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 깁슨 감독. 핵소 고지
의견이 대립되는 경우가 있다. 감정이 불거지고 목소리가 커진다. 멈추는 이유는 다양하다. 이런 것도 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대립 자체가 핵심보다 커질 때가 있다. 그럴 땐 제어 장치를 가동하게 된다. 경험이 낳은 효율. 실제 이슈보다 파생되는 소모나 피해가 커진다고 여겨질 때, 조율을 생각하게 된다. 타협이든 수긍이든 잠시 내려놓게 된다. 진정하게 되고 다시 입을 열 때에는 좀 더 다급해 보이거나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쪽의 의견을 수렴하게 된다. 대립만 이어질 경우 양쪽 다 남는 게 없다. 수싸움이 극에 달한 들 수지를 계산한다면 타협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배려가 아닌 이익에 기반한 계산이다.
전쟁인들 다를 리 없다. 혼돈의 연속이지만 지원병의 입장에선 이보다 분명할 수 없다. 적군과 아군. 이뿐이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먼저 총을 쏘지 않으면 총에 맞는다. 먼저 총을 쏘지 않는 경우 나와 우리 편의 팔다리가 뜯겨 나간다. 머리통이 부서지고 내장이 쏟아진다. 정말... 그런가? 반드시. 먼저. 총을, 쏘아야만. 승리를 할 수 있는 건가? 도스(앤드류 가필드)의 참전은 달랐다. 너무 달랐고 그 다름이 자신을 제외한 모든 아군을 또 다른 적으로 만들었다.
목적은 같았지만 방식이 달랐다. 적을 죽이는 게 아닌 우리 편을 더 살리겠다. 도스의 참전 이유였다. 위생병에 지원했고 다른 지원병들과 같은 훈련을 받는다. 군사훈련은 대부분 살상을 위한 훈련이었고 보병에게 살상 방식은 주로 총기에 의한 것이었다. 도스의 종교적 신념은 총기 사용을 거부한다. 2차 대전이라는 전시상황. 군대라는 특수집단. 훈련병이라는 신분. 도스는 양심적 거부라는 명목 하에 총기 사용을 거부한다. 그의 결단은 전시 중 군대라는 특수집단의 근간을 흔든다. 고위부터 말단까지 모두가 분개하고 배척하며 폭력으로 보복한다. 도스가 자신들처럼 총을 들 때까지, 또는 지쳐 떨어져 나갈 때까지.
도스는 나가지 않는다. 명령 불복종이라는 억지를 써 재판에 서게 되지만 이조차 그를 내몰지 못한다. 그렇게 그는 전우들과 함께 핵소 고지에 오른다. 하늘에 닿을 듯한 가파른 절벽. 올라간 이상 내려오지 못하는 전장. 살아남은 자들의 살아남지 못한 눈빛, 살 떨리는 증언, 오른다. 오키나와. 전쟁의 막바지. 사지에 몰린 일본군들에겐 살고 죽는 게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나와 우리와 모두는 이곳에서 죽을 것이고 너희들 하나의 목숨이라도 더 가져갈 것이라는 결기가 피와 폭음과 비명과 쏟아진 내장과 거칠게 절단된 팔다리와 터진 머리와 구멍 난 시신들과 함께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땅 밑이 아닌 지옥에서 지면을 뚫고 나온 자들 같았다. 참살과 도륙의 굿판이 고막이 터지도록 울리는 폭음과 비명 속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아수라.
모두가 죽은 자들 같았고 죽은 자들의 광기가 육체를 입고 다시 죽이고 또 죽이고 다시 죽이는 듯했다. 슬픔과 고통은 비집고 들어오지 못했다. 죽음과 죽음의 틈은 슬픔과 고통이 비집고 들어오기엔 너무 좁기만 했다. 도스는 총이 없었다. 이게 가능할까. 신념이고 뭐고 미군이고 일본군이고 아무도 여기 서 있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죽을 때까지 죽이고 죽일 때까지 죽어가고 있었다. 도스는 총 없이 전우들을 돕는다. 그리고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는다. 폭탄이 터진 곳으로 날아가 부서진 육체들을 끌고 나온다. 하나, 둘, 셋, 너무 많아 세다 잊었다. 역사는 도스가 그날 살린 전우가 75명이라고 기록했다. 75초를 살아있기도 힘든 곳에서 그는 신보다 위대한 일을 해냈다.
독한 마약을 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본능 그 이상으로 강력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이 강력함이 그를 쉬지 못하게 했고 죽지 못하게 했으며 모두가 등을 돌리고 절뚝거리며 나오는 곳으로 다시 그곳으로 폭탄이 떨어지고 악귀보다 더 두렵게 사방을 둘러싸며 몰려오는 일본군의 정면으로 달려가게 만들었다. 그곳에서 부서져 피 흘리며 죽어가는 전우들의 너덜너덜한 육신을 끌고 나오게 만들었다. 도스는 총을 잡고 싶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그게 가능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역사가 된다. 전쟁이 그려낼 수 있는 가장 참혹한 지옥도 중 하나인 곳에서 도스는 자신에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폭력을 행사했던 모두를 부끄럽게 만들고 직접적으로 죽음으로부터 구원한다. 그가 있기에 남은 이들이 다시 싸울 수 있었다. 도스에 의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었으므로.
어떤 신념은 타협하지 않는다. 모든 타협이 답이 될 수는 없다. 쉬운 길은 같은 결과로 이어지고 같은 결과였다면 그날 핵소 고지에서는 75명의 전사자가 추가되었을 것이다. 결과는 영웅심과 정의로움으로 가득했지만 신념의 배경은 낮고 어두웠다. 도스의 아버지는 1차 대전 참전군이었고 종전 후 국가가 외면했으며 후유증으로 평생을 알코올에 중독되어 있었다. 아내에게 폭력을 휘둘렀으며 어린 도스가 보는 앞에서 총을 뽑아 겨눴다. 도스에게 영원히 각인되었고 신념이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아버지 같은 인간이 되기 싫은 아들의 신념은 세상의 모든 아들들이 욕하고 때려도 바뀌지 않았다. 전우의 사지가 눈앞에서 폭발하며 찢기는 전장에서도 바뀌지 않았다. 죽기보다 싫은 것. 총이 아닌, 총을 든 사람에 대한 경멸, 공포,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것에 대한 죽음보다 더한 거부감. 그것이 도스의 신념이었고 영웅의 그림자였다.
인간의 역사에 전쟁은 어쩌면 인간보다 더 높은 비중이라 여겨질 정도로 다양한 변수를 창궐시킨다. 다양한 군상들을 선보이고 다양한 본능을 진열하며 다양한 죽음과 행동을 드러나게 한다. 그리고 전쟁을 겪거나 학습한 모두에게 '전쟁이 없었다면...'이라는 가정을 하게끔 한다. 무슨 소용인가. 불의한 이익 추구에 의해서, 또 이를 방지하고 처단한다는 평화의 이름으로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데. 사상자들이 계속 나오고 있고 생존자들은 평생 상처에 몸부림치며 도스의 아버지와 같은 여생을 보낼 텐데. 그날 도스와 핵소 고지에 같이 오른, 그에 의해 목숨을 건진 전우들은 (각자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운이 좋았을 뿐이다. 모든 전쟁에 도스가 있을 수 없다. 도스의 희생만을 기다릴 수 없다. 전쟁 실화를 다룬 영화에서 스펙터클을 제거하면 남는 건 씁쓸함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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