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민호 감독. 메이드 인 코리아
중정(중앙정보부)의 백기태는 마약을 팔기로 한다. 국가에 목숨 바쳐 충성한다는 보직이었지만 힘없으면 죽는다, 힘이 전부다라는 일념으로 올라왔고 마약 판매는 권력 비리와 결탁하여 (부까지 거머쥔) 핵심 권력이 되기 위한 가장 빠른 방식이라는 결론이었다. 과장까지 올라가는데 수많은 이들을 제거했을 그에게 윤리와 도덕은 가장 낮은 계급의 취향이었다. 자신과 자신이 택한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누굴 없애든 누구 삶이 망가지든 상관없었다. 자신을 방해하는 검사를 납치하고 겁박하며 검사의 집안을 멸문지화 시킬 수 있었다. 여동생을 공범으로 만들고 남동생을 낙하산으로 꽂는 일도 아무렇지 않았다. 백기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했고 그게 법이자 기준이며 전부로 여기기 위해 개처럼 숙이고 뱀처럼 간교히 굴었으며 모든 인간을 하나의 수단으로 대상화한다.
어릴 때부터 고생을 얼마나 많이 했으면 그랬을까...라는 연민은 쉽게 가닿지 않는다. 캐릭터 연출의 의도겠지만 백기태는 내가 성공하려고 이렇게까지 한다는 유사 상황에 처하는 보편적인 인물들의 고뇌와 갈등이 없다. 그는 자기가 무엇을 원하고 추친하며 어떤 결과로까지 이를 수 있는지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피와 살인, 희생은 거쳐야 할 과정일 뿐이다. 애초 그가 택한 조직 역시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분쇄해서 죽이는 중앙정보부 고문실 옆이었다. 그는 매일 같이 사람이 찢기고 죽는소리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오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걸 무릅쓰고도 반드시 거머쥘 목표만을 향해 죽고 죽이고 또 죽이려고 안간힘을 쓸 뿐. 그가 (스타일리시한 외형처럼) 남조선 007이었다면 그럴듯했겠지만 실상은 007과 대적하는 거악과 가까웠다. 그의 총구나 칼끝은 망설인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누굴 죽이는지 알고 있었다. 사소한 왜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기 위에 아무도 두고 싶지 않았다. 모두를 발밑에 두고 싶을 뿐.
이런 강력한 아우라가 메이드 인 코리아 시리즈 모든 장면에 서려 있다. 끔찍한 사연과 원칙을 중시하는 검사 캐릭터조차 자욱한 어둠 속에서 매번 길을 잃을 뿐이다. 백기태(현빈)는 등장부터 비장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자 같았다. 냉철함과 완전함으로 무장했지만 그럴수록 기대되는 건 파괴되었을 때의 스펙터클이었다. 자기 가족을 위해서라면 다른 자들의 모든 가족을 죽일 수 있는 자이지만 그걸론 부족하다. 결국 자기가 지른 불에 자기가 녹아내리는 결말로 갈 수도 있지만 이런 영악한 자에게 더 디테일한 절망적 최후가 주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가정들이 결국 백기태가 여기까지 오면서 봐온 고문의 과정일 뿐이다. 살아 숨 쉬는 게 고문이어서 잊기 위해 타인의 살아있는 모든 것을 빼앗고 그토록 원하던 성배를 손에 쥐고 정점이 무너지며 허무해지는 순간 결국 자신의 숨까지 끊어놓지 않을까. 그래도 나는 다 이뤘노라고 미친 악당처럼 웃음을 터뜨릴까. 백기태 같은 인물이 개과천선이라는 동화 같은 반전을 맞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건영(정우성)이 비 오는 날 마주했던 마약과 살인으로 피범벅이 된 사건 현장, 그런 그림이 그나마 백기태의 최후와 어울릴 것이다. 참회라는 사치 없이 백기태가 자신이 가장 염원했던 목적의식 안에서 파멸하길 소원한다. 죽어가는 노동자들로 만든 멀끔한 물건 같은 한국이 제조한 권력형 인간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