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포드 감독. 녹터널 애니멀스
이상과 한계는 늘 격돌한다. 이상은 목적지였고 한계는 현실이었다. 현실은 과거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든 시간의 영역 안에 갇혀 있었고 이상이 보여준 장대한 스케일과 화려한 색감에도 불구하고 벗어나지 못했다. 그게 현실의 힘이었고 한편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이었다. 외면하려 해도 부정하기 힘들었다. 마음이 나눠진들 몸이 움직이고 있었고 몸이 움직이는 방향이 결과였다. 타인들은 결과를 보고 판단했고 과정의 역경을 설명한들 들리지 않았다. 젊은 날, 부유하고 꿈 많았던 수잔(에이미 아담스)은 소득이 없는 작가 에드워드(제이크 질렌할)를 버렸다. 엄마의 모든 것을 싫어했던 그녀는 엄마와 가장 닮은 모습이 되어 현실적 욕망을 선택했다. 마침 저돌적이고도 잘 생긴 남자가 보였고 에드워드가 한없이 나약하고 누추해 보였다. 그래서 과거의 선택을 부정했고 새로운 남자와 결혼했다. 20여 년이 지났고 수잔은 자신이 행복하지 않음이 염치없다고 여기기까지 했다. 다 가졌는데, 왜 공허할까. 남편은 출장이 잦았고 거짓말을 하고 있었으며 모르는 여자와 자신과 묵었던 호텔로 올라가고 있었다. 한 권의 소설이 집으로 배달되었고 제목은 자신의 과거 별명이었다. 녹터널 애니멀스. 자신의 어두운 과거, 자신이 버렸던 남자, 에드워드의 소설이었다.
남편, 부인, 딸.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도로를 지나던 가족이 괴한들에 의해 고의적인 시비에 휘말린다. 책장이 넘어가며 수잔은 바로 이입되었다. 남편은 에드워드, 부인은 자신. 괴한들은 부인과 딸을 납치하고 남편은 다른 괴한과 외딴곳에 버려진다. 부인과 딸을 찾아 헤매는 남편. 보안관에 신고하고 인근에서 부인과 딸을 발견한다. 발가벗겨져 있었고 모두 사망한 상태였다. 책장을 넘기던 수잔은 소스라치며 전화기를 누른다. 현재의 딸에게 안부를 묻고 안전을 확인한다. 에드워드와의 과거가 난입한다. 첫사랑, 운명적 재회, 로맨틱한 연애, 풀리지 않는 커리어, 갈등, 이별,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들, 아니 혹은 유기할 수밖에 없던 것들. 소설 속 딸의 죽음이 예사롭지 않았다. 수잔은 에드워드와의 이별 과정에서 겪은 낙태를 떠올린다. 알고 있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딸과 엄마(부인)는 모두 무참히 살해당했다. 수잔에겐 단순한 픽션이 아니었다. 수잔에게 에드워드의 소설은 과거의 자신이 저지른 선택에 대한 에드워드의 복수극이었다.
소설 속 남편은 복수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현지 보안관(마이클 섀넌)도 의욕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것들. 법이 처리하지 못하는 쓰레기들. 범인을 하나둘 찾고 궁지로 몰기 시작한다. 보안관에겐 총이 있었고 그 총은 남편에게 주어진다. 하지만 남편은 강하지 못했다. 총을 발사하지 못했고 범인(애런 존슨)은 도망친다. 마치 과거의 에드워드처럼 남편은 나약했고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남편은 다시 쫓아간다. 마지막 범인을 발견한다. 그의 심장을 향해 총이 격발 되고 모든 것이 어두워진다. 모든 것이 끝난 걸까. 복수극이 막을 내린 걸까.
수잔은 에드워드에게 메일을 쓴다. 답장이 오고 만날 약속을 잡는다. 거울 속의 자신은 많이 변했다. 진해진 화장, 화려해진 의상, 차가워진 눈빛, 나이가 들고 세상을 겪으며 자연스럽게 순응하거나 찾아오는 것들, 아니면 것보다 선택에 의해 일부가 되기로 합의한 것들로 이뤄진 자신. 거울 속에 그런 자신이 있었다. 수잔은 기대를 숨길 수 없었다. 첫사랑과의 해후라니. 그리고 식당의 모든 자리가 비워지고 빈 물컵이 수십 번 다시 채워질 때까지 그는 오지 않는다. 수잔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이 약속도 복수의 일부였을까.
선택은 대가를 치른다. 모든 대가를 피할 수 있는 선택은 없다. 방향의 옵션은 정해져 있고 선택의 기로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상, 자의든 타의든 정해야 한다. 그리고 나아갈 수밖에. 수잔은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것들은 수잔의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의 수잔을 형성했다. 에드워드는 불충분한 조건으로 인해 과정에서 제외되었고 로맨틱한 사랑은 그렇게 추억으로 저장되는 것으로 기능을 다한다. 그리고 그 제외된 조건이 현재에 변수로 작용하고 있었다. 인생은 완벽하게 프로그래밍될 수 없었고 변수의 복수는 수잔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일상은 무료했고 소설의 등장은 긴장을 유발했다. 에드워드의 그녀 앞에 등장한다면 폭풍을 일으킬 수 있을까. 딸은 엄마가 형성한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 톰 포드는 변하지 않으면 죽는 세계 속에서 맹위를 떨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고, 지금은 변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디렉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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