같이 어울리며 놀고 웃고 떠들자 고

아이를 돌보고 달래고 게임한다.


모든 움직임이 엉성하지만

실제 웃음을 가공하는 데는 완벽하기 그지없다.

인생이, 그렇지.

아직 어린, 아이에는 생소하겠지만

세상은 모자란 어른들이 만들어나가는 하나의 쇼.


건달 같은 어른 기쿠지로는

두목 행세를 하며 동생을 자처한 이들을 마구 부리고

상처받은 아이를 달래기 위해 갖은 방정을 다 떤다.


그 동생들 중, '대머리'의 역할은 탁월하다.

그는 강렬한 비주얼을 바탕으로

거의 대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존재 자체로 극을 장악한다.

웃음을 폭발시킨다.


결여를 봉합한다.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아이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런 모자란 어른들의 위로가 계속되는 한

아이는 괜찮을 것이다.

상처를 재생산하지 않고,

다른 아이들의 상처를 돌보려 기꺼이 자신을 내던지겠지.


기쿠지로 같은 어른도 있고

기쿠지로 같은 어른도 있어야 하며

실제 세상은 기쿠지로 같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주연 및 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연애의 허상 - 영화와 사랑에 대한 비밀과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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