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에서 뛰어내리거나
길고 답답한 이야길 들었다.
듣는 내내 집중이 되지 않았다.
진심 없는 네, 맞음, 그거네, 좋은데?
무영 혼 대답 세트만 줄줄 내뱉음.
동공 풀린 내게 상대는 계속 뭔가 열심히
이야기했지만 달팽이관 안으로 진입 못하는
소리들. 멘틀 방화벽이 견뎌줘 다행이었다.
핵심을 수용하지 못하니
다른 것들이 맴돌았다.
이탈의 욕망, 정체불명의 연민,
싯다르타 수준의 관용, 무간지옥의 깊이,
확실한 건 없었고 온통 희미한 것들로
시간과 공간이 자욱해져 가는 것 같았다.
전 같은 적의는 사라졌지만,
공허는 늘 꼬리 같은 것.
최선을 다하는 이들끼리
서로 다른 방향이 격돌할 경우
물러섬이 없다면 그만한 지옥도 없다.
모두가 자기만 옳다고 격분하는 관계가
도달할 곳은 뻔하고 뻔하다.
오랜 동력을 잃어버리는,
체념과 상실, 악취와 오물로 뒤덮인
한없는 퇴보. 이런 인내는 느린 자살이다.
극과 극을 오가는 짧은 시간이었다.
감정의 길이보다 무의미의 크기가 더
한없었다. 그러면서 수습했다.
해야 할 것들에 대한 불안한 베팅은
지겹지만 필요했다. 그게 다니까.
아무것도 얻을 게 없는 기대인데 그냥
머문다. 그러면 누군가 떠나고
혼란은 잠시 정지한다.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극단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며 피부를 옥죄던,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아 이렇게 쓴다.
그래도 그 정도면 괜찮았다고.
뭐가 괜찮은지 모르겠단다.
건물에서 뛰어내리거나 차창 밖으로
몸을 던지지 않은 것. 이렇게,
쓸쓸한 평가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