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원할 때

by Glenn

몸이 원할 때가 있어

이성적이든 합리적이든

안정이든 안전이든 그게 뭐든

다 구겨서 보이지 않는 곳에 치우고

늘 비슷한 시간

늘 비슷한 장소

늘 비슷한 선택을 거부하고

아주 멀리서부터 오는 느낌의 갈고리에

허벅지 안쪽의 간지럼 많이 타는

신경이 몰리는 곳의 피부가죽이 꿰어서

끌려가듯이


몸이 거기로 가


과거의 이미지와 거기에 묻히고 온 감정이

현재를 움켜쥐고 끌고 가


거기에 가서 대기한 후 커피를 주문했어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는 아무도 모르지만

공간의 기원과 이름과 내가 여길

원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지


설명을 듣고 새로운 메뉴를 추가하고

거기서 나른히 기대어 한쪽 팔로 머리를

지긋이 받치고 더 베어 시즌2 6화를 봤어, 다시.

마침 그 에피소드였거든


어떤 영화들 열개의 감흥을 더한 들

영원히 이 에피소드의 단 한 장면에도

비견될 수 없어.

every second counts


하나의 몸은 하나의 시각에

하나의 장소에 있을 수밖에 없잖아

이런 관점에서 모든 공간은

거기 있는 이상 대체불가인데

그곳은 여러 면에서 그러했어

그동안 거길 정말 자주 갔거든, 모두 혼자.


이번이 제일 느긋했어

입으로 들어가 혀를 지나

목으로 넘어가는 것들

현장에서 우연히 결정했음에도

무척 만족스러웠을 때


시간이 가는 게 아까웠지


하지만 그렇다고

울고만 있을 수는 없고


베어 가문 모두가 성탄절 저녁을

알코올 중독의 광기로 물든 지옥으로

만드는 게 아름답고 지독했고

웃기고 완전하게 환상적이었지


클로즈업, 편집, 표정들, 연기, 대사,

절망의 관계, 혼돈, 비극, 과거, 갈등,

미친 미친 미친 인간들, 혐오, 망한 사업들,

포크, 욕설, 시비, 분노, 난장판, 흡연,

모든 틈의 술병들, 금지된 위로,

광기, 소돔과 고모라, 실수와 실패,

회복 불가

죽일 듯이 노려보고

울먹거리고

우울하고 우울하고 우울하고

구원받지 못한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자살의 예언서 같은 장면들

부서지는 벽 무너지는 관계

아무리 소리쳐도 열리지 않는 문

산타가 오븐으로 나오다가

집에 불을 질러도 이해가 갈 듯한

행복한 가족사진 같은 고문 장면들


살아있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죽음보다 더한 친족 살육 장면을

노쇼와 망한 성찬보다 더 최악인

최악 최악 최악을 보며


소리 내어 한참을 웃었다

근육과 신경이 말랑거렸고


다른 날 똑같이 시도한들

결코 같을 수 없지

이런 경험은 두 번은 없다


투박하게나마

감옥벽에 손톱으로 적은

남은 날짜처럼 읽히더라도


기록하고 싶었어

영수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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