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아 아놀드 감독. 아메리칸 허니
맨 처음 한 일은 가족을 버리는 일이었다. 태어나 단 한 번도 빛난 적 없어 보이는 스타(사샤 레인)의 결심이었다. 낳아놓고 돌보지 않는 엄마에게 동생들로 보이는 아이들을 맡기고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한다. 등을 돌린다.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지 않는다. 갈 곳은 없었다. 눈이 맞은 남자는 있었다. 느닷없이 무리들과 함께 동네 마트에서 고성방가를 내지르며 음악에 온몸을 흔들던 남자, 제이크(샤이아 라보프). 제정신이었으면 따라가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스타는 아주 오래전부터 제정신일 수 없었고 그 길로 제이크를 따라간다. 자신보다 더 암울해 보이는 하지만 이상하게 다들 미친 듯 한껏 즐거워 보이는 무리들과 승합차에 오른다. 새로운 시작이 아니었다. 도망이었다.
잡지를 팔았다. 미국은 넓었고 동네는 많았다. 모텔을 전전했고 집집을 돌며 잡지를 영업했다. 방문판매. 당연히 어서옵쇼할리 없는 일이다. 제이크는 조직의 부대표이자 영업팀장 같아 보였다. 대표로 보이는 크리스탈(라일리 코프)을 보좌하고 있었다. 스타는 제이크에게 마음이 흔들렸고 크리스탈은 그런 스타를 경계하면서도 직원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문을 두드리고 잡지를 설명한다. 불쌍한 척하고 거짓말을 한다. 그렇게 사인을 받고 구독을 따낸다. 벌어온 돈은 크리스탈이 수금하면 먹이고 재워준다. 실적이 나쁘면 놀림을 받는다. 이동 중엔 같이 노래를 한다. 어떤 미친놈은 고추를 꺼내어 흔들며 장난치기도 한다. 대마초를 마음껏 피운다. 불을 피우고 춤을 춘다. 도시 문명에서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들, 어쩌면 진입을 차단당하고 시스템에 의해 망가진 개인들.
스타는 싫지 않았다. 자신이 덜 불행해 보였을 것이다. 각양각색의 외모와 스타일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앞서 버려지고 시스템에 의해 망가졌다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소수의 상징처럼 보이지 않았다. 시스템이 버린 건 소수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다수의 상징이었고 미국이 지닌 맨얼굴의 전부였다. 스타는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자기 방식대로 잡지도 팔고 제이크와의 관계는 더욱 깊어져 갔다. 제이크도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크리스탈은 아니라고 했다. 여기 모든 여자와 잤고 너도 그중 한명일뿐이라고 일축한다. 스타는 혼란스러웠지만 감정은 일부에 불과했다. 스타는 떠날 맘도 떠날 곳도 없었다. 제이크는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일상은 굴러갔다. 승합차는 다른 동네로 이동하고 새로운 일원이 들어오고 여전히 이동하며 노래를 불렀다. 제이크의 훔친 보석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바람뿐이었다.
잡지를 영업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말끔한 카우보이 복장으로 비싼 차를 끌고 호화 저택에서 술과 고기를 즐기는 노인들, 천 달러를 부담해도 좋으니 하룻밤 놀아달라고 제안하는 정유 노동자, 행색과 말투가 자신과 다른 이방인을 사탄 취급하며 짧은 옷을 입는 딸을 못 참는 보수 기독교인, 거짓말을 다 믿어주고 동정하고 도와주려는 어느 가족, 바쁜 물류 일을 하면서도 처지를 알고 진심으로 도와주려는 트럭 운전사, 그리고 스타의 지난날을 떠올리게 한, 서로 다른 아버지를 둔 듯 생김새와 머리색이 다른 아이들이 방치되어 있는 풍경과 그 집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어느 마약중독자 엄마. 스타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마트에서 장을 본 후 다시 방문한다. 두고 온 동생들이 생각난 듯 먹을 것을 한 아름 안겨주고 다시 승합차에 올라탄다.
극영화를 가장한 다큐멘터리 같았다. 모든 것이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사랑에 빠지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연명하고 있었다.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와 갈등을 일으키고 배운 대로 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 떠나고 있었다. 희망 따위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괴상하기 그지없는 사람들만 모아놓은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경제적 궁핍이 계급을 더 철저하게 구축했고 그 속에서 생겨난 새로운 무리였다. 삶을 위해서 뭉쳐 다닐 수밖에 없었다. 소리 지르고 뒤엉켜 놀며 만끽하는 수밖에 없었다. 실제 즐거웠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르니까. 단숨에 목숨을 끊을 수 없으니 어울리며 즐거운 방법을 찾아 헤매는 것처럼 보였다. 연민은 필요 없었다. 그들의 삶이었고 다수의 처지였으며 미국의 맨얼굴이었다. 아메리칸 드림? 그들의 대통령은 지금 도널드 트럼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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