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방식을 찾지 못했다
일본 덴츠의 신입사원이 자살했다. 자살은 흔한 뉴스지만 광고회사 직원이라면 파동이 다르다. 비슷한 일을 했을 테고 비슷한 기분으로 시작했을 것이며 비슷한 대우를 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전혀 비슷하지 않은 선택을 했다. 주변에 다양한 가해자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주말출근. 밤샘. 수면부족. 우울증. 뉴스는 모든 세부를 전할 수 없지만 그(그녀)가 처했던 상황은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저 네 개 단어 중 두 개만 누적돼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당위가 충분해진다. 뭔가 쓰려했지만, 이런 분노는 늘 같은 결론으로 도달하곤 했다. 광고보다 크리에이티브한 감각과 스킬을 필요로 하고 자유로우며 무엇보다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영역은 세상에 별처럼 많다는 것. 죽지 말라는 말보다 죽음으로 몰아가는 새끼들과 상황을 처단해야 마땅하겠지만 십 년 가까이 주위를 둘러봐도 가능성은 소수점을 오갈 뿐이었다. 단언할 수 있는 것도 해결을 위한 변화로의 도모도 의미가 크지 않았다. 고민하고 부유하다 남는 자들과 옮기거나 떠나는 자들로 나뉘었을 뿐. 충격적이고 서글픈 뉴스였다. 그동안 이에 관련한 너무 많은 기록을 했지만 스스로 외에 어떤 변화도 이끌어낼 수 없었던. 그래서 누군가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음에도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다른 애도의 방식을 찾지 못했다. 광고회사에서의 격무로 인한 자살은 남의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