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앨리스 감독. 앤트로포이드
나치는 히틀러 혼자 만든 게 아니다. 최초의 구상자일 순 있겠지만 그와 함께 인류를 괴멸시키려 했던 시도에는 수많은 협력자들과 추종자, 방관자들이 있었다. 괴벨스 같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최측근들. 그중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Reinhard Tristan Eugen Heydrich)가 있었다. 프라하의 학살자, ‘잔인한 철권통치로 저항조직을 분쇄’하는 것이 그의 악명이었다. 나치 정권의 실세,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고 판단된 수많은 체코인들이 근거 없이 학살당했다. 히틀러의 총애를 얻은 속도만큼 체코는 빠르게 죽어가고 있었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암살작전이 추진된다.
앤트로포이드.
몇 명의 체코 군인이 프라하로 잠입한다. 라인하르트의 이동경로를 파악했고 경비가 소홀한 틈을 타 암살하자는 계획이었다. 나치 휘하 지역에서 히틀러 최측근 암살 계획은 계획단계부터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변수는 물론 실패 위험이 컸을 것이다. 영화는 요세프(킬리언 머피)와 얀(제이미 도넌)의 활약을 주로 다룬다. 이미 잠입한 군인들과 합류하지만 격렬한 반대에 부딪친다. 실패했을 경우 몰아칠 후폭풍에 모두들 두려워했다. 자신들은 물론 가족과 지인, 고향과 거주 지역 전부가 흔적도 없이 고통 속에서 사라질 것이란 공포가 오가는 눈빛과 침묵 속에 짙게 담겨 있었다. 공포는 학습될 수 없었다. 누적될수록 더욱 커져갔고 나치는 그걸 알고 있었다. 요세프는 단호하게 추진한다. 당장이라도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는 듯 보였다. 한편 얀은 불안을 숨기지 못한다. 손이 떨리고 있었고 요세프와 갈등한다. 하지만 디데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자살용 청산가리를 품고 암살단은 라인하르트의 이동경로를 향해 떠난다.
정면에서 기관총을 난사하기로 했던 요세프의 몸이 덜컥거린다. 총이 발사되지 않는다. 암살 대상은 사태를 알아차린다. 총을 뽑고 난사한다. 대기하던 체코 요원들의 총구가 일제히 한쪽을 향한다. 얀은 준비한 폭탄을 던진다. 암살 대상의 차량이 폭발한다. 주변이 파편과 폭음, 먼지와 총성으로 자욱해진다. 암살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그날 이후 나치의 보복이 시작된다. 은신한 체코군의 숨통이 조여 온다. 그들을 숨겨줬다는, 실제 일어나지 않은 혐의를 받은 한 마을에 살던 모든 사람들이 처형당하거나 아우슈비츠로 끌려간다. 프라하 내부의 모든 사람들이 검문당하고 있었다. 요세프와 얀은 발각되지 않는다. 밀고된다. 작전을 함께 계획했던 동료에 의해. 혼란과 두려움, 자신들을 도왔던 지인들의 죽음으로 모든 정신적 기반을 잃어가고 있을 즈음, 정보가 업데이트된다. 암살 작전 당시 부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던 라인하르트가 끝내 사망했다고. 근대 전쟁 역사상 암살당한 가장 고위급 인사였다.
은신처를 제공해 줬던 이들이 끌려가 참혹한 고문을 당하거나 자결한다. 요세프와 얀은 인근 성당으로 거처를 옮겨 탈출 계획을 짠다. 하지만 이 또한 고문을 이기지 못한 자백에 의해 발각되고 대규모의 나치 군병력이 성당을 둘러싼다. 화력이 총동원된다. 저항군들과 차원이 다른 중화기들이 벽을 부수며 공간을 무너뜨릴 때, 죽여도 죽여도 계속 밀려 들어오는 나치 병사들이 계단을 오르고 있을 때, 함께 암살을 진행했던 동료들이 눈앞에서 자결을 선택하고 있을 때, 어두운 공간에서 모조리 익사시킬 물살이 차오르고, 더 이상 생존을 위한 어떤 희망도 남아있지 않을 때, 잡힐 경우 상상할 수 없는 고문과 폭력 속에서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정보를 토해내야 할 끔찍한 상황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을 때, 요세프와 얀은 남겨 놓은 한 발의 총알을 자신을 위해 쓴다.
1명의 죽음, 10명의 죽음, 5천 명의 죽음. 라인하르트 1명의 생을 끝내기 위해 10명(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목숨이 필요했고, 이후 나치는 체코인 5천 명을 죽이며 보복을 자행했다. 그만큼 나치가 동력의 일부를 상실했다는 반증이었으며 자신들의 폭압을 확실히 하기 위해 어떤 대가라도 치르겠다는 잔혹한 의지의 표출이기도 했다. 하나의 상징을 없애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 이를 위해 오랫동안 훈련받고 밤공기를 뚫고 숲에 낙하해 무기를 준비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적의 목숨 하나라도 더 빼앗은 사람들. 인간에게 내재된 태생적 한계가 그렇듯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의해 어떠한 목적이라도 흔들리기 마련인데, 이들은 하나의 가치를 완수하기 위해 온몸이 떨리는 불안감 속에서도 자신보다 다수의 안녕을 선택했다.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수없이 되뇌며 자신에게 주입했다. 대의명분은 계획과 추진으로까지 이끌 순 있겠지만, 국면을 전환시킬 만한 행동으로까지 밀어붙인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얼마나 설득하고 납득시켰나 아니었을까. 제대로 단언하지 못한다. 같은 시대, 같은 지역, 같은 상황에서 갈등하지 않았으므로, 어설프게 짐작할 뿐이다.
계획된 죽음이 쌓이고 쌓여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멸망을 도모했던 제국을 무너뜨렸다. 자신의 머리에 총알을 박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이런 크고 작은 결단들 속에서 경로를 수정해 왔고 후손들이 정의라고 일컫는 평화와 안정으로 귀결시켰다. 동시대의 지옥을 산채로 겪었던 이들에게 현시대의 구성원들은 결코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셈이다. 그중 체코의 군인들이 있었다. 눈앞의 죽음을 한없이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의 머리에 기꺼이 방아쇠를 당겼던 이들.
전쟁을 끝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끝냈던 사람들에 대해 더 생각해 본다. 병기가 아닌 인간으로 태어난 이들이 겪었을 고뇌에 대해 더 헤아려 본다. 군인으로서 계획된 뭔가를 자신의 몸으로 직접 실행해야 했던 사람들. 사이의 배신자들. 또는 배신하지 않은 사람들, 또는 배신할까 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 어떤 결과를 내기 위해 또는 막기 위해 전쟁은 수많은 죽음들 속에서 생명력을 부여받았다. 군인, 민간인 할 것 없이 자신이 속한 거대한 무리를 지켜내고자 하는 염원에 의해 남은 생물학적 수명을 스스로 단축시켰다. 이들에 의해 역사가 바뀌었다. 후손들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었다. 이들을 거론하지 않고 현시대의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위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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