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으로 오는 것들

누군가에겐… 어느 누구.

by 백승권

차 샀다. 집 주차장에 있다. 월화수목금 내내,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다. 디메이저 올 때 안 탄다. 길눈 어둡다. 운전 아직 서툴다. 그래서 걷는다. 걸어서 분당선 간다. 신분당선으로 갈아탄다. 양재 시민의 숲 역에서 하차, 버스로 갈아탄다. 441번도 가고 11-3번도 간다. 버스정류장 내려서 좀 더 걷는다. 걷는다.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향나무로를 걷는다. 3월부터 그랬다. 과천으로 생의 방향을 바꾸면서.

점심에도 걷는다. 도시락 먹고 남은 시간, 30분. 나간다. 볕 쬐러. 걷는다. 뚜벅뚜벅. 흙 밟고 다리 지나 졸졸 물소리 듣는다. 디메이저 사옥 2분 거리, 그 시간 양재천 주변엔 뭐가 많다. 팔뚝을 이케아 공구처럼 니은 자로 구부리고 걷는 아줌마 있는가 하면 안구에 습기 차도록 고글 쓰고 자전거 페달 밟는 아저씨 무리들도 있다. 돌계단과 벤치에서 도시락 까먹는 여학생들 있는가 하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떠들어 대는 남학생들도 있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까치들, 전봇대 위에 거대한 까마귀들, 그리고 저거 합성인가 갸웃거리게 만드는 어떤 하얀 새까지, 아 물가에 오리도 움직인다. 다들 어디론가 꿈틀대고 소리를 낸다. 푸른 잎사귀들과 흙먼지들 사이에서, 다리 밑 그림자 곁에서, 벚꽃나무 가지 위와 자전거 표지판 아래에서. 그런 소리들과 움직임들을 달구는 햇볕과 지우는 구름 밑에서 걷는다.

걷다 보면 시야 바깥에 놓인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화훼단지 비닐하우스 지나 산등성이 넘어오는 것들, 람보르기니 서비스 센터와 혼다 서비스 센터 사이로 오는 것들, 선바위역 1번 출구를 나와 마포갈비식당 지나 본 수원 갈빗집 찍고 오는 것들, 아마 내가 여기 도착하기 전부터 오고 있었고 여길 알기 전부터 오고 있었던 것들. 아직 이름 지어지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불려지지 않았던 것들. 언제부터 원했는지 기원을 알지 못하고 어떻게 지문인식장치와 유리문을 뚫고 3층 높이 계단을 지나오게 될지 시기를 가늠할 수 없는 것들. 누군가에겐 크리에이티브, 누군가에겐 아이디어, 누군가에겐 RFP, 누군가에겐 은색 도시락 가방, 누군가에겐 택배 박스, 누군가에겐 클라이언트, 누군가에겐 레노버 또는 애플의 노트북, 누군가에겐 깐느 트로피, 누군가에겐 미래, 누군가에겐 과거, 누군가에겐 돈, 누군가에겐 시간, 누군가에겐 졸음, 누군가에겐 연애, 누군가에겐… 어느 누구.

기다린다고 도착하지 않을 것이고, 원했다고 발견하지 못할 것이며, 오래 고민했다고 딱 맞는 답을 얻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 된다 한들 크게 아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제의 간절함과 오늘의 소유가 비례했다면 주변의 우리들은 조금 다른 구성원으로 채워졌을 테지. 앞으로 같은 개수의 계절을 겪는 동안, 얼마나 다른 색깔들의 격정과 환희와 직면하게 될까? 출처불명의 딴생각을 하며 걷는 동안, 오전에 출력한 A4용지에 적힌 글자들과 잠시 멀어져 있어야 했다. 원점으로, 다른 딴생각들로 회귀하려 신호 없는 유턴을 꾀할 시간. 이미 닥친 일보다 이젠 치울 일들 리스트를 복기해본다. 허락도 없이 온 봄이 맘대로 떠나는 꼴을 관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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