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오르드 멜피 감독. 히든 피겨스
편견은 판단하기 어렵다. 점점 더 그렇다. 편견이 생성된 배경 때문이다. 저 사람은 저 대상에 대해 편견이 있는 거 같아 라고 말할 때, 보통 나는 그에 비해 객관적이지 라는 전제를 깔고 간다. 그래서 나는 저 사람이 편견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건 거의 확실할 거야.라는 결론과 판단에 이른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편견의 배경이 잘못된 교육 때문인지, 타인에 의한 정보전달의 착오 때문인지, 이를 알면서도 게으름으로 인한 묵인 때문인지, 또는 악의적 의도를 지닌 집단에 의한 선전 때문인지, 열거한 이유 전부 때문인지 타인의 입장을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이 편견이라는, 확실한 정황을 목격했을지라도.
편견 (偏見)
[명사]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
편견은 말 그대로 인식이다. 편견이 절대다수의 동의와 이성적으로 입증할 근거를 획득했을 경우, 그것은 더 이상 편견이 아니게 된다. 공정하고 타당한 주장으로서 크게는 국가 단위의 집단의 기틀과 방향을 잡는데 중심이 되어 구성원들에게 철저하게 관리된 루트로 깊숙이 전파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세력들이 있다면 그들이 자본과 시간, 권력을 갖췄다면 편견의 대상은 제거될 가능성이 높은 운명에 놓인다. 실제 피부색과 민족이 얽힌다면 인종학살로 이어질 수 있다. 히틀러의 독일이 시도했었고, 그가 끝내 전쟁의 최종 승리자가 되었다면 지금쯤 세계에서 유대계, 아시아계 민족들은 가축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필요한 도구만큼의 최저 개체수를 연명했을 것이다. 흑인도.
황인이 그렇듯, 흑인도 흑인으로 통칭하기엔 한계가 무수하다. (하지만 이 글의 목적에 대한 이해를 돕고 영화와 연결된 도달 지점을 위해 왜곡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흑인'으로 쓰도록 한다.) 피부색으로 집단과 집단을 구분하는 것은 자료화를 위해서이지 집단 간의 우호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인다. 역사가 입증해왔다. 오랜 기간 백인의 노예. 이 인식은 그 무수한 투쟁과 갈등 끝에도 남아 있다. 기득권은 한번 잡으면 쉽게 놓아지는 게 놓고 싶은 게 아니라는 것을, 흑인의 우위로 영원히 남으려는 백인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백인들에 의해 지릴멸렬할정도로 꾸준히 입증되고 있다. 전쟁의 승패가 갈리고 사회진출의 여지가 달라졌음에도 시소는 지면과 평행을 이루지 못한다. 이를 위해 수많은 흑인들이 죽고 다치고 사라졌음에도 거부와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해 알고 들은 것만큼의 차별적 대우를 피부로 겪지 않았기에 설움만 짐작할 뿐이다. 기록에 담긴 피와 눈물을 여기 다 옮기지 못한다. 흑인, 게다가 여자라면.
백인과 흑인의 이분법적 갈등 구조는 남자 대 여자로 겹을 더하면서 그 좁디좁은 문이 급격하고도 말도 안 될 정도로 협소하게 쪼그라든다. 아마 에덴동산에 착륙한 첫 번째 인류의 정체가 이브였다면 달라도 많이 달랐을 것이다. 나누기 좋아하는 조상들은 남자 성별에게 근거에도 없는 우월함을 부여했고, 여자를 더 약하고, 더 보조적이며, 더 수동적인 위치로 격하했다. 이를 학습시켰으며 지위의 상승 또한 차단시켰다. 세상의 변화와 인권, 인간의 평등을 주창해도 메시지와 현실은 혹한의 집안팎처럼 상황이 달랐다. 지성과 추진력으로 오르고 올라도 인종과 성별의 프레임은 가위 날처럼 목을 졸랐다. 캐서린 존슨(타라지 P. 헨슨), 도로시 본(옥타비아 스펜서), 메리 잭슨(자넬 모네). 1950년대 나사도 다르지 않았다. 소련과 맞서 인간을 우주로 먼저 보내려는 국가 집단의 구성원 대부분도 백인 남자였다. 저 셋은 여자였다. 그것도 흑인. 또는 흑인이었다. 그것도 여자.
배틀필드가 우주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미국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정밀하고도 고도화된 수학계산이 필요했고, 이것이 우주선의 안정적 발사와 조종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었다. 둘 중 하나만 결여되어도 전 세계가 보는 가운데 개망신이었고 국가 권위의 실추였으며, 스코어에서 뒤처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은 우주를 빼앗길 수 없었고 나사는 매번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흰 셔츠와 검은 넥타이를 휘감은 짧은 머리 백인 남자들은 모든 것을 다 바칠 듯 분주했지만 가시적 결과는 미비했다.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은 모두 흑인 여자였고 나사에게 근무하고 있었으며 불평등한 대우에 시달리고 있었다. 시대가 요구하는 부분에 대해 빠르고 적극적으로 대응했고, 이미 조건과 자질은 어떤 백인 남성보다 우월하게 갖춰져 있었다. 내부의 대다수에게 눈에 가시처럼 보였지만 새로운 시도와 추진 없이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나사의 리더들에게 이들의 등장은 완벽한 마지막 퍼즐과도 같았다. 저 시절에 누가 '똑똑한 흑인 여자'를 기다렸겠는가. 대체 불가능한 수학자, 프로그래머, 엔지니어였고 이들은 기득권들이 세운 피부색과 성별의 벽을 스스로 무너뜨리도록 만들었다.
편견은 수명만큼이나 지긋지긋해서 이러한 편견이 파괴되는 이야기는 늘 새롭고 크게 울린다. 그만큼 편견의 그림자가 여전히 짙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데오도르 멜피 감독의 히든 피겨스는 편견이 이익과 상충될 때 역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되었는가를 드러낸다. 편견은 그 자체가 손실이지만, 사회적, 경제적, 조직적으로 확산될 경우 전쟁의 승패를 뒤집을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나사가 수학자, 프로그래머, 엔지니어를 흑인 여성으로 선택한 것은 우호와 배려가 아닌 국가 간의 생존과 승리를 위한 필수 불가결한 과정이었다. 이런 선택을 한 미국이 위대한 것이 아닌 미국에 저런 위대한 사람들이 있다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근현대의 영웅전기는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악조건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
연애의 허상 - 영화와 사랑에 대한 비밀과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