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의는 그리 특별한 작용이 아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누군가를 삶에서 제거하고 싶었다.
과정에 드는 수고와 대상이 표출할 고통 등이 같이
연상되고는 했지만 아무래도 괜찮았다.
제거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내가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런 경우 제거보다는 어떤 상황을
느끼고 감내하며 경험하는 주체의 종결을 원했다.
아마 나머지 살의의 실행보다 비교적 간편할 것이다.
죽음을 이후의 여파가 아닌 하나의 메모를 지우는 일,
담당 업무를 처리하는 일 정도로 여기면 그렇다.
죽음의 대상화 정도라고 해야 할까.
아주 오래되어서 친근한 생각이기도 하다.
살의와 살의에 대한 실행,
이와 연결된 부가적인 생각들은
지금과 현실에 대한 중압감을 다른 레이어로
옮길 수 있게 해 준다.
그렇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물리적인 변화는 없다.
감옥에서 탈옥을 떠올린 들 형량이 줄어들리 없다.
쇼생크 탈출의 앤디 듀프레인처럼
모차르트를 만인에게 들리게 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최근 2주는 비교적 덜 시끄러웠다.
얼음송곳으로 피부를 꿰어 매달리는 느낌에
덜 시달릴 수 있었다.
상상력은 웃기게도 늘 어둠에서
더 어두운 지점으로 끌어당긴다.
언젠가 급진적 충동이 애써 중심을 잡는 척했던
줄을 끊고 고공낙하 후 온몸의 뼈를 부수고
가까이의 누군가를 다치게 하진 않을지
그런 사건으로 안내하진 않을지
잔잔한 조바심을 내기도 한다.
위험한 건 없다. 일어나지 않을 일들은
일어나지 않으며 일어날 일들은 이미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점점 지워지는 것들이 있다.
나도 같이 지워지는 것 같다.
점점 내가 아닌 내가 되어가고
낯선 내가 적응이 되지 않을 때
그땐 아마 이런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