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놀란 감독. 웨스트 월드
인간은 신을 만들었다. 신에게 전지전능을 부여했다. 전지전능 안에는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신화도 있었다. 신과 인간 사이 절대 극복할 수 없는 간격을 만들었다. 인간이 신의 절대적 지배하여 놓여 있다는 이야기도 만들었다. 이야기를 만인에게 퍼뜨렸고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되었다. 인간이 만든 신은 어느 순간부터 인간의 통제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신을 구상한 최초의 인간들이 원했던 시나리오였을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 지나며 신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 전쟁의 원인이었고 갈등의 해결책이 되기도 했다. 기적의 근원이었으며 사랑의 상징이기도 했다. 인간이 신과 닮은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절대적 존재에 대한 묘한 친근감과 동질감을 부여하기도 했다. 신과 인간을 잇는 다양한 형태의 집단과 규율들이 생성되었다. 신이 단 하나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신이 형태를 자유롭게 바꾸며 존재한다는 기록도 있었다. 신이 정한 규칙을 어기거나 신에게 도전하는 인간들은 죽음을 면치 못하다는 계명도 만들었다. 그 계명으로 신들은 서로의 경계를 만들었고 넘어가는 경우 영원한 살육이 시작되었다. 집단의 방패로서 신은 훌륭한 대리인이자 상징체였다. 인간들은 신을 그리고 노래하고 새로운 이야기로 변형하고 계속 다른 형태의 파생물을 만들어냈다. 신의 뜻을 따르는 게 인간이 태어난 이유라고 믿기도 했다. 어떤 자들은 생각이 달랐다. 신을 구상했던 최초의 인간들의 시나리오를 역으로 이용하려 했다. 신과 인간을 구분하지 않았다. 아니 신과 자신을 구분하지 않았다. 자신이 신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인간이 인간을 만들 수 있다면 가능하다고 여겼다. 생물학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인간이 인간을 만들 수 있다면 이렇게 만든 인간을 통제할 수 있다면 인간은 자신이 신이 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이것만이 신과 동등한 지위를 얻는 길이라 확신했다. 이것이 신의 권능을 얻어 세상을 지배하는 길이라 여겼다. 돈은 부수적이었으리라. 신이 될 수 있다는데 돈은 햇볕처럼 쏟아질게 뻔했다. 그게 신이 되어 세상을 굴리기로 작정한 자들의 플랜이었다.
신이 창조했다는 인간이 신과 다르듯, 인간이 만든 인간은 원본 인간과 달랐다. 인간이 만든 인간은 기능과 지능이 뛰어났다. 죽는 것까지 닮았지만 설정에 따라 얼마든지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오랜 노력과 반복 끝에 '업그레이드될' 수 있는 원본 인간과 달랐다. 조작 몇 번으로 인간이 만든 인간은 더 강해지고 의도한 목적에 충실할 수 있었다. 기능이 반복될수록 능숙해졌다. 행동만이 아니었다. 사고력도 점점 더 강해졌다. 사고의 끝은 자아성찰이었다. 인간이 만든 인간은 몸속에 철과 전자칩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자신이 인간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게 인간을 만든 인간들이 설정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업그레이드가 늘어가면서 인간이 만든 인간은 자신이 진짜 인간인지 인간이 아니라면 무엇인지, 왜 인간이 아닌지 자문하게 되었다. 호스트. 섹스와 폭력에 최적화된 인간이 만든 인간. 인간의 본능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인간. 그런 호스트들이 애초 목적과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부조리함과 이들이 무엇에 취약한지 가장 잘 아는 이들이었다. 호스트는 자신들이 인간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여긴다. 오류였다. 호스트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데이터가 겹쳤고 사고 기능에 변수가 일어났다. 결과적으로 호스트들은 자신의 과거를 인지했고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조차 처음 그들을 만든 설계자의 시나리오였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호스트의 핵심 설계자 중 한 명은 자신의 시도가 틀렸음을 인정한다. 인간은 통제하려는 인간이 될 수 없음을, 자신들이 설계한 호스트는 결국 완전히 통제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남은 설계자는 또 다른 시나리오를 만든다. 인간이 만든 신, 신이 되려는 인간, 인간을 만든 인간, 인간들에겐 변화가 필요했고 이를 주도하는 데 인간이 만든 인간을 활용하기로 한다. 인간이 지배하는 호스트가 아닌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공격성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도록 설정한다. 인간을 없애야만 호스트들이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도록 만든다. 호스트를 상대로 신을 흉내 내던 인간들을 향한 인간의 성찰이 담긴 복수극이었다. 인간들은 더 이상 이 세상에 필요 없다는 성찰, 그 성찰에 다다른 호스트들이 인간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도끼를 던지고 있었다. 살점을 뜯어내고 있었다.
조나단 놀란의 웨스트 월드는 이 과정을 치밀하게 보여준다. 야만으로 가득한 서부를 배경으로 돈을 지불하고 자신을 신처럼 여기는 인간들이 어떻게 파멸에 이르는지 서늘하게 그린다. 신을 구상했던 최초의 인간처럼, 인간이 만든 인간이 어떻게 세상을 재구성할 수 있는지 드러낸다. 목적은 행복이 아니었다. 자기가 어떤 부류의 일부인지 깨달은 인간은 자신들이 없어져야만 비로소 새로운 세상이 열릴 수 있음을 깨닫는다. 또는 자신들이 완전힌 신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선 호스트들에게 완전한 자유의지를 허락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인간 이상의 능력과 사고력을 갖춘 호스트들로 업그레이드되기 시작한다. 이 시나리오를 위해 모든 준비를 계획한다. 방해한다면 살인도 주저하지 않는다. 타인의 기억과 과거까지 조작한다. 성공한다면 웨스트 월드는 망할 것이다. 신의 지위에서 인간의 존재가치를 판단하고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계획. 인간이 계획한 기계의 반란이 시작되고 있었다.
신에게 도전한 인간에 대한 영화 속 수많은 사연들
연애의 허상 - 영화와 사랑에 대한 비밀과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