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

by Glenn

끝은 너무 많지만

어떤 끝은 현재를 바꿔


머뭇거림을 지워

혼란을 완전히 벗기진 못해도

자욱함 속에서 실행을 향한 의지를 아니

실행에 이르게 해

선택 결정 실행이 아닌

실행이 결론인 걸 직감하고

돌입하게 해


긴장 몰입 결단 실행


실행은 한 장면의 결과가 되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게 해


다음 실행으로 다시

다음 실행으로

실행의 상황을 바꾸게 해


진보인지 퇴보인지

당장은 알 수 없어


끝에 대한 두려움은 이런 걸 건너뛰게 해


숨이 턱까지 차오르거나

온몸이 통증에 시달리면

무슨 생각이 들까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

고통 자체와 고통의 종말을 위한 해결책에

모든 신경을 기울이게 될 뿐


끝에 대한 생각도 그래


임시적 각성에 이르게 해

편향적 결론이라 해도 어쩔 수 없어

끝에 대한 조바심은

완전과 완성에 대한 집착을

사소하게 만들어


쉽고 흔한 예로 생명의 끝, 죽음


죽음을 셀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다고 가정하면

우선순위가 보다 선명해져


무엇을 더 원하고

무엇에 더 절박하고

무엇이 더 궁금하고

무엇의 변화를 더 원하는지


정신의 지옥에서 꺼내

투박한 실행의 지위로 옮겨 놓고


남은 것은

버튼을 누르는 일뿐

가속 페달을 밟는 일뿐

불법유턴이라도 하는 일뿐

마이크를 쥐고 뭐라도 말하는 일뿐

찰나의 멱살을 쥐고 끌어당겨

추상의 이미지를 획과 점으로 새겨

돌판에 남기는 일

유언이 될 수도 있으니까


모든 진실이 바닥에 쏟아져

걸음을 느리게 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진심은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위해서

또는 언젠가 들을지 모를

고백의 퍼포먼스를 위해서


숨이 끊어지고 육신이 태워져

사라진 상황에서도

누군가에게 다정한 영향을

미치고 싶기도 한 것


사후까지 노린 이기심인가

내가 그럴 자격이 있는가

누가 그걸 원한다고 이러나

이런 갈등이 따라오지만


어쩌면 당장 내가

죽을 수 있는데

타인이 입을 가상의 대미지를

신경 쓸 겨를이 없어


인류의 절반을 죽이고

자결하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극소수에게 덜 미안하고 싶은 것


극소수는 하나가 될 수도

무리가 될 수도 있지만

결단을 내리기엔 하나가 좋아


하나를 위한

하나의 순간

하나의 실행


생물학적 죽음과의 간격이

심각하게 좁아진 적 있었고

이후 생긴 일상의 태도 중 하나는

감정을 삼키며 비겁하게 버티지 않고

해야 할 말을 하며 리스크를 감당하는 것


리스크라...

죽고 나면 리스크가 아냐

죽은 자는 알 수 없으니


리스크를 허상에 가깝게 취급하기도 해

가능성 낮은 미래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상상력으로만 창조된 공포


수없이 두려워해 봤지만 두려움 자체가 두려웠을 뿐

두려움 자체가 실체적 위기로 덮친 기억은 희박해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구체적 이미지로 그려졌을 텐데


생물학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망설임의 영역을 차단하고

서둘러 일상의 극적 변화로 나아가게 해


마치 알파 브라보 탱고를 읊조리고

단숨에 핵버튼을 누르는 것


끝은 너무 많지만

어떤 끝은 현재를 바꿔

뒤로 돌아가는 법

같은 건 없어


빠르고 과감해져

무엇을 원하는 누군지

나를 좀 더 알게 돼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 수 있게 돼

관계의 암묵적 룰을 정하며

내가 왜 이러는지

설명할 수 있게 돼


타의에 물러서지 않고

관습에 물들지 않고

과녁이 아닌

칼끝이 될 수 있어


더 견고하게

우리를 지킬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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