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9월 11일의 반대 시나리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by 백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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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 새떼가 부딪친다. 양 날개에 달린 엔진이 모두 폭발한다. 155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비행기는 허드슨강에 불시착한다. 비행기 안으로 12월의 강물이 차올랐다. 승객들은 비행기 날개 위에서 구조대를 기다렸다. 지나던 여객선과 구조 헬기가 날아왔다. 다치고 죽은 사람 아무도 없었다. 2009년의 실화. 기장의 이름은 설리였다. 그때까지 강에 비행기가 떨어져 생존자가 있었던 적은 없었다. 2001년의 뉴욕과는 달랐다. 그땐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수천 명이 유명을 달리했으니까.


가정법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하게 된다. 2001년 9월 11일, 쌍둥이 빌딩을 향하던 비행기의 조종사도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였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그날 이후 비슷한 사고 사고의 위기를 넘긴 수많은 미담이 쏟아져 나왔지만 911 테러에 대한 기억을 상쇄시킬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 러시아 전투기가 뉴욕 상공에서 융단폭격을 하지 않는 이상. 설리 기장은 영웅이 되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당시 사고에 대한 주변의 반응과 경위를 밝히는 과정, 그리고 이 중심에 서서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설리 기장(톰 행크스)의 개인적 고뇌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기적이라고 했다. 동일한 조건 하에 수십 번의 시뮬레이션을 했지만 비행기는 회항에 실패했다. 이륙했던 활주로나 인근 공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고도는 점점 낮아지고 있었고 어딜 향하든 도심을 파괴하며 엄청난 인명사고를 내지 않는 이상 비상착륙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눈앞에는 강이 있었다. 어떤 훈련도 실제 상황을 완전히 대비시킬 수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설리는 점점 추락하는 비행기의 방향을 강의 수면으로 정한다.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었다. 인간의 직관. 설리는 그 어떤 것도 믿고 의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경험이 누적된 무의식적 선택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그리고 모두가 살았다. 사람 목숨이 불나방보다 쉽게 꺼져가는 세상 속에서 동화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수습의 과정은 필수였다. 책임의 대상이 필요했다. 사람은 안 다쳤지만 비행기는 추락했고 회사는 손실을 입었으며 도시는 놀랐고 해명이 필요했으니까. 추앙받던 영웅은 내부적으로 의심의 대상으로 돌변한다. 정말, 강 외에는 단 하나의 옵션도 없었는가. 조금 과장하면, 익사할 뻔한 사람을 살렸더니 왜 옷이 이토록 젖을 때까지 꺼내 주지 않았냐는 항변이기도 했다. 설리는 컴퓨터가 아니었다. 기억은 선명했지만 일부는 데이터를 더 신뢰했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거라는 압박이 가해진다. 설리의 선택은 모두를 살렸지만 그것만으로는 비행기 추락을 모두 덮을 수 없다는 주장에 둘러싸이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을 한 개인의 증언에 의해 납득되기 힘든 순간. 대다수 설리의 편이었지만 해명을 요구하는 쪽은 설리의 인생을 끝장낼 수도 있었다. 그의 미래는 물론, 지난 커리어까지 모조리 불명예로 끝낼 수도 있었다. 한 인간이 영웅으로 남거나 잘못된 선택을 고른 실패한 결정자로 추락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면돌파. 설리는 데이터와 대립하지 않는다. 사건의 중심에 프로그래밍된 기계가 아닌 경험과 본성, 사고력을 갖춘 인간이 있었음을, 낮고 느리며 정중한 목소리로 제시한다. 그리고 조종석에서 판단과 비행을 주도한 자신과 부기장(아론 에크하트)뿐만이 아닌 비상 매뉴얼에 따라 침착하고 승객들을 안내한 승무원들과 그 안내에 따라 동요를 자제한 모두들이 있었기에 인명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무슨 위인전 같은 일화인가. 같은 공간에 있던 수백 명의 사람들과 생중계를 지켜보던 미국인들, 무엇보다 자신들의 이익과 의무를 지키기 위해 설리의 책임을 집요하게 캐내던 이들이 완전한 침묵에 휩싸인다. 정의는 존재 자체로 압도한다. 이것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진리의 영역에 있다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수준이자 도달하기 어려운 지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설리는 자신을 비롯한 모두의 대응이 당시 상황에 있어 대체 불가능이었다는 점을 단숨에 설득시킨다. 911을 겪은 미국에 설리는 신이 보낸 구원자의 지위로 등극한다.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설리를 다시 울먹이는 아내(로라 리니)를 달래기 위해 가장의 위치로 되돌려 놓는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뉴스가 된 911의 기록을 꺼내지 않더라도 이 글을 한글로 읽고 이해하는 이들이라면 떠오를 수밖에 없는 한 척의 배가 있을 것이다. 그 배에 누가 타고 있었는지 모두가 알고 있고, 그 배가 어떻게 가라앉았는지 모두가 목격했으며, 그 배가 가라앉는 동안 어떻게 방치되었는지, 여전히 파헤치고 밝혀내야 할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많은 진실이 가라앉아 있는지, 찢기고 뜯긴 가슴이 영영 봉합될 리 없는 그런 한 척의 배가 있을 것이다. 그 배에 설리 같은 책임자는 없었고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다. 911의 상흔은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기체는 수리되고 건물은 보수될지 언정 떠난 이들은 돌아오지 못한다. 세월호도 그렇다. 어떤 동화도 없었던 일로 되돌리진 못한다. 우리에게 설리 같은 인물은 너무 절실하지만, 어떤 위로도 너무 늦었다.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 일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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