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비포 미드나잇
날 56년 더 참아줄 수 있냐고.
여자는 희생이란 큰 정원을 영원히 탐험한다.
가르치려 들지 마.
당신 노래 참 좋아. 알아?
난 그 노래 때문에
인생을 포기했잖아.
어쩔 줄 몰라 애들 붙들고 운 게
몇 번인 줄 알아?
35살 넘어서 좋은 건 강간 확률이 낮단 거야.
키스 키스 가슴 가슴 거기
에밀리랑 안 잤다고 맹세해 보라고.
프랑스 여자들 헤프니까
더는 당신 사랑 안 해
달달한 멘트 날린다고 뜻대로 되진 않아
황당한 놀이 그만하자
당신 지랄 다 받아줬다고
서글픈 일이다. 공평한 일이기도 하다. 누구나 변한다. 아니 누구나 나이 든다. 나이 들면 변한다. 아니 변하면서 나이가 든다. 모르겠다. 확실한 건 다르다는 점. 기억과 다르고 기대와 다르며 과거와 다르고 예상과 다르다. 보이지 않는 과녁으로 쏘아 올린 화살처럼 관계의 미래는 늘 바람과 비껴나간다. 제시와 셀린느도 마찬가지다.
제시(에단 호크)에겐 아들이 있다. 전부인 사이에서 낳은 아이. 셀린느(줄리 델피)에겐 쌍둥이 딸이 있다.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날, 제시와 가진 아이들. 그리스 여행 중이다. 제시 아들은 미국으로 돌아간다. 남은 넷은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차 속에서 긴 대화가 이어진다. 마치 다큐멘터리 같은, 분할되지도 편집되지도 않는 장면. 뒷자리에 아이들은 잠들어 있고 제시와 셀린느는 현재의 고민들을 나눈다. 취업에 대한 이야기. 이사에 대한 이야기. 아이에 대한 이야기. 제시는 셀린느와 함께 미국으로 이사를 원한다. 아들을 방치한다고 여기는 전부인 때문에. 2주에 한 번밖에 못 볼 테지만 아들에겐 자신이 꼭 필요하다고 여긴다. 곁에 있어주고 싶어 한다. 셀린느는 난감하다. 미국에서 제시와 지내다 임신으로 인해 프랑스에 정착했고 아이들을 키웠다. 그리고 이제 겨우 새 직장을 구하려는 참이다. 좋은 기회가 왔다. 하지만 제시가 막무가내다. 그와 그의 아들을 사랑하지만, 미국행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그녀는 서운하다. 그리스 친구들이 마련해 준 숙소도 부담된다. 셀린느는 지금의 대화가 파경의 도화선이 될 거라고 단언한다.
얼마 만일까. 둘이 이렇게 오붓이 걷는 시간이. 아이들이 없다. 아이들의 소리가 없다. 아이들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돌보지 않아도 된다. 울음을 달래도 되지 않고 짐을 챙기지 않아도 되고 일일이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일러주지 않아도 된다. 지금만큼 제시와 셀린느는 부모가 아닌 연인, 남과 여. 과거 기차에서 만나, 운명적인 해후를 거쳐, 부부가 되어 여기까지 건너온 오랜 연인. 바뀐 것들을 걱정한다. 셀린느는 자신이 주름 많고 뚱뚱해졌다며 지금의 자신이 같은 칸에 탔어도 말을 걸었을 거냐며 묻는다. 침묵. 정적. 제시는 모호하게 답을 돌린다. 토라진 셀린느. 어느덧 해가 지고 있다. 사라지고 있다. 셀린느는 간절한 눈빛으로 읊조린다. 아직 거기 있다. 아직 거기 있다. 아직 거기 있다. 하지만 영원히 '아직 거기 있는' 것은 없다. 셀린느의 표정이 어둠보다 더 어둡고 씁쓸해진다. 되돌릴 수 없는 빛의 흔적들이 주름 사이사이에 서린다.
호텔에서의 밤. 둘의 거리가 점점 좁혀진다. 침대 위 둘의 몸과 몸이 포개어진다. 얼굴과 얼굴이 닿고 입술과 입술, 눈과 눈이 닿는다. 이 순간만큼은 부부도 부모도 아닌, 처음 만난 그때 같은 셀린느와 제시의 시간. 전화벨이 울린다. 탄식. 왜 받을까. 나라면 안 받을 텐데. 부모의 입장이라서 그런가. 셀린느는 몸을 일으킨다. 저 멀리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전화를 받는다. 제시의 아들 전화. 잘 도착했다는 안부를 전한다. 통화는 바로 끝나고, 침실의 온기도 급격히 식는다. 말이 이어진다. 아들의 이야기. 아버지로서의 이야기. 걱정스럽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 왜 안 하나 했다는 이야기.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침저녁월화수목금주말드라마 대사들이 이어진다. 미국 남자들에 대한 뻔함과 프랑스 여자들에 대한 허세에 대한 비아냥도 섞인다. 대화는 끝날 줄 모른다. 원망, 짜증도 그만큼 높아간다. 수습하려는 시도가 오가지만 셀린느의 상처는 농도가 짙고 그 누적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 소설가 제시가 하루에 두어 시간 밖을 돌며 사색을 하는 동안,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해야 하는 셀린느의 사색은 화장실에서 똥냄새를 맡으며 겨우 가능했다. 셀린느는 자신이 작사 작곡하고 직접 부른 노래로 한 남자의 평생을 사로잡을 만큼 재능과 열의가 있었는데, 있었는데… 오랜 시간 살림과 육아를 맡아야 하는 결혼한 여자로서의 역할에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 제시에 대한 의심과 확신. 책을 같이 홍보하던 담당자와 잤냐는 셀린느의 물음에 제시는 말을 돌린다.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헐벗은 상의로 대화를 시작했던 셀린느는 어깨끈을 다시 묶는다. 제시 역시 급하게 내렸던 바지를 추켜 올린다. 대화는 간격이 넓어진다. 셀린느는 제시에게 말한다.
더는 당신 사랑 안 해.
공간을 벗어나는 셀린느.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제시는 소파에 온몸을 파묻는다. 영화는 두 남녀의 남은 이야기를 좀 더 보여주지만, 어떤 가능성을 넌지시 비추지만 그건 마치 팬들을 위한 서비스 같았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다인 것 같았다. 호텔방에서의 긴 대화. 다툼.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다리. 건널 수 없는 강. 어떤 선언. 끝은 비장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별은 첫 장면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왔었고 누적되고 있었으며 수많은 기회를 날리고 자신의 목적지로 순항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꽃처럼 터지는 분노의 향연들. 누가 질세라 쉴 새 없는 난공을 주고받는다. 긴 산책을 통하며 나눈 말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반세기를 넘도록 같이 산 할아버지 할머니와 자신들을 비교하던 대화는 농담이었나. 식탁에서 나누던 사랑에 대한 잠언들은 어쩌고. 전편 비포선셋에서 셀린느에게 토로하던 제시의 모습이 떠올랐다. 멋진 삶을 꿈꿨지만 자신은 지금 사랑 없는 결혼생활을 하는 애 딸린 유부남이라고. 지금 제시의 모습은 그 대사를 스스로에게 되돌려주고 있었다. 상대가 운명의 사랑이라 믿었던 셀린느로 바뀌었음에도 제시는 그때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노력에 의해 유지되는 관계. 남들의 고루한 결혼생활과 자신들은 다르다 말할 수 있을까. 제시의 사랑은 자신의 소설 안에서만 존재했다. 전 세계 독자들은 제시가 쓴 제시와 셀린느의 이야기를 읽고 감탄하며 자신들의 사랑을 재확인했지만 정작 그 주인공인 당사자들은 마초 남편과 희생만 강요당하는 아내일 뿐이었다.
끝내주는 섹스를 한다고 회복될 수 있을까. 눈빛으로 여자들과 교감하려는 제시가 희생에 지친 셀린느가 다시 기차 칸 그날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자정이 오기 전까지 그토록 긴 선이 그어진 생채기에 새살이 돋을까. 타임머신을 탈 수 있을까. 극단적인 비관만은 아닐 거라고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답하고 있었다. 둘은 끝났고 로맨틱은 사라졌다고. 남은 건 자정 이후의 암흑뿐. 다시 일출은 시작될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둘이 여전히 같이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내기를 건다면 아닌 쪽에 걸겠다. 사랑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