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 쾌락주의자

폴 버호벤 감독. 엘르

by 백승권

미셸은 연쇄살인마의 딸이다. 어릴 적 미셸(이자벨 위페르)의 아비는 집집마다 쳐들어가 수십 명을 도륙했다. 자기 집까지 몽땅 불사르다 붙잡혔고 현장에서 초점 없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어린 미셸은 전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미셸은 중년이 되었고 남편과 떨어져 살지만 사이에 훌쩍 큰 아들이 있다. 미셸의 남편(샤를르 베를링)은 자신을 실패했다 여기는 작가고 미셸은 그런 그를 미워하면서도 원한다. 미셸은 현재 어느 유명한 메이저 게임회사의 대표다. 거의 모든 직원들이 남자고 그녀의 지휘 아래 촉수로 여자의 뇌를 뚫고 성폭행을 가하는 듯한 장면이 등장하는 잔혹 무도한 게임이 제작된다. 공동 대표로 베스트 프렌드(안느 콩시니)를 두고 있다. 그녀는 미셸과 정서적으로 유대하며 의지한다. 하지만 그녀에 비해 미셸의 태도는 냉랭하다. 사실 미셸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살갑게 굴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온기가 담긴 웃음을 보내지 않는다.


미셸은 성폭행을 당한다. 집에 침입한 괴한에 의해서였다. 복면을 썼고 키가 컸으며 발버둥 치던 미셸을 제압한 후 다급하게 벗어난다. 미셸은, 끔찍한 공격을 받아 쓰러져 있던 미셸은 일어난다. 몸과 옷을 추스른다. 울지 않는다. 깨진 유리가 흩어진 바닥을 청소한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 붉어진 얼굴로 숨을 몰아쉬지 않는다. 욕조에서 거품목욕을 한다. 피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미셸은 피를 거품으로 덮는다. 얼마 후 전 남편과 친구 부부와의 모임에서 이 사건에 대해서 겸연쩍은 듯이 털어놓는다. 지구 멸망도 아니니까 뭐 그렇게 미친 듯이 놀랄 건 아니라는 식으로. 그녀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건 어릴 적 아비가 저지른 악마적 사건 이후로 경찰에 시달렸던 지긋지긋한 기억 때문이었다. 이 사건을 알린다면 자신은 또 과거와 연결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을 것만 같았다. 범인을 잡는 것보다 더 심각하게 불쾌하고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었다.


미셸의 회사로 친구의 남편(크리스티안 베르켈)이 찾아온다. 친구의 남편은 미셸에게 관계를 요구한다. 성폭행 사건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미셸은 거절한다. 친구 남편은 강요한다. 둘은 불륜관계였다. 미셸은 끝내자고 한다. 하지만 죄책감 때문은 아니었다. 미셸의 아들(조나스 블로켓)은 미셸의 맘에 들지 않는 여자와 결혼하기로 한다. 임신했다. 집을 구한다. 출산을 했는데, 피부색이 다르다. 아들 친구의 피부색과 같았다. 병원의 모두가 그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분명했다. 미셸은 속이 뒤집힌다. 하지만 아들은 개의치 않는다. 미셸은 이웃집 부부와 식사를 한다. 친구 부부와도 함께하는 자리였다. 거기에서 이웃집 남자(로랭 라피테)의 다리 사이에 발을 들이민다. 둘 사이 눈빛이 여러 번 오간 후였다. 이웃집 남자의 부인은 독실한 신앙인이었다. 미셸과 이웃집 남자는 관계 직전까지 이른다.


얼마 후 미셸에게 두 번째 성폭행 위기가 닥친다. 동일범이었다. 미셸은 가위로 범인의 손을 찍었고 복면을 벗긴다. 범인은 이웃집 남자였다. 미셸은 나가라고 비명을 지른다. 다음 날 둘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인사한다. 심지어 이웃집 남자는 저녁 식사에 미셸과 미셸의 아들을 초대하기까지 한다. 그녀는 응한다. 미셸은 운전 중 사고를 당한다. 아무도 없는 숲길이었다. 휴대전화로 지인의 도움을 요청하지만 아무도 받지 않는다. 미셸은 자신을 성폭행한 이웃집 남자의 번호를 누른다. 그는 다급하게 현장으로 달려온다. 자신이 운동선수였다며 미셸의 다친 다리를 응급 처치한다. 둘은 설명하기 힘든 화학작용이 일어나고 있음을 서로에게 감지한다.


미셸의 엄마가 죽는다. 서른 살 이상은 차이나 보이는 남자와 살림을 차린다고 해서 미셸이 증오하던 엄마였다. 화장 후 뼛가루를 아무 데나 버린 후 미셸은 그녀가 생전 그렇게 원하던 감옥에서 수십 년 째 수감 중인 연쇄살인마 아버지를 면회하러 간다. 하지만 찾아간 날 아버지는 이미 자살한 직후였다. 딸이 면회 온다는 것을 알고 바로 목을 매달았다고 했다. 평생을 증오하던 남자, 미셸은 시체 안치실에서 아비의 귓가에 읊조린다. 자신이 오는 것만으로도 당신을 죽일 수 있었다고. 마치 진작 오지 못해 너무 아쉽다는 듯, 그녀는 슬픔 한 방울 없이 차를 돌린다.


미셸이 혼자 있는 집에 성폭행범이 세 번째로 닥친다. 그가 누구인지 미셸도 알았고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는 것을 성폭행범도 알았다. 첫 번째 두 번째 범행과 마찬가지로 성폭행범은 미셸을 거칠고 폭력적으로 제압하고 미셸은 그가 누군지 알면서도 그 모든 폭력에 무방비로 당한다. 그때 범인의 둔부로 거대한 충격이 가해진다. 미셸의 지인이 휘두른 둔기로 인해 성폭행범은 즉사한다. 이웃집 여자(비르지니 에피라)는 이사 가면서 미셸과 인사를 나누고 (미셸을 성폭행한) 남편의 그러한 면을, 병적이고 폭력적인 성관계에 중독되어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모임에서 미셸은 친구에게 너의 남편과 불륜관계라는 점을 밝힌다. 친구는 경악하며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자리를 떠난다. 다시 만난 친구는 먼저 미셸에게 다가왔고 그때도 지금도 미셸에게서는 어떤 미안함이나 죄책감의 표정은 드리워지지 않았다. 친구는 남편과 정리할 거라고 말하며 미셸과 같이 살 것을 제안한다. 미셸은 거절하지 않는다.


폴 버호벤 감독의 영화 ‘엘르’에서 미셸은 우리가 옳다고 여긴 일상의 수많은 도덕률을 단숨에 무너뜨린다. 극도로 과격하기 그지없는 성폭력에도, 오랜 친구의 남편과 저지르는 불륜에도, 그걸 자신이 직접 밝히면서도, 전남편의 차를 들이받아놓고도, 심지어 엄마가 죽었어도 동요하지 않는다. 잠시 바람이 거세게 불어 눈에 먼지가 들어가거나 머리가 흩날려 시아를 가렸다는 정도로 받아들이고 대응한다. 아버지에 의해 이미 무너진, 재건될 수 없는 그녀의 세상이었다. 폭력으로 피를 흘릴지언정, 자신은 더 이상 피해자일 수 없었다. 아버지가 준 피해가 처음이자 마지막 피해여야 했다. 남자들 사이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어야 했고, 그만한 사회적 지위 또한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세계가 불온한 건 온전히 그녀의 탓만으로 돌릴 수 없었다. 애초 회복 불가능의 트라우마를 입은 그녀 자체를 넘어 그녀 주위의 인물들과 세계가 죄다 어떤 기준이 될 수 없을 정도로 퇴폐적이고 기괴하며 어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들이 없었다. 이것은 그녀의 비정상적인 면모를 그들 중 한 명의 기행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조금 더 이상하게 보였을 뿐, 미셸 혼자만 미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차라리 자신의 욕망과 충동이 원하는 지점을 가장 충실하게 이행하려는 쾌락주의자에 가까웠다.


연민과 공감이 인생에서 얼마나 쓸데없는 것인지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살인도 마다하지 않고 질서를 파괴하는 자의 딸로 태어나 시스템에 시달리다가 그들을 영영 불신하게 되었다. 기준은 그렇게 사라졌고 오로지 자신이어야 했다. 원하면 가져야 했고 느끼면 다가가야 했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알아봤을 때 그녀는 그가 자신에게 욕망하는 무엇이든 허용한다. 마치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자신이 이런 허락되지 않은 것을 즐기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 이런 광기가 주변을 모두 폐허로 만들어도 그녀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세상의 규율은 그녀의 선택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주변 모두가 어느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미쳐 있었다. 세련된 옷을 입고 와인을 걸치며 우아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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