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킹, 그렇게 개의 먹이가 된다

한재림 감독. 더 킹

by 백승권






"그의 라인을 잡는 것이

권력의 핵심이 되는 길이다."


폭력의 중심이 권력의 핵심이 된다. 권력 위에는 더 큰 권력이 항상 있다. 권력을 따르면 권력이 주어진다. 넓고 크게 봐야 한다. 라인은 존재한다. 배신하면 개의 먹이가 된다. 반항하면 개의 먹이가 된다. 귀찮아져도 개의 먹이가 된다. 필요 없어지면 개의 먹이가 된다. 리더는 정해져 있고 따르지 않으면 개의 먹이가 된다. 욕망의 상향 평등화. 학력이 욕망이다. 떠오르는 생각의 편린들을 아무 말 대잔치처럼 늘어놓았지만 모두 하나의 영화 안에서 파생되었다. 더 킹. 쓰다 보니 개처럼 취급받다가 개의 먹이가 된 최두일(류준열)이 떠오른다.


상상력이 존재를 지탱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상상력이 다른 요소들에 비해 영향을 미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대한민국에서 상상력은 눈으로 감지되는 권력의 크기를 쉽게 넘지 못한다. 권력이 상상력을 압도한다. 그 이상은 허용되지 않는다. 서울대 출신, 사법고시 패스,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준비단계는 거기까지다. 이 문턱을 넘어서면 만인의 상상력 안에서 정점에 서게 된다. 정체를 알게 된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된다. 맞서려면 인생을 걸어야 한다. 기회가 있을지 언정 자비는 없다. 겁이 많은 이들이 모인 집단들은 생존의 룰을 알아서 기획했다. 재발의 방지를 위해 위험요소를 철저히 제거한다. 사례를 만들고 경고한다. 우리가 너희를 건드릴 때까지 너희는 우리를 건드릴 수 없다고.


만약 그 상황에서 인간을 선택했다면. 학생을 성추행한 쓰레기와 러브샷을 하는 대신 성추행당한 학생을 보호하고 가해자를 징벌하는 데 힘을 쏟았다면, 태수(조인성)의 앞날은 어떻게 되었을까. 재벌가 아내와 재규어 소버린마저 날아갔을까. 남은 여생 소시민을 보호하며 빈자들의 영웅이 되었을까. 예단할 수 없다. 인간이 아닌 라인을 선택한 태수도 끝내 같이 판을 휘젓던 한강식(정우성)과 양동철(배성우)에 의해 개 먹이가 될 위협에 처할 줄 몰랐을 테니까. 라인에 인간은 없다. 라인 위에는 욕망만 있다. 보이지 않지만 모두가 잡으려 하는 끗발. 모두가 자신의 현 지위를 높이고 유지하기 위해 목적에 반하는 모든 것들을 처단할 뿐이다. 개의 개들과 개의 주인이라 믿는 개들이 나라를 주무르고 있었다. 누구는 자신이 역사고 국가라고 칭하고 누구는 신이여 우릴 용서하소서 읊조린다. 상상력은 각자의 영역이지만 한강수와 태수는 겹칠 수 없었다. 같은 방향이라고 여긴 것은 태수뿐이었다.


반전은 드라마틱할 수 없었다. 영화는 결론을 스크린 밖으로 넘겨준다. 큰 악당에게 당한 작은 악당이 카운터 펀치를 먹이며 반전을 노리는 장면에서 멈춘다. 태수가 선거에서 이긴 들 바뀔 수 있을까. 그는 이미 가장 순수하고도 예민했던 선택의 과정에서 범죄자와 러브샷을 나눴는데? 위기가 찾아와 현 상황에서 답을 찾을 수 없을 때 인간은 보통 과거의 답안지를 뒤적거린다. 자신이 어떻게 선택했는지 참고한다. 태수의 선택은 라인이었고, 그 라인에서 벗어난 지금 복수극을 펼치는 중이었다. 선의가 아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의 선택은 자기 자신이었다.


무게 중심을 잃은 상상력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조폭의 왕, 검사의 왕, 부동산 사기의 왕, 정녕 자본과 권력이 핵심일까. 어쩌면 저것들이 세상 전부 중에서 가장 제일이라고 프로그래밍된 대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물론 검사가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주먹과 칼로 강남의 모든 클럽을 접수할 수 있으며, 부동산 사기로 막대한 자본을 축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게 한 번뿐인 인생의 유일하게 추구할 수 있는 해피한 결말 아니겠냐 라고 퉁칠 수 있다. 보통 그렇다. 그렇게 보고 들으며 배웠으니까. 그런 방식으로 성공한 자들이 나보다 더 나은 자리에 앉아 깔깔대는 것에 분노해 왔었으니까. 상상력의 일방통행. 성공 기준의 획일화.


견고하게 짜인 시스템을 단번에 반박할만한 구색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국가 단위 구성원들의 상상력이 이토록 집단 최면에 걸린 듯 한결같을까 라는 관점에서 영화가 아닌 영화가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전체에게 의아함을 전하고 싶다. 모두의 꿈이 왜 하나처럼 보일까. 각자의 길을 추구하는 것은 아웃사이더들의 몫일까. 다수와 다른 꿈을 꾸면 비주류일까. 개인의 꿈은 왜 권력, 폭력, 시스템 이런 것보다 보잘것없게 취급당할까. 개인이 집단을 이끌고 집단이 국가 전체의 분위기를 주무른다면, 개개인의 이상과 비전이 현 집단이 추구하는 어떤 것보다 무거운 가치를 잠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려운 것을 쉽게 말하는 방식은 격찬받을 만하지만 이제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 내포한 어쩌면 더 중요할지 모를 가설에 대해 제대로 담론화하고 표현되어야 하는 시도가 고민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은 모두를 고민하지 않은 상태에서 옮겨진 것이기에 한없이 부족하다.


룰이 바뀌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답은 정해져 있다고 여기는 것이 더 수월할지도 모른다. 노력보다 앞서는 것들이 존재하고 이를 라인이라 부르고 여기에 서기 위해 생의 모든 것을 걸고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어떤 비전보다 빠른 지름길을 열어줄 거라고 확신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가보지 않은 길을 타인들이 모두 한입으로 맞다고 하여 동의하기 어렵다. 영화 더 킹은 투표를 향한 독려보다 검사가 이렇게 대단하다! 라는 홍보로 더 강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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