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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Oct 05. 2016

22. 도로시는 하루 종일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도로시는 렌즈 속으로 시선을 꽂고 있었다.

도로시는 우리의

아내는 나의

나는 도로시의 

삼위일체

엔트로피   

유입 피로는 달라지지 않았다

체감 피로가 보다 감소했을 뿐

도로시 안아주고 싶다

어서 도착하길

어서   

도로시와 만난 후

귀여운 생명체를 보면

아랫입술 밑이

복숭아씨로 변한다  

도로시 보고 싶다  

오늘 오후 20분.

도로시가

첫 계절을 보낸

시간이었다.

유모차 투명 덮개 위로

여러 모양의 낙엽을

떨어뜨려 주었다.

낙엽 모양으로 오려진

하늘이 도로시 눈 위로

쏟아졌다.

도로시는 눈을 크게 뜨고

내 속도에 맞춰 달렸다.

집으로 돌아와

한참을 울었다.  

도로시와 하루 종일 같이 있었다.

11월 들어 첫 휴일이었다.

살아 움직이는 작은 것들을

모조리 싫어했는데

지금은 예외가 생겼다  

내내 도로시와

붙어 있었다

도로시는 여전히 자신을

심장소리가 가까이 들리는

품에 안고 느리게 걸으며

재워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원할 때 그렇게

해주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지금은 어깨 밑에 얼굴을

파묻고 잠들어 있다

숨 쉴 적마다 등이 들썩인다  

도로시가

눈 감고 있다

눈 감고

한쪽 뺨을 기대고 있다

한쪽 뺨을 기대고

고요히 엎드려 있다

고요히 엎드려

왼손을 얹고 있다

왼손을 얹고

무릎은 구부렸다

무릎은 구부리고

오른손은 겨드랑이 사이에 넣었다

오른손은 겨드랑이 사이에 넣고

눈 감고 있다  

도로시를 재우다 몽롱해 140자 허구를 상상했다.

셀피를 너무 좋아한 사람의 이야기.

상어에게 물려 죽기 전까지 상어가 다가오는 모습을

셀피로 찍어 SNS로 공유한 이야기.

죽음 뒤에 숨겨져 있던 셀피 중독에 대한

어떤 진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서프라이즈 같네.  

도로시는 하루 종일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울음의 해석  

Make you feel my love를

아델의 라이브로 들으며 도로시와 눈을 맞췄다.

품에 안긴 도로시는 장단음을

어절과 음절로 구분해서 표현하는 듯

웅얼거렸다. 슬픔과 기쁨이 표정과 소리 안에

들어 있었다. 시간이 되었고 나는

문을 나와 회사로 향했다.  

유리잔을 깼다

막 잠에서 깬

도로시를 안으려

뛰쳐나가다가  

100D로 찍은 도로시의 사진들을 정리 중이다.

미처 보지 못했던 아내가 찍은 사진들도 담겨 있다.

뺨이 오돌토돌한 사진들이 보인다.

지금은 깨끗하다.

오후에 꽤 많이 찍었다.

도로시는 렌즈 속으로 시선을 꽂고 있었다.

이후 꽤 울었지만.

다른 모습이 더 많다.  

천하가 다 이야기한

김경주의 그 유명한 시집을

이제야 펼쳐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다 

이상하게 언젠가 반드시

읽게 될 책이라 여겼으면서도

이렇게나 오래 걸릴 줄이야 

아까는 도로시에게

머리말을 몇 줄 읽어주었다 

도로시는 이제 자고

나는 다시 읽는다  

도로시가 뺨을 비빈다

도로시가 숨을 몰아쉰다

도로시가 눈을 감는다

도로시가 등을 들썩인다

도로시는 웅얼거리고

도로시는 흐느끼고

도로시는 움찔거린다

도로시는 고요해서

도로시는 가엾다

별이 잠들고

풀의 온기가 식은 지금

도로시는 품에서

미지와 겨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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