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내 거야, 베이비걸

할리나 레인 감독. 베이비걸

by Glenn

타자에 의해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싶은 충동

제대로 느낄 수 없는 걸 느끼고 싶다는 오랜 결핍

너의 손바닥에 놓인 먹이를 핥아먹는 개처럼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천천히 걸어와

품에 고개를 파묻고 주인이 쓰다듬으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어


내가 지시하고 당신은 따른다


금기의 룰이 내재된 사람들끼리 만나는 순간

좁고 낡은 호텔과 넓고 복잡한 회사와

익숙하고 편안한 집의 경계는 완전히 무너진다.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인턴과 대표라는 계급은

벽이 아니라 가장 자극적인 촉매

벽이 높을수록 넘나드는 쾌감이 요동을 친다

감출수록 미칠 것 같고 구석을 찾을수록

견딜 수 없을 정도


시키는 건 다 하겠습니다


어둠을 탐닉하고 거짓말을 사랑할수록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어

이런 희열을 상상이나 했을까

이런 전율이 어떻게 내게 일어날 수 있지

멀어지면 힐끔거리고

가까워지면 더 가까워지려고 전신을 에워싼다


안 되는 걸 알아서 더 안되게 하고 싶다

도망칠수록 더 도망치고 싶다

거짓말할수록 더 지독한 거짓말을 하고 싶다

가족을 사랑해, 하지만 너는 가족이 아니라서 더 원해

누구의 아내, 엄마로서의 내가 아니라

누구를 위한 내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나를 위해 너를 원해


그가 떨어뜨리고 간 넥타이를 집어삼킬 듯이

깊고 어지럽게 흡입한다

기억이 흐릿할 적부터 누가 날 길들였으니

앞으로도 길들여지고 싶어

제발 날 그렇게 해줘


이제 그가 내 것이 아니라는 가정은 용납할 수 없다

내가 그가 길들이고 예뻐하는 동물이듯이

그는 내 것이어야 해


너 딴 여자 만나는 거 싫어

넌 내 거야, 내 거라고


모든 꿈이 그렇듯

그대로 영원히 죽을 게 아니라면

서서히 정신이 들기 마련


너는 회사 대표야

너는 남편의 아내야

너는 아이들의 엄마야

너는 수많은 여성들의 롤모델이야


로미는 눈을 뜨고

사무엘은 감은 적도 없었다


우리가 한 짓은 괜찮은 게 아니야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거기엔 내가 만족하는 자극이 없어

사무엘을 원한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자극을 실현시켜 줄

타자가 필요했어


그토록 갈망하던

성적 쾌락의 추구를 위해

대표라는 직위와

다정하고 듬직한 남편과 사랑스러운 딸들

거대한 저택과 광활한 자산으로 구성된

가족이라는 보금자리와

수많은 여성들의 커리어와 비전을

키워줄 수 있는 가치를

내려놓을 수 있는가


그런데 이걸 왜 선택해야 하지

그동안 남자들은 모두 다 누릴 수 있지 않았나


은밀한 욕망을 폐기처분하며

가짜의 삶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늘 두 갈래의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사무엘(해리스 디킨슨)은 개를 길들이고

로미(니콜 키드먼)는 자신의 판타지와

끊임없이 마주할 수 있다


어떤 비밀은

숨길수록 날카로워지고

나눌수록 자극적이니까


베이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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