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주는 여자, 외롭지 않게 죽여 드릴게요

이재용 감독. 죽여주는 여자

by 백승권






소영(윤여정)은 노인들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한다. 소영은 트랜스젠더(안아주)와 한집에 산다. 소영은 다리 한쪽이 없는 남자(윤계상)와 한집에 산다. 소영은 코피노(한국 남성과 필리핀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2세를 필리핀에서 이르는 말)를 데려다 잠시 먹이고 키우고 있다. 소영은 자신이 할머니라고 불리는 게 싫다. 소영의 나이와 외모를 기준으로 봤을 때 할머니라고 불리는 게 딱히 어긋난 건 아니다. 소영은 사람을 죽인다. 노인 남성이었다. 두 명은 직접 죽인다. 당사자와 지인의 요청에 의해서였다. 소영은 그들의 처지와 요청을 무시할 수 없었다. 아마 소영은 자신의 살인을 부탁을 들어주는 일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렇게 소영은 감나무 병충해를 없앤다며 산 농약을 노인 남성의 입에 붓는다. 손과 팔이 떨리고 고개는 돌린다. 병석에 누워 노인 남성(박규채)은 그렇게 끝을 맞이한다. 소영은 킬러가 아니다. 부탁을 들어주었을 뿐이다. 하지만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영의 두 번째 살인은 산에서 치러진다. 요청자와 소영은 일을 치르기 전 잠시 바위산에 앉아 호흡을 고른다. 정적이 흐른다. 그리고 멀리 실루엣이 잡힌다. 산의 끝자락과 소영과 요청자. 소영의 손끝이 요청자의 등을 살짝 밀고 요청자(조상건)의 실루엣은 절벽 끝으로 한없이 곤두박질친다. 그렇게 끝난다. 이 일을 요청한 지인은 소영에게 고마워한다. 곧 세 번째 요청이 들어온다. 평소 오빠라고 부르는 지인(전무송)이었다. 한때 '고객'이기도 했다. 이젠 더 늙어 그 짓도 못한다고 했다. 지인은 소영과 밥을 먹고 자신과 호텔에 가자고 한다. 호텔에서 캔맥주를 까고 약병을 꺼낸다. 수십 알. 외롭게 죽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번 죽음의 실행자는 지인 자신이었다. 소영은 얼떨떨했다. 자신과의 잠자리를 위한 자리인 줄 알았다. 지인은 맥주 몇 모금과 함께 약을 단숨에 털어 넣는다. 아침에 눈을 뜨자 소영 곁에는 슈트를 단정히 차려입은 지인이 온화한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소영은 친구들과 함께 소풍을 떠난다. 같이 사는 트랜스젠더, 장애인, 코피노가 소영의 친구들이었다. 회전목마도 타고 사진도 찍고 장어도 먹고 맥주도 몇 잔 한다. 뉴스에서는 노인 살인범을 찾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린다. 같이 듣던 친구들이 혀를 찬다. 그들이 먹고 있는 음식값이 소영의 주머니에서 나왔고 그 돈은 죽여주는, 자살하는 순간에 함께 있어주는 대가였다. 소영은 숨을 줄도 모르고 숨을 생각도 없었다. 용의자를 찾는 형사들의 손에 순순히 이끌려 간다. 감방의 겨울이 추울까 봐 걱정하며 담배를 문다. 소영은 감방에서 죽는다. 딱한 처지의 주변인들 곁에서 죽음을 돕던 소영의 시신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영은 누굴 죽여줬지만 소영을 죽여주는 사람은 없었다.


현재의 나보다 불편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뉴스를 보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극에 목마른 관심을 매번 제어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처지를 알아서 불편하고 조금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서 알아차리는 것이 반갑지 않다. 하지만 비슷한 처지를 겪으면 공감대는 폭발했다. 감기몸살에 걸렸을 때, 두통에 시달릴 때, 교통사고로 머리가 깨지고 다리가 부러졌을 때, 이석증에 시달렸을 때, 육아가 힘들 때, 불면에 시달릴 때, 업무에 치이고, 인간관계에 시달릴 때, 불편한 처지가 내 일이 되었을 때 나의 불편과 고통은 우주의 중심에 위치했고 이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 전부를 증오하기도 했다. 소영은 노인이었다. 그것도 어릴 적부터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아온 노인.


삼팔따라지(삼팔선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젊을 적, 미군을 상대로 일하다가 한 명과 눈이 맞아 살림을 차렸다. 그는 소영을 때렸고 떠났지만 둘 사이엔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을 아기를, 젖도 떼기 전에 입양 보냈다. 소영에겐 평생의 죄였다. 이후에도 성매매를 통해 먹고살았다. 단골이 있었고 묻고 접근하는 노인들도 많았다. 그런 소영을 질시하는 라이벌도 있었다. 소영의 삶이 어느 누구보다 불행했다고 단정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소영은 다른 이들의 아픔이 얼마나 어느 정도 아픈지 알고 있는 듯했다. 말로 전해지지 않는 고통을 끝내려면 때론 누군가의 과감한 결단도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한 듯했다. 허무주의에 빠진 것은 아니지만 나이 든 소영에게 죽음은 늘 가까웠다. 아는 이들의 그림자가 사라지며 더 그렇게 느껴졌다. 그렇게 소영은 남다르게 죽여주는 여자가 된다. 세상이 정한 선을 넘는다. 타인의 외로움을 구경만 하지 않는다.


진정 누군갈 죽이고 싶거나 스스로 죽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 하지만 상황을 끝내고 싶은 사람은 많을 것이다. 소영은 그들의 인생 마지막 페이지에 공동저자였다. 세상의 관심 밖이었고 평생 그런 대우를 받고 살아온 소영에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생물학적 수명이 다하는 것보다 주변의 죽음 속에서 자신의 죽음이 옥죄어 오는 것에 더 힘들어했을 수도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씩 떠나보내며 소영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막막함이 잠시 해소되는 기분을 느꼈을까. 아니면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처럼 느꼈을까. 아무도 모른다. 소영은 차가운 감옥 속에서 홀로 죽었다.




죽음과 노년에 대한 더 많은 상념과 회한들

연애의 허상 - 영화와 사랑에 대한 비밀과 거짓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랜드 오브 마인, 나치의 소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