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남자는 늑대 아니면 애기

홍상수 감독.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by 백승권

영수와 민정은 불안하다. 영수(김주혁)는 민정(이유영)이 술을 많이 마시는 게 싫다. 술을 많이 마시는 걸 지인이 와서 자신에게 말해주는 것도 싫고 술을 마시며 다른 남자와 같이 있는 걸 본 지인이 와서 그걸 말해주는 것도 싫다. 어쩌면 영수는 민정이 자기 몰래 술을 마신다는 사실보다 자신이 직접 확인하지 않은 그런 일들을 남(김의성)의 입에 의해 전해 듣는 게 더 싫을지도 모른다. 영수는 민정이 좋지만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술을 많이 마시는 민정이 불안하다. 주변의 목소리를 무시할 만큼 줏대 있는 남자도 아니다. 민정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자신을 이런 불안과 불신에 빠뜨리는 민정에 대해서는 많이 아쉽다. 징징댄다. 결혼까지 생각하는 여자지만 주변의 동의 없이 모든 소문을 돌파하며 민정을 사랑하기에는 영수는 버겁다. 이걸 가지고 영수는 민정에게 따진다. 소리를 지르고 쌍욕을 퍼붓는다. 민정은 괴로워한다. 영수는 답답하다.


민정과 똑같이 생긴 여자(이유영)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어떤 남자(권해효)가 어, 하며 다가온다. 영수는 아니다. 민정 같은 여자 앞에 앉으며 아는 척을 한다. 민정 같은 여자는 갸우뚱한다. 이 남자를 모른다. 남자는 그럴 리가 없다고 한다. 여자는 자신이 민정이 아니라고 한다. 남자는 기가 막혀한다. 당신은 민정이 확실한데 민정이 아니라고 하다니. 남자는 어떻게든 자신이 발견한 민정과 똑같이 생긴 여자와 가까워 지려 온갖 과거를 꺼내어보지만 여자는 모두 부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꺼지라고 하지도 않는다. 최소한 술자리를 같이 할 정도의 여지는 남겨둔다. 그 여지는 술자리로 이어지고 ‘만나는’ 사이로 이어진다. 주변에서 영수의 지인들이 보고 있었다. 그들은 한숨을 쉬며 영수를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민정과 똑같이 생긴 여자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또 다른 어떤 남자(유준상)가 어, 하며 다가온다. 영수는 아니다. 처음의 그 어떤 남자도 아니다. 그는 민정과 똑같이 생긴 여자를 민정으로 여기며 아는 척을 한다. 출판사에서 근무하는 거 아니냐고 접근한다. 민정과 똑같이 생긴 여자는 부정하지만 역시 꺼지라고 하지 않는다. 술자리로 이어진다. 민정과 똑같이 생긴 여자는 두 번째 어떤 남자를 만나기 전 첫 번째 어떤 남자와 더 이상 만나지 않기로 의사를 전달한 상황이었다. 두 번째 어떤 남자와의 술자리에 첫 번째 어떤 남자가 나타난다. 둘은 민정과 똑같이 생긴 여자를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벌인다. 민정과 똑같이 생긴 여자는 자리를 빠져나온다. 민정과 똑같이 생긴 여자는 골목을 헤매다 주저앉아 운다. 영수가 나타난다.

민정과 똑같이 생긴 여자는 이번에도 자신이 민정인 것을 부정한다. 영수는 당황한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게 거짓이든 진실이든 영수에게 민정과 똑같이 생긴 여자가 자신이 민정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상관없어 보인다. 영수는 다시 시작하고 싶고 민정과 똑같이 생긴 여자 역시 이점에 동의한다. 영수는 과거 자신과 사귄 민정에게 강요했던 술을 적게 마시는 것에 대한 강요를 하지 않는다. 영수는 과거의 민정을 과거에 두고 온 채 새로운 민정과 다시 시작하려 한다. 새로운 민정이 아무렇지 않은 이유는 과거의 민정과 모든 것이 똑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둘은 그날 밤 다시 가까워지고 영수는 민정과 똑같이 생긴 여자와 밤을 보낸다. 과거 민정과 밤을 지냈던 곳과 같은 장소였고 그때는 싸웠지만 지금은 좋아 죽는다. 영수는 잠에서 깨어 곁의 빈자리를 확인하고 놀란다. 하지만 민정과 똑같이 생긴 여자는 다시 등장한다.


“남자는 늑대 아니면 애기”

“우리 이제 진짜 사랑을 해요”

“영혼이 다른 과인 거 같아요, 우린”

“다 알려고 하진 마세요”


민정과 영수가 싸우고 난 후, 민정과 똑같이 생긴 여자가 하는 대사들은 민정의 정체나 심리상태를 결정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말이 향하는 대상인 남자들에게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실제 민정 또는 민정과 똑같이 생긴 여자가 만나는 영수와 두 남자들은 늑대와 애기를 오가며 민정 또는 민정과 똑같이 생긴 여자를 서성거린다. 어떤 말을 하든 그 말은 다음 리액션을 불러낸다. 술자리로 이어지거나, 더 이상 만남을 이어가지 않거나, 또는 접근을 차단하거나. 하지만 단절하진 않는다. 남자들의 변화를 원하고 그 요구에 순응하길 바라며 마치 그들이 자신에게 궁극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처럼, 민정과 똑같이 생긴 여자는 그들을 다룬다. 남자들은 꼼짝하지 못 한다. 말 잘 듣는 애기처럼 굴며 안절부절못한다. 마치 이렇게 굴면 내가 너한테 원하는 것을 줄 거야? 라고 구는 것처럼.


홍상수의 영화는 늘 그렇듯 이번에도 역시 예쁜 여자와 아는 척하며 술 마시려는 남자들의 민낯을 까발린다. 이건 뭐 단순하다 못해 무식해 보일 정도로 일관적인 접근 방식의 캐릭터들을 보여준다. 남자들의 태도는 하나 같이 이 예쁜 여자를 향한 나의 마음은 순수하고 올곧다고 여긴다. 다정하고 젠틀해 보이려고 안간힘을 쓴다.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속물적인 두 어떤 남자에 비해 그나마 관계의 회복을 위해 매달리고 수를 간구하는 캐릭터는 영수다. 유일하게 영수만이 태도를 바꾼다. 그의 과거가 바람둥이었든 그림을 그리든 그는 민정이라는 한 여자를 향해 모든 것을 걸려고 작심한다. 그게 현재 자신의 진심이라 여긴다. 그리고 실제로 과거 민정이 싫어했던 자신의 태도를 바꾼다. 술을 마시게 한다.


여자 친구가 술을 마음껏 마시게 한다. 영수 입장에서 이것은 다 내려놓는 것이었다. 상대방이 바꿀 수 없는 부분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영수는 무릅쓴다. 민정의 이미지를 갖춘 여자만 자신의 곁에 머물 수만 있다면 뭐든 상관없다는 식의 변화였다. 그제야 자신은 민정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지만 민정과 똑같이 생긴 여자는 영수를 흔쾌히 받아들인다. 영수에게 우리도 잘 맞는 부분이 한 가지 있다며 칭찬한다. 영수는 민정과 똑같이 생긴 여자를 더 이상 자신의 것이라도 두지 않는 듯하다. 민정을 민정 그대로 놔둬야 곁에 오래 머물게 할 수 있다고 깨달은 것 같다. 영수가 자신의 진심을 어디까지 믿고 있는지 모르겠다. 민정과 똑같이 생긴 여자가 진짜 민정인지 아니면 민정과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쌍둥이 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영수는 세 남자 중 유일하게 원하는 것을 얻었다. 자기 자신을 바꾸고 자신의 것을 버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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