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 않다

최다혜 글 그림. 아무렇지 않다

by Glenn

일상의 비극은 극단적인 고통에서 오지 않는다. 시끄러운 경적음 사이 끔찍한 교통사고처럼 오지도 않는다. 비극은 바뀌지 않는 것들로부터 서서히 온몸을 조여 온다. 나는 여기서 아주 오랫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구나 라는 자각은 예언이 된다. 굳이 혼잣말로 읊조리지 않아도 가까이에서 들리는 소음과 대화들이 매번 알려준다. 너의 잔잔한 불행은 쉽게 끝나지 않을 거야. 너는 늘 그랬듯이 노력하겠지만 주변의 대화에 동참하지 못할 거야. 그들은 너와 다른 삶을 살고 있고 너도 마음 어딘가 그것을 동경하지만 거기에 닿지 못할 거야. 높은 확률로. 너의 선택이 너의 현재가 너를 그렇게 그렇게 만들 거야. 저주는 악마와 마녀가 아닌 스스로의 평범한 목소리, 아무렇지 않은 눈빛, 잠시 멈추는 정적의 시간, 낮에 꾸는 꿈, 혼자 티브이를 보며 먹는 밥상으로부터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일러스트레이터 김지현, 대학 시간 강사 강은영, 무명작가 이지은, 이들은 하나의 무표정으로 하나의 시대와 세대 전체를 거울처럼 보여준다. 안 좋은 소식과 사건에 격렬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만큼 서글픈 일이 없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반증이라서. 이들은 무덤덤하다. 갑작스러운 충격이 덮쳐도 멍하니 눈을 뜨고 느리게 일어난다. 먼지를 툭툭 턴다. 편의점에 들른다. 알바를 구한다. 업무 상 사람을 만나고 다정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제안을 받기도 하고 납득되지는 않지만 그걸 거친 사람들이 올라간 높은 계단도 마주한다. 이보다 익숙한 현재는 없다. 기대 없는 눈빛, 말갛고 흐릿한 표정, 더듬거리지만 놀라지 않는 목소리. 원하는 길을 간다는 이유로 남들보다 조금 궁색하거나 궁핍해진 기분, 무명의 타인들도 각자 힘들겠지만 김지현, 강은영, 이지은 역시 오랜 피로의 무게에 짓눌린 그림자들이다. 아무렇지 않은 대화도 아무렇지 않은 일상도 아무렇지 않은 관계도... 그런 건 세상에 없다. 세상 모든 순간순간이 전부 다 별일이고 지겹도록 어두울 뿐이다. 최다혜 작가의 이 책에 덤덤히 옮겨져 있다. 마른 눈물도 조금 섞어 선을 그리고 색을 문질렀을 듯한 컷과 컷 사이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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