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승권 Mar 23. 2017

아이히만 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폴 앤드류 윌리엄스 감독. 아이히만 쇼



“필요하다면 자신의 아버지마저도 죽음으로 보냈을 것이라고 경찰 심문에서 말했을 때, 

그는 자신이 어느 정도로 강력한 명령을 받고 있었는지만을 말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이상주의자로서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려 한 것이다. 완벽한 이상주의자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개인적인 느낌과 감정을 지니고 있지만, 만일 그것이 그의 이상과

충돌하게 된다면 그것이 그의 행동을 방해하도록 결코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

일상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야기는 보편적인 설득력을 가질 자격을 갖춘다.

구체적인 현실의 힘을 반영하면서도 보편적 설득력을 가질 자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이야기는 구체와 보편의 양 측면의 힘을 동시에 반영할 수 있다. 

 /

20세기에는 두 가지 악명 높은 전체주의의 예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독일에서 있었던 히틀러의 인종에 바탕을 둔 나치즘이었고,

구 소련에서 있었던 스탈린의 계급에 기초한 공산주의이다.

 /

인간은 어머니가 그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날에 단 한 차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은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에게 탄생을 해야 할 의무를 부여한다, 

 /

극단 속에서 상징은 (순수한 신체성 속에서, 즉 순수한 육체의 문제로) 현실화되는 경향이 있다.

 /

그는 한때 자기가 의무로 여겼던 것이 

이제는 범죄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그는 이러한 새로운 판단의 규칙을 마치 

단지 다른 하나의 언어 규칙에 불과한 것처럼 받아들였다.

 /

바보처럼 자신의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이 인간의 행진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없다.

 /

나치스는 군대를 명령을 받는 자에서 명령을 전달하는 사자로 바꾸어 놓았다. 

 /

뉘른베르크 법령의 의도

‘독일과 유대 민족 간에 참을 만한 관계 수준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

모든 나치스 간부와 당국의 노력을 함께 기울인 결과인 

500만 명의 유대인 죽음을 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그 자신도 잘 알듯이 터무니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이 저주받을 말을 들어줄 만한 모든 이들에게 

이 말을 역겹도록 반복했다. 

 /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은 그의 생각하는데 무능력함,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떤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거짓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말과 다른 사람들의 현존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

이따금 희극은 갑자기 공포 그 자체로 되어 버리기도 하고,

그래서 그 결과 섬뜩한 유머가 그 어떤 초현실주의적 창작물을 능가하는,

그러나 진실된 이야기로 나타나게 된다. 

 /

아이히만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고,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지 않다는 확신을 느끼기 위해서는 단지 과거를 상기하기만 하면 되었다.

왜냐하면 그가 살았던 세상과 그는 한때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8000만 명으로 이루어진 독일 사회가 동일한 방법, 동일한 자기기만, 거짓말, 어리석음을 통해

현실과 사실성으로부터 분리되었다. 

 /

법정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짓은 자신의 진정한 책임을 벗어나

자신의 목숨을 위해 싸우거나 자비를 간청하는 것이라고 반복해서 매우 감정적으로 확언한 뒤,

자신의 변호인의 지시에 따라 자비를 호소하는 자필 문서를 제출한 사람과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

아이히만이 조심스럽게 박사라는 칭호로 불렀던

슈탈렉케르는 아이히만의 견해에 따르면 아주 좋은 사람이었고

교육을 잘 받은, 이성으로 충만한, 

“어떤 종류의 국수주의나 증오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1년 반이 지난 후 교육을 잘 받은 이 신사가 돌격대 A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그 후 1년이 채 되지 않아 25만 명의 유대인을 총으로 쏘아 죽였다.  

 /

이 문제를 다루는 모든 문서들은 엄격한 ‘언어 규칙’을 따랐다.

돌격대로부터 오는 보고서를 제외하고 ‘제거’ ‘박멸’ 또는 ‘학살’ 같은

명백한 의미의 단어들이 쓰여 있는 보고서를 발견하기는 거의 드문 일이다.

학살을 처방하는 암호는 ‘최종 해결책’ ‘소개’와 ‘특별취급’ 등이었다. 

이송에는 ‘재정착’과 ‘동부지역 노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끔찍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구덩이가 거기에 있었는데 시체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마치 샘처럼 피가 땅에서 솟아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이전에는 결코

본 적이 없었습니다. 임무와 관련하 저는 충분히 보았습니다……”

 /

처형 부대 부대원들이 심각한 처벌을 받지 않고서도

자신의 임무를 중단하기란 놀랄 만큼 쉬웠다.

“처형에 참여하기를 거절한 이유로 

사형을 받은 친위대 대원들은 

단 한 사람도 발견되지 않았다.” 

 /

레크말레체벤은 히틀러 암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

유감스러워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조금 늦었군요. 신사 여러분들.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듯이 보였을 때

독일의 최고 파괴자를 만들고 그를 추종한 사람들은 당신들이었죠. 

……당신들에게 요구한 맹세를 주저 없이 하고, 

수십만 명읠 살해하고 전 세계의 비탄과 저주를 짊어진 

이 범죄자의 비열한 똘마니로 자신을 만들어버린…… 사람들은 당신들이었죠. 

이제 당신은 그를 배신했군요…….

지금, 파산을 숨길 수 없는 이때, 

스스로를 위한 정치적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그들은 파산해 가는 집을 배반하는구나. 

자신의 권력 추구의 길에 방해가 된 모든 것들을 배신한 바로 그 사람들이.”

-독일 소설가 프리드리히 P. 레크말레체벤 

 /

문제는 양심을 어떻게 극복하는가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상적인 사람들이 육체적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는 데서

느끼게 되는 동물적인 동정심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힘러가 사용한 책략은 아주 단순했고 또 아주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이러한 본능을 뒤집는 것으로,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끔찍한 일을 하고 있는가,라고 말하는 대신,

나의 의무를 이행하는 가운데 내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목격해야만 하는가, 

내 어깨에 놓인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가.라고 살인자들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

1942년 1월 이후 동부에서는 ‘얼음과 눈 속에서 부상자들을 돕는’

안락사 팀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상병들을 죽이는 것도 ‘일급비밀’이었지만

이 일에 대해 많은 사람들, 특히 최종 해결책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

‘러시아인들은 결코 우리를 잡지 못할 것이에요.

총통께서는 결코 그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보다 훨씬 전에 그가 우리에게 가스를 줄 것이니까요.’

나는 은밀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 말이 

정상에서 벗어난 것임을 알아차린 것 같지 않았다. 

 /

아이히만이 아는 한에서는 아무도 저항하지 않았고

아무도 협력을 거절하지 않았다.

1943년 베를린에서 한 유대인 목격자가 쓴 것처럼

“매일매일 사람들은 자신의 장례식장을 향해 이곳을 떠났다.”

 /

학살센터에서 실질적인 살인 작업이 

유대인 부대의 손으로 이루어졌다는 잘 알려진 사실은

검찰의 증인들에 의해 공정하고도 분명하게 확립되었다.

그들이 어떻게 가스실과 화장터에서 일을 했는지,

그들이 어떻게 금니를 뽑고 시신의 머리카락을 잘랐는지,

그들은 어떻게 무덤을 파고 또 대량학살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그 무덤을 덮어 없앴는지,

유대인 기술자들이 어떻게 테레지엔슈타트에서 

가스실을 만들었는지가 분명히 드러났다.

테레지엔슈타트에서는 유대인의 ‘자율성’은 심지어 

대인이 사형집행인이 될 정도로까지 나아갔다. 

 /

유대인위원회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더라면 

그들 가운데 절반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

셰퍼는 전후에 독일 형사법정에 심판대에 서야 했다. 

6280명의 여성과 아이들을 가스로 살해한 죄로 그는 

6년 6개월 형을 언도받았다.

 /

1941년 여름에도 루마니아 병사들은 같은 해 1월 

‘철권통치가 부카레스트에서 폭발시켰던 것보다는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학살과 이송 계획(“이 계획은 순전한 공포 면에서 보자면 전체 잔혹사에 대한 기록에서

비교할 대상이 없을 정도였다.”)에 여전히 참여했다. 

루마니아 스타일이란 5000명을 열차 화물칸에 발 디딜 틈 없이 태우고는 

여러 날 동안 목적지도 계획도 없이 교외를 달리게 하여 질식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살해 작전을 마치고 나서는 흔히 유대인 도살장에 시신들을 전시했다. 

 /

우리들은 전문인 판사들이며, 

우리 앞에 제시된 증거의 무게를 가리고,

방청객이 보는 앞에서 우리의 일을 수행하며

공공 비판을 대하는 데 익숙해 있습니다. 

……

재판정에서 판결을 내릴 때 판결문을 작성하는 판사들도 감정과 느낌을 가진,

피와 살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법에 따라 감정과 혐오감이 일어나는

형사 재판을 심리할 수 없을 것입니다. 

…… 

나치스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이

모든 유대인을 휘젓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재판을 진행하는 동안 이러한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가 될 것이며, 이러한 의무를 우리는 존중할 것입니다. 

 /

전체주의 국가는 그들의 적들을 침묵하는 익명성 속에서 사라지도록 한다.

조용히 이러한 범죄를 감내하기보다 감히 죽음을 감당하려 한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려 했겠지만 쓸데없는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

전체주의 지배체제는 선하거나 악한 모든 사실들을 사라져 버리게 하는 

망각이라는 구멍을 마련하려고 애쓰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1942년 6월 이래로 있었던 대량학살의 

모든 흔적을 지우려는 소란스러웠던 시도들

(화장을 통해, 구덩이를 파서 시체들을 불태움으로써, 

폭약과 화염방사기와 뼈를 갈아버리는 기계들을 이용한 시도들)이 

실패할 운명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적들이 ‘완전한 익명 속에서 사라져 버리도록’ 한 모든 노력들은 허사였다.

망각의 구멍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적인 어떤 것도 완전하지 않으며,

망각이 가능하기에는 이 세계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단 한 사람이라도 항상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 어떤 것도 ‘실질적으로 불필요’ 하지 않다.

 /

8월 14일 , 114회의 공판이 있은 다음 모든 심리가 종결되었다.

그들은 비록 몇몇 특정한 부분에 대해서는 면소를 시키기는 했지만

15개의 기소 항목 모두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렸다. 

‘다른 죄목과 함께’ 그는 ‘유대인에 대한’ 범죄를 범했다. 

즉 1)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살상함으로써

2)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신체적인 파멸로 이끄는 상황으로 몰아감으로써

3) 그들에게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해를 끼침으로써

4) 테레지엔슈타트에서 ‘유대인 여성들의 출산을 금하고 임신을 방해함’으로써 

이 민족을 파멸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유대인에 대해 범죄를 저질렀다는 4가지 기소 항목에 따라

유죄판결을 내렸다. 

 /

아이히만이 총통의 명령에 앞서 한 모든 일들과 

비유대인에게 행한 모든 범죄는 

인류에 대한 범죄라고 총괄되었다. 

 /

함축적으로 판결문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실제로

‘살상 수단들을 손으로 조작한’ 사람들은 통상 수감자들과 희생자들이었다는 

섬뜩한 사실을 역시 인정한 것이다. 

 /

그는 결코 유대인 혐오자가 아니었고, 

는 결코 인류의 살인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의 죄는 지도자들에 의해 오용되었다. 

 /

“나는 괴물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만들어졌을 뿐이다.”

 /

그는 자신이 신을 믿는 자라고 분명히 진술하면서

자기는 기독교인이 아니며 죽음 이후의 삶을 믿지 않는다는 점을 

일반적인 나치스 식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그는

“잠시 후면, 여러분, 우리는 모두 다시 만날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운명입니다.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 만세, 오스트리아 만세. 

나는 이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고 말했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장례 연설에서 사용되는 상투어를 생각해 냈다. 

 /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을.  

 /

사실인즉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 모든 사람들은

폭력의 도구에 있어서 기술적 발전이 ‘범죄적’ 전쟁행위가 불가피하게

도입되도록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

“어떤 국기에 대한 복종도 인정하지 않고 모든 법에 도전하는” 해적은 

정의상 전적으로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만 일을 한다.

 /

“이 범죄는 일반적 살인 그 이상이면서 동시에 그 이하이다.”

그래서 비록 이것이 ‘전쟁범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국가들이 그러한 범죄가 지속되는 것을 허용한다면 인류는 분명 파멸될 것이다.”

 /

어떠한 처벌도 범죄의 발생을 예방하는 충분한 억지력을 가진 적이 없었다.

반대로 일단 어떤 특정한 범죄가 처음으로 발생한다면

처벌이 무엇이든 간에 그 범죄의 재출현은 

그의 최초의 출현보다도 훨씬 가능성이 높다. 

 /

유격대원들을 쏘고 인질을 살해하는 것과 같은 전쟁범죄와 침략자들이 식민지를 만들기 위해 

원주민들을 ‘추방하고 학살하는’ 것과 같은 ‘비인간적 행위’의 차이점을 충분히 분명하게 나타내어 

미래의 국제 형사법의 한 부분이 되도록 할 뿐만 아니라, 

(식민지를 통한 팽창과 같은, 비록 범죄적이기는 하지만 어떤 잘 알려진 목적을 위해 취하게 되는) 

‘비인간적 행위’와 그 목적과 의도가 전례 없는 ‘인류에 대한 범죄’의 차이점이 명백하게 되었다는 것은, 

유대 민족에 대한 범죄가 재판의 중심으로 됨으로써 얻게 된 크나큰 이점이었다. 

그러나 재판 과정이나 판결문 어디에서도 전체 민족 집단(유대인이나 폴란드인, 집시들)의 전멸이 

유대 민족이나 폴란드 민족 또는 집시들에 대한 범죄 이상의 것일 수 있다는 가능성, 

국제질서와 인류 전체가 심각하게 상처를 입거나 

위험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을 예루살렘 재판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

아이히만의 경우 성가신 점은 바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다는 점,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도착적이지도 가학적이지도 않는다는 점,

즉 그들은 아주 그리고 무서울 만큼 정상적이었고 또 지금도 여전히 정상적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법률 기관들이 가지고 있는 관점과 판결에 대한 우리의 도덕 기준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정상적인 모습은 잔혹한 일들을 모두 모아놓는 것보다도

더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상 인류의 적인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범죄자는 자기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거나 느끼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황에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

피고는 전쟁 기간 동안 유대인에게 저지른 범죄가 기록된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범죄라는 것을 인정했고, 또 피고가 거기서 한 역할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피고는 자신이 결코 사악한 동기에서 행동한 것이 결코 아니고,

누구를 죽일 어떠한 의도도 결코 갖지 않았으며,

결코 유대인을 증오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와는 다르게 행동할 수는 없었으며,

또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

피고가 말하려는 의도는 모든 사람, 

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유죄인 곳에서는 

아무도 유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

논증을 위해서 피고가 대량학살의 조직체에서 기꺼이 움직인 하나의 도구가 되었던 것은 

단지 불운이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피고가 대량학살 정책을 수행했고, 

따라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피고와 피고의 상관들이 누가 이 세상에 거주할 수 있고 없는지를 결정한 

어떤 권한을 갖고 있는 것처럼) 이 지구를 유대인 및 수많은 다른 민족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기 원하지 않는 정책을 피고가 지지하고 수행한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즉 인류 구성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피고와 이 지구를 공유하기를 바란다고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교수형에 처해져야 하는 이유, 유일한 이유입니다. 

 /

제3제국의 모습/T.C. 페스트

 /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과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대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 

 /

히틀러가 그의 대량학살을 ‘치료 불가능한 환자’들에게 ‘안락사’를 허용함으로써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그는 학살 계획을 ‘유전적으로 손상을 입은’ 독일인(심장과 폐 질환 환자)들을 제거함으로써

마무리하려고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

이 보고서는 예루살렘 법정이 정의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는가라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다루고 있지 않다.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중





전범이 재판정에 선다. 아돌프 아이히만. 600만 유대인을 학살한 주범. 히틀러의 명령을 따른 자. 그가 법정에 선다. 밀턴(마틴 프루먼)은 이 역사적 순간을 생중계하기로 한다. 어려운 설득 과정을 거쳐야 했다. 어떤 전쟁의 사상자보다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가해진 살육의 주범에 대한 재판이었다. 세계의 관심이 쏠려 있었고 생존자들과 유족들에 대한 예우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했다. 레오(안소니 라파글리아)를 섭외한다. 매카시즘에 의해 오랫동안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던 다큐멘터리 감독. 최고의 커리어를 지녔고 그 외에는 대안을 두지 않았다. 법정을 콘서트장으로 만들 생각은 누구에게도 없었기에 재판관들과의 협의 하에 카메라를 숨기기로 한다. 정면 측면, 원거리와 근거리에서 법정과 아이히만, 증언석을 향한 앵글을 체크한다. 레오는 유대인이었지만 한나 아렌트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악의 평범성, 누구라도 그러한 상황에서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고 여겼다. 적어도 재판이 시작되고 아이히만을 관찰하기 전까지 그 생각은 유지되고 있었다. 


인간의 탈을 쓴 악마의 맨얼굴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생존자들의 증언 앞에서도 아이히만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레오 감독은 기다리고 있었다. 끔찍한 목격담 앞에서 자신이 저지른 과오와 마주하며 무너져 버리는 한 괴물의 모습을. 인간일 수밖에 없는 나약함을. 하지만 아이히만은 아랑곳없었다. 시청률은 떨어지고 있었다. 쿠바에서는 새로운 전쟁이 터지고 러시아는 우주로 향하고 있었다. 기자들은 떠나고 주시하는 사람들은 비극의 관련자들 중심이었다. 증언의 파격이 모두를 충격에 빠뜨리고 있는 가운데 카메라는 증인이 아닌 아이히만을 비추고 있었다. 레오의 의지였고 시청률에 목숨이 걸려 있는 밀턴은 피가 마르고 있었다. 재판 중계를 이끌어온 밀턴은 살해 위협을 받고 있었다. 가족을 죽인다고 했고 자신에 총을 쏘러 온 자가 눈 앞에서 쓰러지고 있었다. 애가 달았다. 


말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끌려왔다는 증언,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는 증언, 그렇게 사라진 아이들 150만 명, 엄마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아이들이 나치에 의해 주검이 되었다고 했다. 보고 듣던 이들이 눈과 귀를 의심한다. 촬영 스텝들조차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비슷하게 생긴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었다. 시체더미 속에서 살아난 자들의 육성에 의해 알려진 내용이었다. 어떤 생존자는 증언 초반 아이히만을 보고 졸도하기까지 한다. 아이히만은 모든 혐의를 부정한다. 그러다 결국 인정하고 만다. 절차상 승인했음을. 그 승인으로 유럽 전역의 수백만명의 유대인이 가스실로 끌려가 사라졌다. 


재판 중계 도중 레오와 밀턴의 의견은 갈리곤 했다. 밀턴이 센세이션을 일으켜 최대한 많은 세계인을 역사적 재판의 목격자로 두고 싶었다면, 레오는 아이히만에게 집중함으로써 만인들이 자신을 돌아보게 하려 했다. 누구라도 아이히만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려 했다. 그걸 전달하지 못한다면 얼마든지 또 다른 아이히만이 나올 수 있음을 우려했다. 모두가 죄를 저지르는 상황 속에서 저질러지는 죄는 죄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 아이히만은 자신의 일에 사명감을 가졌고 명령을 구체적으로 실행했고 하달했을 뿐,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전했다. 시스템 속에서 자신을 지우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희미하게 만드는 것. 나치의 부역자들이 대다수 그러했다. 인간에 의한 인간말살 과정에서 자신을 아주 작은 일부로 포장했을 뿐 살인자, 괴물, 악마로 인지하지 않았다. 집단 최면이었고 자기기만이었다. 아이히만은 그 정점에 있었고 태연한 표정으로 증언을 듣고 있었다. 그는 당시 매일 밤 자신의 아이들에게 사랑한다 말하며 재운다고 했다. 600만 명의 인류 말살을 집행한 다정한 아버지. 외계인이 아니었다.  


만인에게 알린다는 것은 그저 현재의 사건을 그대로 옮긴다는 것이 아니다. 뚜렷한 철학을 지녀야 하고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파장을 고려해야 하고 변수에 대응해야 하며 시종일관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모두가 듣고 보고 있었고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무수한 트레이닝을 거쳐야 했다. 아이히만 재판 중계는 다시는 있어설 안될 전쟁범죄에 대한 전 세계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후유증은 세대를 거쳐 영원할 것이며 계속 구체적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상기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담겨 있었다. 이 지독한 무게감을 밀턴과 레오는 알고 있었다. 과연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다. 자신들의 관점이 전파를 타고 흘러 전 세계의 관점이 되고 있었다. 아이히만 재판은 쇼였다. 다시는 만들어져선 안될 희대의 비극이었다. 




연애의 허상 - 영화와 사랑에 대한 비밀과 거짓말
매거진의 이전글 사일런스, 고문기술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