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가보지 못한 세상도
별 것 없을 거라는 비아냥
타인이 들려준 꿈의 스케일이
내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바로 뒤집어 쓰는 그게 말이 되냐 라는 표정
너와 나의 생각은 다르다는 걸 알고
나는 그 차이를 기꺼이 존중하며
나는 그렇게 매너 있는 사람이라는
자의식조차 없을 정도로 매너 있는
사람이라는 고장 난 메타인지 장치
눈에 보이는 사람 수의 제곱만큼
지상 지옥이 존재한다는 이론
이런 것들은 너무 보편적이고
듣고 싶은 말이 있지만
어차피 듣지 못할 테니
굳이 듣지 않아도 상관없을 거라고
구기고 짓누르며 맺히는 눈물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
괜찮다고 말하는 떨리는 음성
혼잣말로는 매일 같은 시간 읊조려도
한 줄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머뭇거림 아니 무능
기억나는 것들을 계속 기억해 내면
기억이 다시 현실로 기워져
가상현실이 리얼월드로 복원될지도 모른다는
주술적 믿음
사랑해라고 말하는 사람과
사랑해라는 말을 듣는 사람과
사랑해라는 말을 듣지 못하는 사람과
세 사람이 모두 같거나
세 사람이 모두 다르거나
모두가 각자 신경 쓰고 있더라도
서로가 그걸 영영 알지 못할 거라는 비극
행복과 불행은 양날의 칼이라는 깨달음
도돌이표 같은 침묵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 못하는 나약함
자책의 유혹, 간편한 혐오
끝나지 않는 허기, 실체 없는 갈망
과거의 나를 냉담하게 응시하는 현재의 나
놓치고 있지만 알지 못하는 것들
아무것도 아닌 감정들
아무일도 없었던 날들
금단 증상들
짊어진 거짓말과
굽은 등, 처진 눈, 내뿜는 한숨
다들 이렇게 산다는 음모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