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이지 않는 법'을 읽는 중입니다
기분이 많이 나아졌어요
특히 철학자들의 자살 사례가 인상 깊었어요
(조금 옮겨 적으며 리뷰를 쓸 예정입니다)
우울증에 걸렸다고 인지하며
그걸 메모하면 우울증이 나아지나 라고
메모하면 나아지나 라고
메모하면 나아...
걷다가 자살자살자살에 대한 생각을 했고
(자살하고 싶다가 아닌 '자살'에 대한 생각)
(나는) '자살 고위험군인가'라는 생각도 했어요
물론 아닐 것입니다
나를 죽이지 않는 법을 다 읽었고
최근 3년 동안의 독서 중
가장 많은 문장을 발췌했어요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죽음과 자살에 대해 얼마나 깊고 뾰족한
생각으로 나아가도 수천수백 년에 걸쳐
누군가 이미 했던 내용일 것 같다는
내가 그걸 몰랐다고 하여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반대의 경우도 성립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비교를 통한 불안과 불행은 좀처럼 내 것이
아니었어요. 앞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하기 싫은 일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 가늠하기
어려워 막막할 때가 있어요
타인에게 의지할 수 없는 독립적 영역
절망과 희망은 이분법의 대상이 아닐 것입니다
차라리 상호보완적인 동업자 개념에 가깝지
희망은 사태의 최종 파괴를 막는 포장지로써 충분한가
차라리 더 견고하게 덮칠 절망을 위한 충신이자
자객에 가까울 것입니다
희망의 존재 때문에 절망은 강화되고 영원히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음독을 돕는 소화제에 가깝죠
절망이 신체 내부로 빨리 퍼지고 더 강력한
효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암묵적으로 돕습니다
희망 덕분에 절망의 체내 체류시간과 수명은 길어지고
쉽게 소멸되지 않으며 더 구체적으로 작용하고
통증이 줄어들지 않아요. 절망과 희망,
둘은 한패입니다. 부끄러움 많고 자존심 센
대다수 이들이 숱한 고난과 배반을 겪으며
희망의 이런 역할을 모를 리 없어요
이들에게 ‘희망’은 주위의 빈말을 차단하고
무의미한 대화의 연장을 조속히 종결시키기 위한
투구, 방패, 소음 차단용 귀마개, (창)문 닫기와 같아요
“... 그래도 희망이 있겠죠(이 대화 그만할래)” 같은
그래서 차라리 희망은 더 기만적이죠
절망은 질감, 질량, 타격감으로 실제 하지만
희망은 기만과 허상에 가깝죠
없지만 있는 척하고 그렇게 영역과 지위를 지니고
그저 믿음만으로 만인을 약자로 만드는
공익을 부르짖는 독재자의 혀 같은 것
그 있지도 않은 목줄에 감겨
멀리 나가지 못하고
생각을 가둔 채 벌판에서 질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