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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는 영화
By 백승권 . Mar 14. 2017

어차피 보이지 않았던 사람

이주영 감독. 싱글라이더







시간을 믿지 않는다. 아니 시간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을 갖지 않는다. 시간은 그렇지 않는다고 여기고 이러한 생각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모든 것을 당연하게 만드는 시간의 힘은 외로움과 결합될 경우 주변의 모든 것을 흡수한다. 외로움이 해소되는 동안 원거리에 있던 과거는 현재로 오지 못한다. 과거는 과거에서 멈추고 새로운 현재로 대체된다. 강재훈(이병헌)은 아내 이수진(공효진)과 아들을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금전적으로 여유로운 상황이었고 영어를 배운 아이의 미래가 더 밝을 거라는 정체불명의 믿음 때문에, 그는 가장 가까운 이들을 너무 멀리 보냈다. 그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강재훈은 제자리에 있었고 그동안 서로와 서로는 희미해져 갔으며 마침내 사라져 버렸다. 애초 눈에 보이지 않았고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았으며 다시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무엇이 그토록 보내게 했을까. 일에 매진하는 남자는 바이올린을 포기한 여자에게 아이를 맡기고 자신은 한국에 머물며 계좌이체를 해주면 가정과 가족이 온전히 유지될 거라 믿었던 걸까. 그저 서로의 간격에 상관없이 각자 맡은 바에 충실하면 부모로서 배우자로서 타율을 유지한다고 여겼던 걸까. 강재훈은 예상하지 못한 미래와 만난다. 직장은 망했고 강재훈의 고객도 망했으며 더불어 강재훈도 망했다. 한순간에 가시적인 성취의 모든 것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외로움이 급습했다. 이미 자신을 믿고 돈을 맡겼던 인생들을 풍비박산 낸 후였다. 무릎 꿇고 사죄한들 사라진 돈은 돌아오지 않았다. 회복은 요원했다. 언론은 떠들었고 남은 건 약 몇 알. 강재훈의 옆에 아내와 아이가 있었다면 그들이 몇 마디 욕이라도 거들었다면 강재훈은 덜 외로웠을 것이다. 죄책감이 가시지 않았겠지만 자기편을 확인했을 것이다. 홀로 날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다 놓아버린 상황에서는 근거리의 풍경들조차 한없이 아득하다. 강재훈은 서둘러 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기다리지 못한다. 직접 자신이 떠나보낸 타국을 날아가 행적을 확인한다. 자신의 자리만 없을 뿐 안정적이고 화목하다. 대안 남편 대안 아빠가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고 웃음으로 침묵을 밀어내고 있었다. 자신이 선택하고 연결되고 태어나게 한 이들에 대해 강재훈은 무엇을 알고 있었을까. 자신이 원하는 것 외에 관심이라는 게 있기나 했을까. 돈 버는 기계가 자신의 한동안 맡겨진 숙명이라 여겼던 걸까. 강재훈은 애초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언젠가부터 기억과 구전으로만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아빠, 남편, 타이틀은 멀쩡했지만 본질은 없었다. 사라져도 사라진 줄 몰랐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없었다.


그는 흘러간다. 둘러보고 가까이 가 보고 헤매다가 깨닫는다. 자신이 목적을 잃어버린 돈벌이에 몰두한 사이,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버린 사이, 그걸로 위안하고 어떤 관심도 기울이지 못한 사이, 정작 사라져 버린 것은 주변이 아닌 자기 자신이었음을. 그토록 무력할 수가 없었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강재훈은 외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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