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로너건 감독. 맨체스터 바이 더 씨
가족의 죽음은 보편적이다. 인간은 가족이기 때문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가족에 귀속된다. 법적 효력을 넘어 불가항력에 가깝다. 때문에 죽음의 경험 또한 피할 수 없다. 시기를 모르거나 곁을 비울 수는 있어도, 가족의 일부가 된 이상 가족의 죽음은 생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자연스러운가. 익숙한가. 편안하고 기다려지는가. 생의 일부가 사라진다는 것. 눈앞에서 다시는 재생될 수 없는 과거의 기억이 된다는 점. 가족의 죽음은 모두에게 찾아오지만 그렇다고 어느 것도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상실은 습격처럼 찾아온다. 개인과 개인이 다르듯, 가족과 가족도 다르고, 죽음 또한 어떤 죽음들과도 다를 수밖에 없다. 정정한다. 가족의 죽음은 전혀 보편적이지 않다. 가족 모두가 똑같은 감각으로 다가오지 않듯 그들의 죽음 또한 각기 다른 파도로 밀려오기 마련이다. 온전히 설 수 없는 나라는 개인, 자립의 기력이 약할수록 가족에 대한 의존도는 커지고 그 상실에 의한 2차 3차 상실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단 한 번도 생각의 시도조차 못해본 충격에 휩싸인다. 갑자기 날아온 돌에 처맞은 머리는 시간이 지난 뒤 아물 수 있다지만 가족의 죽음은 다르다. 영영 가시지 않는 상처, 고통, 후회. 리(케이시 에플렉)는 형의 죽음 소식을 듣고 더 멍해진다.
세상에 유일한 자기편이 있다면 형(카일 챈들러)이었다. 리의 모든 삶, 모든 기억의 장면 속에 형이 있었다. 형의 농담, 형의 배, 형과의 바다, 형과의 낚시, 형의 아들, 형의 병실, 그리고... 지금은 영안실 냉동고 안에 누워 있는 형. 형의 눈 감은 모습. 리는 철든 어른이 아니었다. 결혼을 했지만 지금은 부인과 떨어져 있었다. 홀로 잡부와 건물 관리를 전전하고 있었다. 영악하지 않았고 혼자 술을 마셨고 그에게 매력을 느낀 여자들의 접근에 반응하지 않았다. 타인과 말을 섞지 않았다. 술을 마시다가 욱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이 날아간 대상과 몸싸움을 벌였다. 상처투성이 얼굴로 집에 돌아와 혼자 티브이를 봤다. 그런 삶 속에서도 형은 의지였다. 빈 집에 가구를 놓아주고 투병 속에서도 농담을 나눴다. 이젠 형수도 없고 빈집엔 형의 아들뿐이다. 더구나 형은 아들의 후견인으로 리를 지명했다. 그가 법적인 성인이 될 때까지 리는 대리 아버지 역할을 해주고 재산을 관리해줘야 했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리에게 형의 부재조차 어찌할 줄 모르는 리에게 모든 것이 총알처럼 날아오고 있었다. 장례식도 준비하고 형의 아들, 패트릭(루카스 헤지스)과의 거리도 좁혀야 했다. 멍하니 있기엔 해야 할 것들이 많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멍해지기만 했다.
형을 잃은 건 동생인 자기뿐이 아니었다. 패트릭은 아버지를 잃었다. 떠난 형수는 전 남편을, 떠난 아내는 전 형부를 잃은 셈이었다.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도 일상은 잔인하도록 여전해서 남은 삶을 꾸려갈 궁리를 해야 했다. 날씨는 추웠고 언 땅을 팔 수 없었다. 장례식은 미뤄졌고 형의 시신은 냉동실에 있어야 했다. 냉동육을 뒤지다가 패트릭은 걷잡을 수 없는 울음을 터뜨린다. 냉동육, 닫히지 않는 냉동고의 문, 그리고 떠오르는 아버지의 시신, 그 차디찬 곳에서 꽁꽁 언 채 누워 있는 아버지. 리의 회상 속에는 형 외에 세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귀엽기 그지없는 두 딸과 막 태어난 갓난아이. 아내는 아파서 누워 있었고 리는 밤새 친구들을 불러 소리 지르며 놀고 있었다. 그날 새벽 아내 랜디(미셸 윌리엄스)는 아이들이 깰까 봐 떠드는 리의 친구들을 내쫓고 리는 아쉬움에 맥주를 사러 간다. 난로를 켜고 맥주를 사러 먼길을 떠난다. 맥주를 사서 돌아오는 길은 맥주를 사러 가는 길과 다른 시간대 같았다. 달려간 집에는 사람은 없고 거대한 불길만 타오르고 있었다. 아내는 소리 지르고 있었고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가족은 파괴되었다. 리와 랜디가 만나 이루었던 가족은 더 이상 없었다. 리와 랜디는 더 이상 서로의 곁에 있을 수 없었다. 떠난 아이들은 꿈속에서 리의 목숨을 구해주고 있었다. 다정하고 잔인한, 이젠 현실에서 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리를 깨웠다.
남겨진 사람들 속에서 리는 여전히 멍했다. 잃어버린 아이들의 자리에 형의 아들이 있었다. 형은 자신의 보호자 같았는데, 이젠 자신이 형이 남긴 아들의 보호자가 되어야 했다. 남겨진 조각들이 서로에게 붙어 살길을 도모해야 했다. 극적인 회복도 정상적 생활로의 회귀도 아니었다. 리는 여전히 리였지만 상황은 변했고 뭔가 해야 했다. 그걸 외면할 정도까지 리는 강하지 못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보통의 일일 수 있었겠지만 리에게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살아지는 대로 살았다. 갑자기 죽음이 선고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러다 랜디를 만났다. 랜디, 아내, 떠나간, 잃어버린 아이들의 엄마, 한때 리의 사랑스러운 스킨십을 주체 못 할 정도로 받았던 여자, 그 예쁜 아이들과 한집에서 같이 살았던, 랜디가 우연히 마주친 랜디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 쏟았던 모진 말들에 대한 랜디의 떨리는 사과. 리는 기억의 강을 건넌 후였다. 지우려고 얼마나 많은 술과 고통을 쏟아냈을까. 리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사과를 받고 싶지 않았다. 아무래도 괜찮았지만, 그때의 기억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벗어나고 싶었다. 다시 자신의 부주의로 저질러졌던, 비극으로, 죄책감으로, 불타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낙인, 주변의 침묵은 그리고 자기 자신은 너무 잘 알고 있었던, 리가 이 모든 비극의 씨앗이었다는 진실. 랜디를 볼 때마다 떠올랐을 것이며 피해자라고 아무리 호소할지언정 아이들은 들을 수 없었다. 리에게 아이들을 떠나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리였다.
날이 풀리고 땅은 녹고 형은 묻혔다. 패트릭과는 이별하는 게 아쉬울 정도로 가까워졌다. 패트릭은 매번 여자 친구와 섹스할 시간을 마련해 달라고 졸랐고, 리는 그렇게 친구이자 보호자이자 유사 아버지가 되어갔다. 형이 죽기 전 오래전 떠난 패트릭의 엄마(그레첸 몰)는 재혼 후 잘 살고 있었고, 랜디 역시 새 남자와 새 아기를 출산했다. 형이 남긴 물건 몇 개를 팔아 형과 타던 배를 고쳤고 패트릭과 같이 타며 낚시를 즐겼다. 슬픔이 지나간 동네에는 타인의 슬픔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리는 여전히 뻣뻣하고 어색한 표정으로 모든 것을 대하고 있었지만, 웃음이 조금 늘었다. 그게 원래 리의 표정이었다.
동생, 삼촌, 남편, 아빠, 잡부, 관리인, 직원, 동네 사람... 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었고 역할이나 매너 같은 건 아무래도 좋은, 그저 흐르는 대로 사는 남자였다. 조금 무기력하고 술을 즐기며 씻기지 않는 상실감으로 최대한 일상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끔찍한 사건은 그동안 지나쳤던 모든 무관심에 대한 총합의 채무 같았다. 잔인한 비유지만, 어떤 인생도 행복과 불행의 타이밍이 균일하게 찾아오진 않으니까. 아내 랜디는 재혼과 재출산으로 적극적 재기를 도모했지만, 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법을 몰랐다. 그렇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적극성을 리는 발휘할 줄 몰랐다. 맨체스터의 바다는 잔잔했다. 집, 거리, 물결은 늘 고요했다. 리는 그 풍경의 일부처럼 보였다. 태초부터 있거나 유령 같아 보였다. 리는 그렇게 살고 있었고 더 이상 그렇게 살아서는 견딜 수 없는 삶과 부닥쳤다. 수없이 마찰되고 마모되면서 리는 다시 변화된 일상의 풍경이 되는 법을 익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사람처럼.
연애의 허상 - 영화와 사랑에 대한 비밀과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