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빈 오코너 감독. 어카운턴트
사람은 각자의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다. 눈 둘 코 하나 입 하나 팔다리 두 개씩 등 비슷해 '보이는' 이들끼리 어울린다. 주류가 창궐한다. 스스로에게 우월함을 부여한다. 다수로 뭉친 이들은 자신들과 다른 조건의 소수를 두려워한다. 조직성을 해치고 자신들의 지위를 낮추고 빼앗을 거라 여긴다. 다양성은 화두가 아닌 적 없지만 그만큼 배타적이었기 때문이다. 충분히 자신과 서로의 습성에 대한 학습을 거친 후 뭉친 지역을 벗어나지 않았다. 선을 긋고 침범을 경계했다. 그렇게 최대한 예상 가능한 환경 안에서 자신들을 보호했다. 그 안에서 번식했다. 권력을 지녔다 착각했다. 예측 불가한 모습들을 단속했다. 지속 가능한 생존과 영토확장, 삶의 질 개선을 위해 가능성을 열어 두었지만 조상들로부터 부여된 뿌리 깊은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방인을 정의했다. 비슷해 보이지 않는, 크리스찬(벤 에플렉)은 이방인이었다.
엄마는 떠났고 아빠는 크리스찬을 돌봐야 했다. 아니 살아남도록 훈련시켜야 했다. 크리스찬은 자폐증세를 보였다. 숫자를 다루는 데 있어 천재적이지만 마음과 행동이 조금 달랐다. 조금 달랐지만 세상은 완전히 다르게 취급할 게 뻔했다. 아빠는 물리적인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법을 가르친다. 피범벅이 되어 쓰러졌을 때조차 일으켜 주지 않는다. 세상 밖에선 소리 없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아빠가 사고로 떠났을 무렵 크리스찬은 이미 병기가 되어 있었다. 자신을 지키는 것은 물론 상대를 몰살시킬 수도 있을 만큼.
다른 조건으로 태어났기에 무리에 섞이지 않는 일을 찾아야 했다. 크리스찬은 자신의 재능을 한껏 활용한 어카운턴트(회계사)가 되었다. 쥐구멍만 한 사무실에서 천문학적 수치의 검은돈을 만지고 있었다. 범죄자금의 빈 곳을 메워주는 역할이었다. 범죄조직에게 요긴하게 쓰이고 일이 끝나면 '처리'될 수 있는 일이었다. 수익성은 뛰어났지만 생존이 위태롭다는 게 흠이긴 했다. 아까 말했지만 크리스찬은 이미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어른이었다. 장거리에서 가정집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중화기를 다수 보유하고 뛰어나게 다룰 수 있었다. 뭔가 슈퍼맨 같지만 회계사는 그가 직접 선택한 직업이 아니었다.
시작은 범죄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사법당국이 설치한 덫이었다. 폭력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간 크리스찬은 범죄조직의 회계사(제프리 탬버)와 '의도적으로' 연결되고 생애 가장 커다란 우정을 쌓아나간다. 자신이 정상이라 여기는 이들과는 맺기 힘든 성취였다. 하지만 친구의 죽음은 크리스찬의 훈련된 폭력성을 깨우고 한 조직이 무참히 사라진다. 인간적 판단은 개입되지 않는다. 크리스찬은 채워 넣을 수 없는 상실을 겪었고 그 원인을 발본색원해야 했다. 기계적으로 살육한다. 눈에는 눈, 죽음은 죽음으로 돌려준다.
그때까지만 해도 크리스찬의 삶은 정확한 공식 안에서 진행되었다. 변수가 발행한다. 변수는 공식에서 이탈하게 한다. 크리스찬은 자신과 비슷한 관심사를 지닌 여자와 어색하게 가까워지고 공식과 다른 삶을 경험한다. 여자의 목숨을 지키는 일을 자신의 공식 안에 포함시킨다. 그 일이 자신의 현재 담당 프로젝트를 어지럽히더라고 개의치 않는다. 이미 돈은 충분했고 일은 다시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 일이 자신과 여자를 위협한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위협은 제거해야 했다. 과거에 한 조직을 그렇게 없앴듯이.
크리스찬의 뒤를 쫓는 사법당국은 난처해진다. 그는 살인자였지만 자폐증세의 개선을 돕는 거대한 기부가였고, 범죄조직의 회계를 맡았지만 범죄조직의 체포에 지속적으로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현재 주목받는 한 생명공학회사와 긴밀히 엮여 있었다. 대표는 생명공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다른 생명들을 죽이는데 서슴지 않았다. 크리스찬의 의뢰인이었지만 지금은 크리스찬을 없애는데 가장 혈안이 된 자이기도 했다. 까닭을 묻기도 지친 악랄한 모순 안에서 크리스찬은 길을 잃지 않는다. 연민을 낭비하지 않는다.
영화 어카운턴트는 -남들보다 불리해 보이는 조건으로 태어난- 이방인의 생존법을 테드 강의처럼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상생과 소통이라고 얼버무리지 않는다. 주류의 기준에서 가장 우위를 차지하는 것, 더 강한 물리적 힘과 자본이라고 크리스찬의 강인한 어깨와 고성능 무기, 서랍 속의 돈다발과 벽에 걸린 진품 그림을 통해 전달한다. 크리스찬의 자폐증세는 소홀히 다뤄지지 않으며 그의 수학적 능력과 재력, 액션을 부각하기 위한 장치로 충분히 기능한다.
모든 이방인이 벤 에플렉처럼 살 수는 없다. 특수훈련을 시킬 수 있는 아버지를 두는 것도, 엄마 장례식에서 사람을 때려 감옥에 들어갈 일도 드물다. 모든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도 없다. 크리스찬은 자신과 애써 친구가 되어준 이를 통해 범죄와 손을 잡았고 친구가 되어주려는 여자를 위해 기꺼이 사람을 죽였다. 탄생부터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 있었고 살아가는 과정 또한 늘 그늘에 가까웠다. 그렇게, 모두와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피로한 세상 속에서 크리스찬은 주류의 룰을 등진 채 혼자만의 존재감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만인이 선망한다는 평범한 삶, 이 세부를 누가 정의할 수 있나. 주류는 늘 나약하고 이방인은 타인만이 아니다.
남다른 인생, 남다른 영화, 남다른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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