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퀄스, 사랑, 금기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 이퀄스

by 백승권







감정의 생성을 병으로 규정짓는 사회에서 사랑은 사형감이었다. 뭉클한 심정이 들며 눈물이 솟구친다든지, 시체를 보고 부들부들 떨린다던지 '감정을 느낀다'는 기미가 보이면 바로 자진 신고 후 진료와 투약을 받아야 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공유하다가 적발되면 곧바로 '강요된' 자살행이었다. 노동력 공급을 위한 출산? 분양권 추첨되듯 랜덤으로 선정된 사람은 강제 정액이 주입되어 임신행이었다. 공공장소의 모든 사람은 같은 무표정으로 걷고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다름은 틀림이었고 틀림은 추방과 죽음이었다. 역으로 환산한다면 사랑이라는 불온한 감정이 피어오르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사일러스(니콜라스 홀트)는 니아(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보자마자 알아챈다. 자신처럼 감정을 느끼는 '불순분자'라는 것을. 둘은 강렬한 마약에 중독된 후 금단증세에 시달린 사람들처럼 표현으로 해소되지 못한 감정으로 고통스러워한다. 결국 둘은 서로를 같은 공간 안에서 마주하게 되고, 빛과 그림자에 둘러싸인 채 감각의 희락에 불타오른다. 들키면 죽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권의 악랄한 규제가 막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본능은 억제될수록 커져 갔다. 몸속의 모든 피와 뼈를 교체한 듯 둘 주변의 컬러가 바뀌어 간다. 서늘함은 따스함으로 차가움은 뜨거움으로 푸른색은 붉은색이 되어 간다. 그리고 그 변화를 주변에서도 감지한다. 다시 말하지만 들켜서 시스템에 보고될 경우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소수자는 둘뿐이 아니었다. 감정을 느끼는 이들이 소모임을 이루고 있었고, 다양한 계층에서 서로를 돕고 있었다. 사일러스와 니아가 합류하고 둘은 숨기고 살아남기보다 죽을 각오를 하고 사랑하기로 했음을 밝힌다. 모두가 꿈꾸던 삶, 사일러스와 니아는 실현하고 있었다. 중년을 넘긴 이들은 시스템에 순응하며 숨기를 권고했지만 젊고 뜨거운 사일러스와 니아에게 더 이상의 충고는 필요 없었다. 오로지 서로의 숨결과 체온, 같이 있는 시간과 감각의 공유 외에는 모두 다 버릴 수 있었다. 티끌 하나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깨끗한 시공간에서 둘의 만행은 경계를 넘기로 한다. 그리고 직전 사일러스가 끌려간다. 치료제가 투약된다. 니아의 눈 앞에서 사일러스의 감정이 사라지고 있었다.


효율. 집단의 운영을 위해 구성원들은 통제된다. 감정은 변수다. 선례를 아무리 뒤진 들 사랑은 예측되기 힘들다. 먹고사는데 지장 없어 보인다는 이유로 감정은 억업된다. 데이터화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구성원은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 없었다. 감정의 생성은 버그, 고장 난 상태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풍자와 상징. 독재는 언제나 빠르고 확실한 선언 속에서 일상의 깊은 곳까지 주입되고 있었다. 그 안에 개인은 없다. 통제 가능한 집단의 자원화 외에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기능 만능주의 시대였다.


사랑에 의해 오염된다고 믿는 시스템과 시스템에 의해 마음을 잃은 개인이 합의에 이를 수 있을까. 개조당한 후에도 개인과 개인의 사랑은 지속될 수 있을까. 룰은 견고했다. 유머와 사랑을 차단한 사회는 미래의 건축과 환경을 제시하는 게티이미지로 둘러싸인 거대한 정신병원처럼 보였다. 사랑할 시간을 주지 않은 채 더 많은 노동 인구를 생산, 배양하라는 현재 국가의 지침과도 겹쳐 보였다. 이런 곳에서 인간은 인간이 아니었다. 사소한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생존권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마치, 저녁이 없는 삶처럼.




크리스틴 스튜어트에 대한 더 많은 서사들

연애의 허상 - 영화와 사랑에 대한 비밀과 거짓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로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