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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Mar 29. 2017

미스 슬로운, 악마의 계획

존 매든 감독. 미스 슬로운






계획의 가장 큰 단점은 미리 짜인다는 점이다. 계획의 본질적 속성이자 한계다. 목적이 무엇이든 시간과 함께 다가오는 모든 변수를 예측할 수 없고, 그저 당면할 뿐이다. 다양한 대책이 고안되지만 예측과 짐작에 기댈 수밖에 없다. 상대와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하더라도 계획은 늘 현재와 미래의 이전에 존재한다. 태생적인 불안이 내포되어 있고 변수의 정체를 정답처럼 알아낼 수 없다. 극단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틈 하나만 보여도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고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미친 시도와 옵션이 준비되어야 한다. 적국에 잠입하는 스파이들이 만약의 경우 빠르게 자살할 수 있는 독약을 준비하듯, 희생이라는 카드를 고려해야 한다. 목적이 나의 안전과 향후 거취보다 앞서야 단행할 수 있다. 명분에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남은 생을 할애하며 계획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인지하고 있고 성취를 위해 과정에서 수반되는 어떤 내외부의 피해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다면, 최악의 경우까지 타이밍을 넘어선 구체적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면 보안 유지가 되고 결의를 꺾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계획이 지닌 한계, 시간적 위치가 지닌 필연적 단점을 초월한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천 개의 과정을 성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계획이 아닌 이미 거머쥔 승리다.


불가능한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불가능한 룰을 도입해야 한다. 괴물과 싸우기 위해서는 괴물조차 감당할 수 없는 무기를 장착해야 한다. 모두가 예상할 수 있다면 영리한 전략이 아니다. 모든 비난을 무릅쓰고 누구도 할 수 없는 선택과 결정을 이어가야 한다. 남들과 다른 결과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과정이 아닌 학습과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비범한 관점이다. 완성될 그림의 폭발력에 대한 이미지를 놓치지 않고 긴장을 늦추지 않은 상태에서 필요한 말을 움직인다. 자신이 말을 이동시키는 주체이자 말 자체가 되어야 한다. 스펙터클을 앞세워 상대의 눈을 가리고 입장의 관철을 위해 온갖 회유와 협력을 동원한다. 동일하게 주어진 시간을 동일하게 쓰지 않는다. 수면이라니. 잠은 정지이자 죽음이다. 잠들 시간 동안 일한다면 계획은 더 완벽하게 이행될 수 있다. 의사의 권고 또한 흘려버리면 그만이다. 동료를 배신하는 것은 아프지만 어쩔 수 없다. 상사의 악다구니는 무시하면 그만이다. 하늘이 도울 수 없는 일이라면 직접 나서서 하늘이라도 될 각오로 덤벼야 한다. 적이 많아질수록 내가 더 강해진다는 증거다. 모두가 겁을 먹고 있다는 증거다. 계획이 완성되고 완결되고 있다는 증거다. 너희의 뼈를 꺾기 위해서 나의 살을 내주는 것은 이미 계획 안에 있었다.


선을 넘는 일이 이 과업의 핵심이다. 어떤 명분과 대의, 영향력을 지닌 일이냐에 따라 투여될 자원과 시간, 역량이 책정된다. 보수? 이미 돈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하다. 내가 유명하다면, 권력을 지녔다면, 능력이 뛰어나다면, 인맥이 화려하다면, 누군가를 끌어들일 수 있다면, 누군가의 약점을 쥐고 흔들 수 있다면, 이 모든 선을 넘은 과정들이 내가 목표로 하는 하나의 지점을 향해 활용될 수 있다면, 대미를 장식할 화려한 순간에 필요한 카드가 나의 희생이라면 기꺼이 내어놓는다. 적벽대전에서 성벽을 뚫기 위해 수개의 폭약을 안고 뛰어가는 어느 장수가 떠올랐다. 천문학적 자본으로 무장하며 시스템의 중심부를 휘어잡고 있는 세력과 맞서 총기규제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슬로운(제시카 차스테인)은 타인들의 인정과 존중을 통해 유지되는 인간으로서의 고결한 지위를 내려놓는다. 악마가 되어 지옥을 폐허로 만든다. 그렇게 산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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