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설국열차
생각났던 것들.
나치. 매트릭스. 계급투쟁. 2046. 올드보이. 나는 전설이다
그 무엇보다, 배틀스타 갤럭티카.
사뭇 놀랐다. 예상했던 이미지와 많이 달라서. 수년 전 끝칸부터 끝칸까지 기차 칸을 돌파하며 적들을 쳐부순다는 설정을 듣고 액션에 대한 수많은 상상을 했었다. 시종일관 달리는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액션이라니. 올드보이 장도리 액션을 반지의 제왕급의 서사를 엮어 끌어올리려나. 아니면 원티드에서 본 것 같은 혈관을 조여 오는 듯한 엄청난 스케일과 스릴감의 액션? 예고편을 보며 많이 기대가 낮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마더의 봉준호 감독이니까. 그는 어떤 방식으로든 경탄을 자아내게 할 것 같았다. 게다기 송강호(남궁민수) + 틸다 스윈튼(메이슨)이라니. 다른 캐스팅은 들어오지도 않았다. 감독의 지난 작품들에 맞는 당연한 기대였을 것이다. 열차에 올라타기 전엔 그랬다.
인류는 멸망했고 생존자는 열차에 올라탄 이들뿐이었다. 꼬리칸엔 어둡고 때 묻고 근심에 찌든 이들로 가득했다. 커다란 바퀴벌레를 끓여 만든 양갱이 주어진 음식의 전부였다. 따뜻한 음식과 깨끗한 물과 같은 사람다운 대접을 바랐지만 그건 반대편 칸의 사람들에게만 속한 혜택이었다. 앞칸 사람들은 꼬리칸 사람들과 많이 달랐다. 쉽게 말해 왕자와 거지였다. 불만은 증기처럼 들끓었고, 자극하는 일들도 종종 자행되었다. 기차를 움직이는 엔진의 창시자, 실질적인 기차의 최고 권력자 윌포드의 명령으로 수많은 병력이 움직이고 그들은 꼬리칸 사람들의 아이들을 데려갔다. 그리고 때가 왔다.
반란.
살육이 시작된다. 어둡고 침침한 기차 칸에서 윌포드의 군대와 꼬리칸 남자들은 서로를 도륙한다. 한 칸 한 칸 앞으로 갈수록 생존자는 줄어만 갔다. 꼬리칸 사람들은 몰랐던 세계의 등장. 알록달록한 교실 안에서 아이들은 꼬리칸 사람들을 쓰레기라고 배우고 있었다. 수목원 같은 곳에서는 온갖 푸르름이 가득했고, 곧이 어 클럽 같은 칸에서는 마약파티로 다들 취해 있었다. 이따금씩 전달되는 메시지. 메시지가 전달될 때마다 싸움의 판이 바뀐다. 배려는 총알이 되고 남은 이들 대부분을 죽여 없앤다. 집단 대 집단의 전쟁은 개인 대 개인의 전투가 되기도 한다. 적은 하나가 아니다. 상대편 모두와 개인이기도 하지만 사상이자 자기 자신이 되기도 한다.
끝판왕과의 조우.
자기 자신이 적이 되는 순간. 자기 자신이 무엇을 원했는지 만나는 순간. 길리엄(존 허트)은 경고했었다. 윌포드(에드 해리스)와 말을 섞지 말라고. 그리고 꼬리칸의 리더 커티스는 이 말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 대가로 혼란에 빠진다. 왕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착각. 어차피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단념. 선과 악은 애초부터 서로 결탁하고 있었다는 진실. 노예는 다시 풀어줘도 다시 노예가 되고 자기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이상 붕괴되지 않는 시스템의 견고함. 그는 넋을 놓는다. 자신의 욕망과 타인이 들려준 진실 안에서 고뇌하고 결정하지 못한다. 그동안 최후가 몰려온다.
필요한 건 마지막 문을 열고 가진 자들의 것을 빼앗아 균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벽처럼 느껴졌던 문을 깨고 나가 진짜 자유를 쟁취하는 일. 누가 이를 단행할 수 있을까. 이미 영역을 벗어난 자들의 최후는 얼음산 위의 시체들인데. 악을 벗어난다고 선이 새로운 세상을 이룰까. 선은 선으로 태어났나. 약한 자들의 방패가 선이라는 관념인가. 약한 자들이 더욱 약해지다가 살기 위해 서로를 잡아먹다가 어느 날 자신들의 야만성을 발견하고 변화하면 그게 선인가. 이게 선의 자기 합리화인가. 애초 생존을 위해 약자는 강자를 악으로 규정한 건 아닐까. 이분법은 얼마나 편리하고 강력하며 설득적인가. 성경에서 타락한 인류는 신의 분노를 사며 물로 심판받는다. 설국열차에서 기차는 폭발해 선로를 이탈해 완전히 파괴되고 만다. 이것이 희망일까. 봉준호 감독은 인간을 믿지 않는다. 어쩌면 모두가 자초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고, 눈은 아주 천천히 녹을 것이며, 기차는 언젠가 탈선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