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 오브 마인, 나치의 소년들

마틴 잔블리엣 감독. 랜드 오브 마인

by 백승권







독일 소년병들이 줄을 선다. 눈앞의 아름다운 해변엔 200만 개가 넘는 지뢰가 매설되어 있었다. 덴마크의 포로들, 다 없애면 집에 보내준다고 했다. 인솔하는 덴마크군 상사(롤랜드 묄러)는 적군에 대한 분노가 식지 않아 보였다. 기념품인 듯 나치 깃발을 품은 독일 소년병의 얼굴을 비명과 함께 피범벅으로 만들기도 했다. 자료화면이 없어도 독일에게 당한 억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비슷한 체구와 앳된 얼굴의 소년들, 적의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자의로 참전한 것이 아님을. 팔다리만 멀쩡하면 무기를 들고 적을 말살하라는 지령을 실행해야 하는 전시 중이었다. 하지만 포로 일지 언정 그들은 여전히 적군이었고 볼 때마다 분노가 치밀었다. 죽어 없어질 때까지 고통받게 하고 싶었다. 어차피 그들의 마지막은 지뢰를 제거하다 폭사하는 것이었다.


지뢰의 종류를 학습해야 했다. 뇌관 제거법을 실습해야 했다. 학교를 방불케 했다. 실수하면 폭음과 함께 온몸이 부서진다는 게 달랐을 뿐. 해변은 천국같이 아름다웠다. 파도는 신의 입김을 따라 출렁이는 듯했다. 모래는 눈부셨고 뒤덮인 고요에 숨이 막힐 듯했다. 그곳에 엎드려 소년병들은 지뢰를 제거한다. 낮게 엎드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며 땅 속의 지뢰를 일일이 파악하는 일이었다. 폭사하기 전에 아사시키려는 듯 수일 째 음식 한 점 주어지지 않았다. 독일 소년병 중 한 명이 덴마크군 상사에게 요청한다. 그는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한다.


사고가 이어졌다. 먹지 못한 몸으로 구토가 쏟아졌고 순간 폭음과 함께 소년의 양팔은 사라졌다. 피와 뼈와 살과 울부짖음이 엉켜 진동했다. 시설로 옮겨졌지만 가망은 희박했다. 사고는 이어졌다. 어떤 대책도 마련되지 않았다. 지뢰는 소년병들과 같은 독일군이 매설한 무기였다. 아버지 세대의 전술에 의해 자식 세대가 참살당하고 있었다. 천국 같던 풍경 안에 지옥이 묻혀 있었다. 열 명도 안 되는 소년들이 평생을 바친 들 다 제거할 수나 있을까. 덴마크군 상사는 착잡해진다. 적군이기 전에 아이들이 보인다. 자기 외에 다른 덴마크군의 보복성 괴롭힘이 이어지는 모습은 지켜보기 힘들었다. 소년들의 수는 줄어들고 있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살점들이 해변의 바람에 섞여 먼지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거리가 좁혀진다. 상사는 소년들에게 몰래 먹을 것을 훔쳐다 주고 축구를 즐긴다. 한낮의 크리스마스 같은 풍경이었다. 하지만 낭만도 잠시, 자신의 개가 지뢰로부터 안전하다 여겼던 지역에서 폭발로 죽자, 잠시 누그러졌던 분노가 다시 치민다. 화살은 원래의 방향으로 향한다. 하지만 자신도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소년들의 잘못은 없었다는 것을. 작업이 마무리되던 즈음, 애초에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상부에 요청하지만 거절당한다. 애든 어른이든 적군 따위 어떻게 죽든 알바 아니었다. 상사는 군인의 충성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신념을 선택한다. 풀어준 아이들이 국경으로 달려간다. 보이지 않는 아이들은 모두 지뢰폭발로 죽은 후였다.


독기와 근육으로 뭉친 성인들만 치르는 전쟁은 없다. 비극은 가장 나약한 자들에게 가장 극악한 고통을 가져다준다. 부메랑, 자신들이 매설한 지뢰가 자식들을 죽일 줄 알고 있었을까. 최악과 차악의 대결 속에서 선택과 판단의 지위가 약한 이들부터 죽어가고 있었다. 마틴 잔블리엣 감독의 '랜드 오브 마인'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진실을 극화시킨다. 어떤 나라도 자신들의 전쟁이 상대편의 소년병 포로들을 희생양으로 활용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독일은 가스실, 덴마크는 지뢰밭... 등가 될 수 없겠지만 정말 서로를 증오하고 없애기 위해 참 많이도 노력했다.


이름 없이 죽어간 소년들의 운명을 떠올려본다. 원하지 않는 무기와 옷을 입고 원하지 않는 전쟁에 참여했다가 원하지 않는 이들에게 포로로 붙잡혀 원하지 않는 지역에서 지뢰를 해체하다가 그렇게, 원하지 않는 죽음으로 사라져 버린 소년들에 대한, 영화에서 보여준 순하고 억울하며 희망에 가득 찼던 맑고 푸른 눈빛들. 전쟁은 시작부터 집단자살극이라는 비판은 덮어둔다. 그때 흩날리던 바람과 빛 속에 이들의 얼마나 많은 핏물과 살점, 뼛가루가 섞여 있었을까. 왜 이들이 저런 사지로 몰려 집에 돌아갈 꿈만 꾸다 비명도 없이 사라져야 했을까. 망각된 죽음과 끝날 리 없는 증오가 평화의 날을 절실히 소환한들 그게 온전할까. 영화는 보여준다. 피와 뼈를 머금지 않은 바람과 파도는 없다고. 시간이 지난 들 없었던 일이 될 리 없고 희생자들이 미처 이루지 못한 꿈과 살육자들의 무기가 여전히 현재를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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