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사람들

제임스 도즈. 악한 사람들

by 백승권

이 책은 잔혹함을 다룬다.


그때 대장이 “발사!” 하고 명령했어요. “다 쏴버려!”라고 했죠. 그래서 나도, 나도 총을 쐈어요. 내가 쏜 총알이 명중했죠. “정말 맞혔어”라고 생각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파리처럼 쓰러졌거든요.


그걸 못하는 사람은 수모를 당하나요? “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었어요…… 그렇게 하게끔 우리가 강제로 만들었죠. 그들이 사람을 찌르도록 만들었죠.


동갈라의 소설에 나오는 젊은 아프리카 여성은 죽어가는 어머니를 촬영하게 해 달라는 서양인 기자의 요청에 답하면서 주장한다. “엄마의 잘린 몸은 우리의 고통이고, 우리의 아픔이에요. …… 우리는 그걸 사적인 것으로 간직할 권리가 있어요


처음 강간을 했을 때 어떠셨어요—느낌이 어떠셨어요? 거기엔 느낌이라고 할 게 없었어요. 그저 ‘해보고 싶다’라는 거였죠. 그게 다예요.


그들은 똥을 발랐어요. 아닌 게 아니라 그런 사람은 뒤쫓지 않았어요.


살아 있는 상태에서 총알을 제거하라는 지시를 받았어요. 하지만 우리는 능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수술 도중 모두 죽어버렸어요.


“내가 해냈어!”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랬죠. 내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는 잘못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어요.


가해자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개념화하는 것은 도덕적 모욕이며, 가해자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개념화하기를 거부하는 것도 도덕적 모욕이다. 달리 말해 우리는 그들을 악마로 만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악마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수년간에 걸친 731부대 작전에서 부대원들은 다양한 살포 메커니즘을 통해 ‘현장’에서 실험하고, 폭탄을 투하하고, 치명적인 병원균을 작물에 뿌리고, 세균에 감염된 쥐를 인구 밀집 지역에 방출하고, 우물물에 세균을 탔다. 그리고 군인들이 우연히 놓고 간 보급품처럼 보이는 것에 오염된 떡을 숨겨두었고, 석방된 포로들에게 초콜릿을 주어서 그들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집에 돌아가 아이들에게 나눠주게 했다.


2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생물학적 전쟁 프로그램에 연루되었다.


731부대 연구자들은 포로들은 어쨌든 처형될 것이었으므로 낭비하기보다는 유용한 정보를 얻는 편이 나을 거라고 판단했다.


미군은 731부대원들이 실험에서 모은 정보에 대한 대가로 기소를 면제했고 돈을 지불했다. 로버트 매퀘일Robert McQuail 중령이 밝힌 대로 “그 실험 결과는 단연 매우 높은 정보 가치”가 있었다.


우리는 고통을 목격할 때 혐오감을 경험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경험을 원한다. 그런 순간에 우리 내부에 혐오감이 일어나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가 그렇게 반응하도록 스스로를 훈련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본능적인 것도, 자연적인 것도 아니다. 왜 우리가 불가피한 우리 인간 운명의 재현인 고통에 끌리지 않겠는가? 그러나 프로이트는 그 이상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폭력적인 존재이고 우리의 관음증적인 호기심은 사실 공격적인 것이다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Homo homini lupus. 인간의 삶과 역사에 존재하는 모든 증거 앞에서 누가 그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이 공격적인 잔인함은 대개 어떤 도발을 기다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더 온건한 수단으로도 달성될 수 있는 다른 목적에 사용된다. 공격성을 드러내기에 유리한 상황에서, 즉 보통은 공격성을 억제하는 정신적 힘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공격성은 스스로를 자연스럽게 드러내 보인다. 그러면서 인간은 자신의 동족에게 인정을 베풀 생각이 없는 야만적인 동물이라는 것을 폭로한다.


제임스 월러James Waller는 수십 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다양한 연구를 요약하면서 직설적으로 결론을 내린다. 악한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알려진 것은 “평생 주차 요금 위반 정도의 범죄행위만 했을 수백만 명의 사람들도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악한 사람들은, 크리스토퍼 브라우닝Christopher Browning의 말로 하면 “평범한 사람들”이다.


“군인들은 죽을 때 ‘천황 폐하 만세!’라고 외치도록 배웠어요. 하지만 ‘천황 폐하 만세’라고 말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어요. 네. 모두 ‘엄마, 엄마’라고 소리쳤죠. 알아요? 모두가 그랬어요. 그게 끝이었어요.”


우리는 돌진해 나가서 심장이 있는 왼쪽 부위를 겨냥해 찌르려 했지만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 그렇게 무서운 일이 될지는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모두 두려워서 떨고 있었어요. 떨었죠. 일대일로 싸우게 되면 적을 죽이거나 아니면 내가 죽는 거잖아요. 우리는 꿈속에서 하듯이 찔렀어요.


다른 사람을 죽인다는 생각만 해도 떨던 사람들이 죽이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고, 떨지 않고서는 총검을 잡지도 못하던 사람이 냉정하고 재빠르게 칼을 비틀어서 흉곽을 통해 바로 찌를 수 있게 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고대 노르드어의 광포한 전사 ‘berserkr’에서 유래된 표현이며, 본래 ‘곰 가죽을 뒤집어쓴 사람’이라는 뜻이다. 베르세르크는 통제 불가능한 광포한 상태를 말한다.


더 이상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사람을 찔러요. 아마 서른 명이나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다 함께 칼로 찔렀을 거예요. 우리는 보고 있었고요. 부대로 돌아가서 우리 중 절반 정도는 음식을 먹지도 못했어요. 저도 그랬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칼에 찔린 시체 모습이 떠오르면 음식을 먹을 수 없었죠. 그게 사실이에요. 그러고는 익숙해져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가 되면 익숙해지고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걸 하면 실적이 올라갈 거야.”


신병이었을 때는 이런 식으로 사람의 가슴을 찌르죠. 동료 병사 한 사람은 “못하겠습니다!”라고 소리쳤어요. 하지만 1년 후에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사람을 죽였어요.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찌르게 되죠. 두 번, 세 번 하다보면 요령이 생겨 강인해져요.


제2차 걸프전쟁* 때 조지 H. W. 부시의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 작전은 언어로서 실패했다. 그 표현은 지킬 수 없는 것을 약속했으며, 약속과 실재 사이에 간극을 남김으로써, 전쟁의 진정한 충격을 기념했다. 그 웅장한 표현은 사람들이 흘린 피 옆에서 언제나 하찮게 보일 것이다.


우리는 긍정적인 정보보다는 부정적인 정보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부정적 편향), 안전 신호보다는 위협에 집중하고, 좋은 경험보다는 나쁜 경험을 더 강렬하게 기억하고, 낯선 사람에 관해 긍정적인 정보보다는 부정적인 정보를 중요시하고, 다른 사람들의 좋은 행동을 좋아하기보다는 그들의 나쁜 행동을 싫어했던 것을 더 강하게 경험하며, 다른 사람들에 대해 긍정적인 고정관념을 형성할 때보다 더 빠르게, 적은 정보만으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형성한다. 이런 성향은 우리가 불안하거나 자신이 없을 때 더 악화된다.


미라이 학살에서 미군들은 달아나는 어린아이들을 쏠 때도 마치 무장한 군인들을 대면한 전투 상황에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듯 방어 사격 자세로 웅크리고 있었다고 조너선 글로버Jonathan Glover는 지적한다. 한 군인은 나중에 말했다. “정말로 학살이나 살인으로 생각했다면 무방비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총으로 쏘면서 왜 몸을 웅크리고 있었겠어요? …… 판단력이 엉망이 되어버렸던 거죠. …… 그들이 실제로 적이나 적인 것처럼 보였던 거예요.


모두가 그렇게 되고 말았어요. 의견이 없는 사람, 즉 생각이 없는 사람이 된다는 건 몸이 순식간에 명령을 수행하는 거죠.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군대에 가면, 아까도 말했듯이 신병은 대대장의 명령에 따라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신병훈련에서 훈련받은 대로 몸이 이성을 뛰어넘어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거죠……


1970년대에 아르헨티나 군대에 의해 투옥된 하코보 티메르만은 고문자들에게서 그런 지배에 대한 병리적 욕구를 보았다. 그는 “고문자는 고문당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필요가 있다”153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보탠다. “더럽고 어두우며 음울한 장소를 자발적인 혁신과 제도적인 ‘아름다움’의 세계로 전환하는 것은 고문자에게 가장 자극적인 쾌락 중 하나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마치 자신이 실재를 바꾸는 데 필요한 힘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고, 그들을 다시 전능함의 세계에 놓는다. 그들이 느끼는 이 전능함은 결국 그들에게 면책을, 즉 고통, 죄책감, 정서적 불균형으로부터의 면제를 보증한다.”


그가 여자의 머리를, 머리채를 잡고 “가네코, 다리를 잡아”라고 해서 나는 여자의 양쪽 다리를 잡고 있었어요. 우리는 그렇게 여자를 들어올려서 우물 속으로 던져버렸어요. 〔목소리가 약해진다〕


“가네코, 수류탄을 던져.” 〔들리지 않음〕 우리한테는 수류탄이 있었는데 나는 핀을 뽑아 우물에 넣고 폭파시켰어요. 두 사람 모두 죽였어요. 그렇게 된 거죠. 〔기침〕 그 일은 지금까지 내 안에 남아 있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대로 남아 있었죠.


역사가 윌 듀런트Will Durant는 인간이 지난 3500년 중 거의 268년간 전쟁 중이었다고 추정한다.194 조너선 글로버는 1900년에서 1989년까지 8600만 명의 사람들이 전쟁에서 죽었다고 지적한다. “90년 동안 24시간 내내 한 시간당 100명 이상의 사람이 죽은 셈이다.”195 더 곤혹스러운 것은 전쟁이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20세기 초에는 전체 사상자의 약 95퍼센트는 전투원이었다. 일부 사람들의 주장에 따르면, 20세기 말에는 그 비율이 거의 역전되어 사상자 중 90퍼센트가 민간인이었다.


국제적십자위원회에 있는 한 친구는 언젠가 그런 소년들에 대해 말하면서 “아이들은 자신들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몰라서 아무것도 겁내지 않기 때문에 가장 위험하지”라고 했다. 아이들을 사용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적을 도발해서 조준점을 알고자 할 때 약에 취한 소년을 데려다가 살상지대로 보내 총을 휘두르며 적을 조롱하게 하는 것이다. 적이 아이를 쏘면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질문했다. “신이 악을 막고자 하지만 할 수 없는가? 그렇다면 그는 무능하다. 그가 막을 수 있는데 하려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는 악의를 갖고 있는 것이다. 막을 수 있고 막으려 하는가? 그렇다면 악은 대체 왜 존재하는 것인가?”


우리의 고통은 신이 주는 가혹하고 비타협적이며 까다로운 사랑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고통은 신의 교정 도구이다. 고통은 우리에게 그의 불쾌감을 의식하게 하고, 고통의 시련은 우리를 정신적으로 다듬어준다. 고통은 매우 가치 있는 선의 존재를 위해 필요하다(가령 도덕은 품위와 용기, 애정 어린 지지와 슬픔의 연대 경험을 보여준다). ‘선’ 개념 자체의 존재를 위해서라도 필요할 것이다.


인간은 고통을 겪도록 만들어진 것 같다. 오늘날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스트레스는 사람에게 휴식보다 강한 생리적 영향을 주고, 예상된 부정적 사건은 예상된 긍정적 사건보다 기분에 강한 영향을 주고, 나쁜 육아는 좋은 육아보다 강한 영향을 미치며, 생리적 자극의 기본 경험은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일 수 있다고 한다.221 가장 실망스러운 점은, 트라우마의 반대항이 존재하지 않는 점이다. 즉 모든 범위의 인간 경험을 통틀어 트라우마처럼 인간 행동에 오래 지속되며, 포괄적이고 극심한 영향을 끼치는 긍정적인 사건 개념은 없다.


“왜 그 사람들은 자살하지 않았을까요?” 보 우체는 물었다. “그들이 자신들이 한 행동에 대해 후회한다면 왜 그런 일을 한 후에 바로 자살하지 않았을까요? 내 가족, 그 모든 가족들을 죽인 뒤에도 어떻게 살 수 있는 걸까요?”'


“자랑스러운 어르신들, 멀리서 인사드립니다” 그가 말했다. “저는 고아이지만 이미 여러분을 용서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두 남자는 그에게 감사를 표하며 웃음을 지었다. “어르신들은 사람의 간과 쓸개를 먹곤 했지요.” 보가 말했다. “그건 스스로 한 건가요, 명령을 받고 한 건가요?” 그들은 거북해하면서 서로 곁눈질을 했다. 오랫동안 망설임이 있었다. 순은 자신의 입 앞에서 두 손을 움켜잡고 있었다. 결국 쿤이 마이크를 들었다. “나는 그저 보고서…… 그저 약간 보고 시험해보고 시도해보려고만 했어요. 쓸개는 약으로도 쓰이니까 시도해보려 했을 뿐이에요. 아주 조금만요. 그게 내 솔직한 답입니다. 아주 조금이었어요.”


고참이 “녀석에게 물을 먹여”라고 말했어요. 그는 그 남자의 머리에 헝겊을 올렸고 나는 그의 코에 주전자 주둥이를 대고 물을 콸콸콸 쏟아부었어요. 물을 억지로 먹이면서 나는 물었어요. “여기에 무기가 있나? 팔로군은 어디 있지?” 우리가 이런 질문을 하는 동안 그는 몸부림치고 울었는데 고통스러워 보였어요.


물을 마셔서 복부가 부풀어 오르니까 고참이 “됐어”라고 했어요. 그런 다음 발을 들어 그 남자의 배 위에 놓고 팡 하고 발로 밟았죠. 그 사람의 입에서 물이 뿜어져 나왔고, 피도 내뿜었어요.


더글러스 존슨Douglas Johnson은 최근까지 미네소타주 트윈시티에 위치한 고문피해자센터 사무국장이었다. 미국이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에서 자행한 고문에 대한 국제적인 논란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그가 한 공개 강연을 나는 들었다. 그는 고문의 정보 가치와 그 유명한 ‘시한폭탄’ 시나리오에 대해 논했다. ‘시한폭탄’은 도덕적 절대주의 관점에서 고문을 예외 없이 비난하는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목적에서 고안된 사고실험이다. 폭탄이 뉴욕시 어딘가에서 폭발하기 직전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폭탄의 위치와 폭탄을 해체하는 법을 아는 사람을 고문하겠는가? 폭탄이 100명을 죽인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테러리스트 한 명의 생명이 100명의 죄 없는 생명보다 더 가치 있는가? 당신의 도덕적 순결은 100명의 생명보다 더 가치 있는가? 1000명을 죽인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테러리스트의 생명이 1000명의 생명보다 더 가치 있는가? 당신의 도덕적 순결이 1000명의 생명보다 더 가치 있는가? 기타 등등. 어느 정도의 수에 이르면 그 어떤 분별 있는 도덕적 절대주의자라도 무너져버리고 가상으로라도 고문을 승인하게 된다.


내가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일로 남았어요.


우리 지식인들은 말이죠. 일본군에 있던 지식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이 모든 전쟁범죄를 인정할 수 없었어요. 따라서 영리하거나 지적인 군인들은 전쟁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 상관의 명령을 따른 거라고 생각하죠.


자신들이 저지른 가해행위를 증언하고 속죄하는 데 헌신한 사람들이 있다. 중일전쟁에서 민간인 학살, 생체 실험, 강간 등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던 당사자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패전 후 시베리아 수용소를 거쳐 중국 푸순 전범관리소에 수용되면서 참회의 시간을 보낸다. 귀국 후 1957년 중국귀환자연락회(중귀련)를 결성, 일제가 저지른 전쟁범죄의 실상을 알리는 활동을 펼쳤다. 중귀련은 회원들의 고령화와 사망으로 2002년 해산하게 된다. 이 책은 중귀련 활동가들의 증언을 통해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잔악무도한 가해자가 되었는지, 그리고 다시 어떻게 전쟁범죄의 고발자와 증언자가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농부였고, 노동자였고, 혹은 의사나 교사였다. 타인을 해친다는 생각조차 낯설기만 했던 그들은 신병훈련소에서 체벌과 구타를 받아가며 사람을 총검으로 찌르는 연습을 하고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도록 길들여진다. 전쟁터로 보내진 그들은 명령에 따라, 혹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닥치는 대로 살상을 일삼는 살인기계가 된다. 자신들의 상대는 열등하고 해로운 존재라는 이데올로기가 체계적으로 주입되었고 윤리적 고뇌와 죄의식이 싹틀 만한 여지는 없었다. 살인광이나 다름없었던 이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끔찍스럽게 되돌아보고 참회하게 된 계기는 전범관리소에서 이루어진 진술과 자백, 교육이었다.


-이상 악한 사람들 본문 발췌



진실은 두렵다. 숨겨진다. 하지만 살아 움직이며 귀를 막은 눈앞에서 자신이 본 것들을 보여준다. 인권, 반문화, 폭력과 트라우마를 연구하는 제임스 도즈 교수의 저서 '악한 사람들'은 중일전쟁 일본군 전범들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쓰였다. 오직 자극 자극 자극에 집중된 쇼츠와 릴스가 뇌의 기능성을 급격히 낮추는 시대에 이런 책들은 날 선 텍스트 한줄한줄로 야만의 맨얼굴을 가죽부터 벗긴다.


731부대의 생체실험, 전쟁 상황에서 강요되는 잔혹성, 고문과 신체 훼손, 가해자들의 후유증 등 열거한 것들 중 일반인들에게 낯선 개념은 없다. 하지만 인간을 죽인 인간의 목소리로 당시의 세부가 되살아날 때 지금까지 평균과 상식의 허용 범위 안에서 납득하던 인간에 대한 기대는 더 이상 같은 살과 뼈로 구성된 인간이라는 점조차 스스로를 혐오하게 만든다. 인간은 애초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애써 망각했다는 점을 되살린다. 인간의 정의를 포기하게 한다.


추상과 은유는 얼마나 기만적인가. 고통받다 외형도 제대로 보존되지 못한 채 죽은 자에게 남은 자들의 이런 기록은 어떤 효용을 지니나. 아직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명령과 강압에 의해 서로를 적으로 규정한 이들의 인간이기를 기꺼이 거부하는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데 이런 진실을 비전쟁 인류 구성원들에게 알리는 게 과연 중장기적인 긍정 효과로 돌아오는가. 핏물과 살점이 날아다니는 공포영화처럼 자극만 추구하는 것은 아닌가. 인간은 인간의 기록을 통해 이런 극단적 폭력 행위의 반복 시도를 주저할 수 있나. 지금껏 역사가 그렇게 돌아갔나.


'악한 인간들'을 읽으며 부들부들 떨렸던 이유는 거의 80년도 넘게 지난, 마땅한 수사조차 붙이기 힘든 이런 역사 속 잔혹 행위들이 지금도 더 '진화'된 버전으로 벌어지고 있을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직감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의 취재 이후 나치 장교이자 유대인 학살 주범 아이히만에게 붙은 '악의 평범성'을 아무리 퍼 나르고 이야기하면 뭐 하나. 트럼프와 푸틴을 비롯한 숱한 독재자들의 광기, 명령, 실행이 수많은 인간들의 육체와 정신을 해체하고 있는데. 정말 인간의 유전자에 깊이 새겨진 공격성의 당연하기 그지없는 발현 수준으로 납득해야 한다면 어떻게 방지하고 누가 피할 수 있나. 당장 지난(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때도 내란 세력들에 의해 온갖 고문 도구가 동원된 것이 밝혀졌는데. 언제 어디서든 미친 세력들은 대량 학살과 잔혹 범죄를 준비 중이며 늘 긴장하고 위기감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경계해야 하나.


그렇다. 악한 인간들은 줄지 않을 것이다. 피해와 희생자들은 늘어날 것이다. 안온한 희망 같은 건 기대한 적도 없고 꿈도 꾸지 않는다. (전쟁범죄 같은 지극히 폐쇄된 상황이 아닌) 가까운 악행의 재발 방지를 위한 대안이라면 대다수가 공감하는 부분, 밝혀진 가해자들, 악한 인간들에 대한 명징하고도 모방 시도 및 재범 불가 수준의 처벌이다. 인간에 대한 느슨한 희망을 바탕으로 한 갱생 목적의 용서나 두 번째 기회 제공, 형량 조정이 아닌 강력한 형벌을 통한 1차적인 원인 제거가 이뤄져야겠지만... 한국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없다. 한국에서의 평범한 일상 전체가 악과 악인, 악행으로 뒤덮여 있는 듯하다. 신에 대한 신뢰는 희미하지만 오죽하면 천지를 물로 뒤덮고 타락한 도시를 불로 심판했나 이해에 이른 수준이다. 앞으로도 악은 번창할 것이다. 악한 사람들은 계속 태어나고 자라서 들불과 엉겅퀴처럼 주변을 뒤덮어 원본의 형체를 일그러뜨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