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단 헌트, 30년 노동의 끝

톰 크루즈 주연. 미션 임파써블: 파이널 레코닝

by Glenn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졸업/브로콜리너마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세뇌는 대가를 치른다

아끼는 사람들을 무참히 잃거나

큰 일 터지면 무조건 다 너 책임

하나도 힘든데 이 둘을 매번 겪는다

인생에서 사랑과 일로 묶인 공동체가

눈앞에서 사멸하는 걸 보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경험이 얼마나 될까

에단 헌트(톰 크루즈)는 환갑이 넘는 나이까지

얼음 바다에 벌거숭이로 떨며 잠수하고

굉음의 비행기에 매달려 고공격투를 즐기며

자기 직업을 향한 고귀한 사랑과 헌신을 증명한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톰 크루즈, 아니 에단 헌트는 미션 임파써블을

더 임파써블로 보이게 하기 위해

올드팬 뉴팬 더 더 감동시키려고 팀을 꾸려

온갖 스턴트를 다 했다


맨손 암벽 등반, 고층 빌딩 오르기, 장시간 잠수,

비행기 매달리기, 고공 오토바이 점프,

비행기 매달리기... 사람들은 점점 그가

죽음에 이르는 공포를 즐긴다고 믿기 시작했다

에단 헌트가 아니라 톰 크루즈가


007과 종종 비교되며

고정 팀과 게스트처럼 바뀌는 적과 조연들이 생기고

그중 일부는 거물이 되어 자기 이름을 걸고

영화를 책임지고 있다, 물론 그들은

이 시리즈가 아니어도 자기 이름을

드러냈을 배우들이다


특히 내가 가장 여러 번 보고

좋아하는 건 3편인데

머릿속에 심은 작은 폭탄이 터져

동료가 죽은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점점 그는 지쳐 보였다.

팀의 헌신과 너스레에도

에단 헌트는 어쩌지 해야지 같은

표정으로 지구를 지키려 뛰고 또 뛰고

또 뛰었다. 애써 숨기지도 못했지만

화면 밖으로 그의 피로감이

내내 튀어나왔다


이런 글을 굳이 쓰는 이유도

미션 임파써블: 파이널 레코닝에서

어떤 표정을 읽었기 때문이다

대사와 지도로만 존재하는

망한 보이그룹 이름 같은 엔티티의

지구 멸망 플랜을 막으려고

에단 헌트는 또 목숨을 걸고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어

잠수함에 두 번이나 들어간다


시체가 아직 다 썩지 않은 잠수함은

에단 헌트가 지닌 적나라한 죄책감 자체였고

시종일관 기울고 굴리면서 에단 헌트를

물지옥에 수장시켜 죽일 듯이 흔들렸다


그곳에서 톰 크루즈, 아니 에단 헌트는

지치고 퀭하고 허탈하고 지겨워 보였다

아니 내가 대체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그냥 내가 죽든 다 죽든 그냥 끝나면 그만 아닌가

여기서 소리 없이 죽어도 아무도 모르고

증거 데이터 다 인멸하고 없는 사람 만들 텐데

이미 세상에 내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비디오테이프 연기 피어오르듯 사라지고

늘 여기저기 설쳐봤자

가깝고 아까운 사람들만 다 죽고

특히 이번엔 모두가 다 지구 멸망이 내 책임이라고

한 목소리로 개지랄들을 떨고 있는데

아니 같이 목숨 걸던 친구도 죽고

나도 그냥 피곤하고 빨리 죽고 끝나고 싶은데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보이지 않는 헌신 이따위 거

임파써블이든 임파선이든 그냥 다 관두고 싶은데...

어떤 지긋지긋함이 표정과 얼굴, 머뭇거리는 동작

전체에 깊이 젖어 흔들고 뭉개고 있었다

그 길고 거대하고 아찔하고 어지러운 장면들 속에서

그의 시간은 이만 다 멈추고 싶어 하는 듯 느껴졌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지구 평화를 위한

30년의 고독한 노동이라니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넷에도

비슷한 개념이 등장한다

당시 이런 리뷰를 썼었다.

테넷은 세기말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작동되는 방식의 평온한 풍경을 강조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싸웠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은 언제나처럼 표면적인 고요를 유지한다. 이건 결코 사건사고의 발생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을 저지하기 위한 수많은 요소들의 저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고 누군가 알아주고 이런 결과에 경탄하며 수고를 치하하는가? 그런 일은 없다. 세상은 그대로 돌아가고 아무도 여기에 의견과 감정을 담지 않는다. 무심과 무지에 가깝다. 그렇다고 위기와 위협이 속도를 늦추는가. 그럴 리 없다. 최악의 위기는 (나없을 세상의) 고요를 파괴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모든 디테일을 조종하려 한다. 막지 않으면 인류는 전멸한다. 전멸 이후의 세상과 시간은 의미가 없다.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아무도 없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동안

그 일상을 위해 누군가는

전부를 버리고 헌신하고 있다는 것


그게 잠수복을 입고

물살에 뒤뚱거리며 어쩔 줄 몰라하는

톰 크루즈, 아니 에단 헌트의 표정에

가득 새겨져 있었다


비장하고 경직된 근육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는 그저 아무렇지 않게 연습하는 김연아처럼

자기가 맡은 일을 한다. 될 때까지

목숨도 잃어가며, 자살도 시도해 가며

다시 살아나며 다시 죽으려 뛰어들며

자기 일이라고 여기는 그걸 한다

버스기사가 매일 같은 코스를 운전하듯

에단 헌트는 매일 같이 지구를 지킨다


톰 크루즈가 어떤 영화들에 출연했든

심지어 아이즈 와이즈 셧에도 나왔지만

그의 30년 직업은 에단 헌트였다

아마 앞으로도 그 직업이 남긴

주름과 지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도 누군가는 에단 헌트 같이

자신의 삶은 폐허가 되었지만

보이지 않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홀로 번민하며 노동의 밤과

불안의 새벽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졸업/브로콜리너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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