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에게 일 년에 한두 번 편지를 쓴다. 삭막한 이야기지만 -직접 전달해야 하는 종이 편지지나 카드는 접근성이 약해- 카톡으로 주로 보낸다. 정기적이지도 않다. 주로 한해의 마지막이거나 명절 시즌이고 느닷없이 떠오르면 보내기도 한다. 그중 한 분은 작가(이하 그로 통칭), 처음 그의 글을 읽었을 때부터 훈련과 경력으로 따라갈 수 없겠구나... 하는 범접할 수 없는 인상과 한계를 느꼈다. 아주 오래전 팬으로 연결되어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데 얼마 전 그가 고기를 사주겠다고 했다. 내가 오랜만의 편지에 먹구름을 올려놨기 때문에.
저녁 약속의 변수란 늘 그렇듯 붐비는 도로. 조금 늦었고 나보다 먼저 불판에 올라간 고기는 잘린 근육을 태우며 익고 있었다. 그는 내게 사랑하는 일은 고기를 먹이는 일이라며 쉼 없이 주고 주고 또 줬다. 심지어 자주 가는 편집매장에서 이런 스타일도 어울릴 것 같았다며 일본 브랜드 재킷을 선물로 주셨는데. 와. 미친... 너무 좋아. 핏부터 스타일까지 내가 100일을 고민하고 사도 이런 아이템은 못 살 텐데. 오래전 결혼 한다고 찾아뵈었을 때도 한아름 가득 선물을 안겨주던 분이었다 이렇게 쓰니 선물을 너무 밝히는 것 같지만 기억나는 걸 애써 부정할 순 없으니까. 이미 그는 태초부터 문장과 태도의 롤모델이었다.
그가 아주 오래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게 쏟아주었던 찬사가 잊혀지지 않는다. 어떤 기억은 평생의 에너지가 되기도 하니까. 알고 지낸 지 15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그는 내 주머니를 걱정하며 보다 저렴한 가격의 커피 브랜드로 가자고 하는 사람이다. 아주 오래전 갑작스럽게 보는 자리에서도 오다 사 왔다며 검정 봉지에 사과를 담아 오기도 했던 어른.
오랜 시간을 두고 만나는 관계에 대한 소소한 애정을 기록하고 싶었다. 손과 얼굴이 비누거품으로 가득해서 적어두지 못한 메모가 몇 시간 뒤 전혀 생각나지 않듯 모든 경험은 선물의 형태와 달라서 기록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기억들은 물에 젖거나 불에 타서 사라진다. 이번 약속 장소는 소음으로 가득한 식당이어서 나는 거의 모든 시간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강렬한 실내 소음이 청각을 장악할 때마다 겪는 사고와 행동의 마비 증세. 말은 했지만 매뉴얼 같았고 행동은 했지만 모두 어설펐다. 커피를 절반 남긴 후 일어나 골목을 조금 걸었다. 과거의 에피소드를 꺼내었고 자주 만나지도 않았는데도 시간의 속력을 무시하듯 선명한 색감이 날아가지 않았다. 어떤 에세이를 읽다가 쓴다. 다음은 그가 추천해 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글들을 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